‘갓’ 국적 논쟁의 황망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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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과 중국의 인터넷 세계에서는 전통의 기원을 둘러싼 싸움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 출발점인 ‘갓’ 논쟁은 2020년 11월 올드시엔(Old先)이라는 BL(Boy’s Love)물 일러스트 작가가 ‘갓’을 쓴 남자의 그림을 게시하면서 촉발됐다. 한·중 양국 네티즌들은 올드시엔이 그린 갓의 국적이 무엇인지 따져묻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갓과 한복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이 폭발했다.

[오늘을 생각한다]‘갓’ 국적 논쟁의 황망한 결말

실제 갓은 명나라에도 있었고, 조선에서도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 전으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 감신총 벽화(4~5세기 추정) 속에는 패랭이를 쓴 인물이 등장한다. 신라 금령총(6세기 초)에서 출토된 말에 탄 인물 모양 토기 유물이나, 원성왕(8세기 말)이 꿈에 복두를 벗고 소립을 썼다는 <삼국유사> 기록에도 갓을 연상시키는 모자가 보인다.

6세기 당나라 태종 때도 멱리(冪?)라는 모자가 있었다. 멱리는 본래 서북방 민족들이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얼굴과 전신 가리개용으로 사용하던 것으로, 궁중 여인들과 귀부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다고 알려져 있다. <구당서(舊唐書)> ‘여복지(輿服志)’에 따르면 이는 점차 과감하게 얼굴을 드러내는 ‘노계(露?)’로 발전했고, 그러면서 여성들의 개방적 패션이 유행했다.

앞서 언급한 ‘서북방 민족’이란 칭하이 호수 서쪽에 있던 토욕혼(吐谷渾)국을 가리킨다는 게 한·중 사학계의 통설이다. 그러니 갓은 북방 유목민의 복장이 농경사회에 전해져 변모한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해 보인다. 결과적으로 갓의 뿌리는 한민족(韓民族)의 것도, 한족(漢族)의 것도 아닌 셈이다. 이쯤 되면 열정을 바쳐 기원 따지기에 나선 한·중 양국 네티즌들의 처지가 뻘쭘해진다.

지난 1월 19일, 뉴진스의 다니엘이 ‘설날’을 “루나 뉴이어(Lunar New Year)”라고 하지 않고, “차이니스 뉴이어(Chinese New Year)”이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한국·호주 이중국적자로서 영어가 익숙한 다니엘로선 “차이니스 뉴이어”가 익숙할 수도 있다. 오랫동안 동양문화를 단편적으로 이해해온 영어권에선 한국·중국·일본·베트남에서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음력 첫날을 “차이니스 뉴이어”로 부르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영어권 대중의 몰이해로 생긴 문제를 다니엘이 뒤집어쓰게 된 셈이다. 뉴진스 공식계정에는 다니엘의 사과문까지 게시됐고, 댓글창은 양국 애국자들의 전쟁터가 됐다.

설은 춘추전국시대부터 태음태양력 체계를 사용해온 동아시아 민중이 너르게 지켜온 명절이다. 2500여년 전에 생긴 풍습을 두고 20세기 이후 만들어진 근대국가에 소유권이 있다고 따지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이런 애국주의적 열정이 윤석열이나 시진핑 같은 무책임하고 독단적인 통치자들에겐 꽤 용이하게 여겨질 것이다. 사람들이 통치에 대한 불만 대신 서로에 대한 불신과 혐오로 자신들의 24시간을 채울 테니 말이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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