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불화 조각내 훔친 범인은…미군 사진에 힌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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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5~6월 미군 통신장교인 폴 뷰포드 팬처가 찍은 설악산 신흥사 극락보전의 내부 모습(왼쪽)과 같은해 10~11월 미 해병 중위인 리처드 브루스 락웰이 찍은 극락보전 내부 모습. 팬처의 사진에는 분명히 보이는 아미타여래삼존불 뒤의 ‘영산회상도’가 락웰의 사진에서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신흥사를 비롯한 설악산과 속초지역은 미 군정 관할 아래 1954년 11월까지 민간인통제구역이었다. 이곳을 관할한 미군 병사가 뜯어간 것이 분명하다. / 속초시립박물관 제공

1954년 5~6월 미군 통신장교인 폴 뷰포드 팬처가 찍은 설악산 신흥사 극락보전의 내부 모습(왼쪽)과 같은해 10~11월 미 해병 중위인 리처드 브루스 락웰이 찍은 극락보전 내부 모습. 팬처의 사진에는 분명히 보이는 아미타여래삼존불 뒤의 ‘영산회상도’가 락웰의 사진에서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신흥사를 비롯한 설악산과 속초지역은 미 군정 관할 아래 1954년 11월까지 민간인통제구역이었다. 이곳을 관할한 미군 병사가 뜯어간 것이 분명하다. / 속초시립박물관 제공

2006년 3월이었습니다. 미국 LA카운티미술관 아시아미술실에 부임한 김현정 큐레이터는 소장품 중 한국 유물 파악에 나섰습니다. 그중 눈에 밟힌 불화가 한 점 있었습니다. ‘석가여래설법도(Buddha Shakyamuni Preaching to the Assembly on Vulture Peak)’라 기록된 불화였습니다. 미술관 데이터베이스에는 없고, 흑백폴라로이드 사진만 달랑 목록에 올라 있는 이 작품이 궁금해졌습니다. 부설 수장고까지 샅샅이 뒤지던 중 마침내 한쪽 구석에서 동그랗게 말려 있던 그림을 찾아냈습니다. 이역만리 미술관 수장고에 놓여 있던 설악산 신흥사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가 빛을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영조, 정성왕후, 사도세자를 기린 불화 ‘영산회상도’는 영산, 즉 고대 인도의 영축산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긴급 보존처리 후 불화를 살펴보니 끔찍했습니다. 예리한 칼로 그어진 채 무려 6개로 조각나 있었습니다.

김현정 큐레이터는 우선 ‘영산회상도’에 적힌 화기(畵記·그림의 내력 등을 쓴 기록)의 감정을 연구자(정우택 동국대 교수)에게 의뢰했습니다. 그랬더니 의미심장한 내용이 읽혔습니다.

‘건륭 20년(1755·영조 31) 설악산 신흥사에서 영산해회(靈山海會)를 마치고 봉안한다’는 것과 ‘주상전하 이씨(영조·재위 1724~1776)와 왕비전하 서씨(정성왕후·1692~1757), 세자저하 이씨(사도세자·1735~1762)의 만수·천수무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상하죠.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 불화가 왜 산산조각이 난 채, 그것도 미국의 미술관에까지 흘러 들어갔을까요.

LA카운티미술관이 이 ‘영산회상도’를 소장하게 된 것은 1998년이었답니다. 뉴햄프셔 홉킨튼 지역에서 살던 매리 S. 프렌치라는 인물이 대리인을 통해 “아들의 집 다락방에서 중국에서 건너온 벽지 같은 그림을 발견했다”며 구입을 의뢰했는데요. 미술관 측은 이때 이 ‘영산회상도’와 함께 ‘시왕도’(죽은 자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을 그린 그림) 6점(1798년 작)까지 사들였습니다.

미술관 측은 두 유물의 ‘화기’ 등을 통해 원래 소장처가 ‘설악산 신흥사’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신흥사 측에 ‘원소장처 여부’를 확인하는 공문을 두 번(1998·1999)이나 보냈습니다. 신흥사 측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1956년 새로 제작된 불화를 50년 이상 극락보전에 걸어놓았기에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겁니다.

팬처와 락웰의 사진에서는 신흥사 명부전에 붙어 있던 ‘시왕도’의 도난 흔적도 확인됐다. 팬처의 사진(1954년 5~6월)에는 보였던 ‘시왕도’가 락웰의 사진(1954년 10~11월)에는 없었다. 누군가 ‘영산회상도’와 함께 ‘시왕도’를 뜯어간 것이 틀림없다. / 속초시립박물관 제공

팬처와 락웰의 사진에서는 신흥사 명부전에 붙어 있던 ‘시왕도’의 도난 흔적도 확인됐다. 팬처의 사진(1954년 5~6월)에는 보였던 ‘시왕도’가 락웰의 사진(1954년 10~11월)에는 없었다. 누군가 ‘영산회상도’와 함께 ‘시왕도’를 뜯어간 것이 틀림없다. / 속초시립박물관 제공

미국 현지에서의 특별한 복원 그래도 ‘시왕도’는 미술관 데이터베이스에 남아 있었는데요. ‘영산회상도’는 그나마 대접도 받지 못한 채 부설수장고 한편에 방치되다시피 한 겁니다. 뒤늦게 김현정 큐레이터의 눈에 든 ‘영산회상도’는 비로소 환골탈태합니다.

미국에 있는 한국 불화 중 가장 크고(가로 406.4㎝·세로 335.2㎝) 화격이 높은 작품이라는 찬사까지 받았습니다. 박물관 차원에서 복원작업 과정 전체를 일반에 공개하는 특별전시를 구상했습니다.

마침내 박지선 용인대 교수팀(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을 초청해 현지 복원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펼쳐나갔습니다.

복원팀은 한국에서 1t 컨테이너 3대 분량의 장비를 가져갔습니다. 2010년 9월부터 시작된 현지 복원은 박물관 전시장이었던 도자실에 마련된 공개 작업장에서 진행했습니다.

복원팀은 영하 10도 정도의 강추위 속에서 쑨 지 10년 이상 묵힌 풀을 썼고, 비단은 수백년 된 것처럼 광선을 쏘이고 염색해 사용했습니다. 오염 제거에만 한 달이 걸렸습니다. 드러난 오염만 제거할 뿐 세월의 흔적까지 지우면 안 됐기 때문입니다.

7겹이나 되는 배접지(비단 위 그림을 고정하기 위해 뒷면에 덧대는 종이)를 제거하고 새 배접지로 다시 7겹 붙이는 작업도 두 달 이상 걸렸습니다.

무엇보다 복원팀이 신경 쓴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미 밝혔듯이 누군가 그림을 가로로 크게 두 번 칼질해 세 조각 낸 다음 윗부분만 다시 세로로 세 번 베어냈죠. 그렇게 석가모니 부처님의 어깨와 가슴을 사정없이 잘라놓았습니다.

누군가 그 커다란 불화를 ‘돌돌말이’로 가져갈 생각만 했던 겁니다. 박지선 교수는 “여섯 조각으로 남은, 참혹한 전쟁의 상처와 시련만큼은 지우고 싶었다”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렇게 미국 최초로 기획한 불화 복원공개 프로젝트는 성공리에 마무리됐습니다. 2011년 12월 온전한 ‘영산회상도’가 공개됐습니다. 각종 불교 행사가 열렸고, 많은 관람객이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마냥 박수 칠 입장이 아니었던 불교계 한국불교계 입장에서 마냥 박수만 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영산회상도’와 ‘시왕도’는 명백한 ‘불법 반출 문화재’입니다. 무엇보다 불화는 예술품이기 이전에 종교적인 예경의 대상인 ‘성보(聖寶)’라 할 수 있습니다. 여느 문화유산보다 더 본래의 자리에 있을 때 온전하게 빛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언제 사라졌을까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 설악산을 포함한 속초 지방은 미 군정에 편입됩니다.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 되죠. 미 군정은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1년 4개월이 지난 1954년 11월 민정으로 이양될 때까지 이어집니다.

이때 비로소 복귀한 신흥사 스님들은 망연자실합니다. 극락보전의 ‘영산회상도’와 명부전의 ‘시왕도’ 등 사찰의 성보가 사라져버린 겁니다. 용의자는 이곳에 주둔한 미군이나 한국군 중 한 명이겠네요. 그러나 한국군은 분명 아닐 겁니다.

서양에서 기독교 성화를 훼손할 수 없듯이 한국에서 불화에 칼자국을 낼 강심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렇게 뜯은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미국으로 반출되지 않았습니까. 필시 미군 중 누군가가 뜯어갔겠죠.

만약 불법 밀반출 사실이 입증되면 LA카운티미술관은 신흥사에 ‘영산회상도’와 ‘시왕도’를 반환해야 했습니다.

왜냐면 미국 연방 도난품법은 불법 반입된 유물을 유통 및 매매할 경우 재산형 및 몰수형의 처벌을 내린다고 규정했거든요.

1954년 사라진 신흥사 ‘영산회상도’는 44년이 지난 1998년 예리한 칼로 6조각 난 채 미국 LA카운티미술관에 팔렸다. 그때 ‘시왕도’ 6점도 함께 팔렸다. / 조계종 제공

1954년 사라진 신흥사 ‘영산회상도’는 44년이 지난 1998년 예리한 칼로 6조각 난 채 미국 LA카운티미술관에 팔렸다. 그때 ‘시왕도’ 6점도 함께 팔렸다. / 조계종 제공

그 때문에 LA카운티미술관이 1998 ·1999년 두 차례나 유물 구입과 관련해 신흥사에 공문을 보냈던 겁니다. 신흥사 측에서 어떤 답변도 하지 않았던 것도 ‘귀책사유’가 됩니다. 무엇보다 LA카운티미술관이 아낌없는 열정으로 그림의 제 모습을 찾아주었습니다.

그런 마당에 선뜻 “내가 주인이니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미국 연방법에 저촉되는 불법 반출품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참전 미군의 사진에 담긴 비밀 사실 비장의 카드는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2005년 개관한 속초시립박물관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통신장교(폴 뷰포드 팬처)가 1953년 말에서 1954년 11월 사이 찍은 속초 일대의 사진 271점을 기증했는데요. 그중 신흥사 극락보전과 명부전의 내부 모습을 찍은 사진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극락보전의 불상(목조 아미타여래삼존좌상) 뒷벽에 1755년 제작된 ‘영산회상도’가 떡하니 걸려 있었거든요. 그뿐이 아니고요.

명부전을 찍은 사진에서도 ‘시왕도’가 3점 남아 있었습니다. 팬처는 사진을 기증하면서 “1954년 5~6월에 신흥사를 방문했다”고 밝혔는데요. 속초지역의 미 군정이 그해(1954) 11월 끝난 뒤 스님들이 사찰로 복귀했다고 했죠.

그렇다면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1954년 5~11월 사이에 반출됐다는 이야기가 되죠.

이렇게 팬처의 사진이 ‘미군=밀반출 자’임을 사실상 입증하는 자료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렇더라도 여전히 LA카운티미술관의 공을 무시하고 반환을 주장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주저하던 그 와중에 변수가 등장했습니다.

1988년 대구 동화사 염불암에서 도난당한 19세기 불화(‘지장시왕도’) 1점이 다름 아닌 LA카운티미술관에 소장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지장시왕도’는 도난신고된 유물이어서 논란의 여지 없이 반환대상이 됐습니다. 2015년 1월 조계종단과 신흥사 측은 동화사 불화건을 거론하면서 신흥사의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건도 조심스레 포함시켰습니다.

미군 통신장교인 폴 뷰포드 팬처의 사진 등을 근거로 종단 차원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했고요. 2017년 2월에는 공무원, 교사, 주부, 불자 등이 주축이 된 ‘속초시 문화재제자리찾기 위원회’가 창립됐습니다.

당초 우려와 달리 LA카운티미술관 측도 예상 밖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이니만큼 공공 박물관의 명예를 중요시했던 겁니다.

또 한 장의 결정적인 사진 2019년 ‘결정적인 한 방’이 터졌습니다. 1953년 정전협정 직후 미 해병 중위로 속초에서 근무했던 리처드 브루스 락웰이 신흥사 극락보전과 명부전의 내부를 촬영한 사진 등을 속초시립박물관에 기증했는데요.

만약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등의 불법 밀반출 사실이 입증되면 LA카운티미술관은 신흥사에 조건 없이 반환해야 했다. 미국 연방법이 “불법 반입된 유물을 유통 및 매매할 경우 재산형 및 몰수형의 처벌을 내린다”(도난품법)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 속초시립박물관 제공

만약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등의 불법 밀반출 사실이 입증되면 LA카운티미술관은 신흥사에 조건 없이 반환해야 했다. 미국 연방법이 “불법 반입된 유물을 유통 및 매매할 경우 재산형 및 몰수형의 처벌을 내린다”(도난품법)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 속초시립박물관 제공

그 속에는 팬처가 촬영한 극락보전 사진에서는 보였던 ‘영산회상도’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역시 팬처의 사진에 남아 있었던 명부전 속 ‘시왕도’도 락웰의 사진에서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락웰은 “이 사진을 찍은 것은 1954년 10~11월 사이”라고 밝혔습니다. 1954년 5~6월 팬처의 사진에는 보였던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같은해 10~11월 락웰의 사진에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당연히 미군이 1954년 7~11월 사이에 뜯어갔다는 이야기죠.

이 대목에서 첨언할 것은 있습니다. 신흥사 ‘시왕도’는 염라대왕 등 죽은 자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을 각각 그린 작품인데요. LA카운티미술관이 그중 6점을 소장하고 있었고요. 나머지 4점도 미국 내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누군가 ‘영산회상도’ 1점과 ‘시왕도’ 6점을 한꺼번에 뜯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한꺼번에 1998년 LA카운티미술관에 팔린 거고요. 어쨌든 불교계는 ‘영산회상도’와 함께 이 ‘시왕도’ 6점의 환수까지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미국 내에 흩어져 있는 나머지 4점의 환수도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리영희 교수의 젊을 적 ‘자랑 한마디’ 락웰은 사진뿐 아니라 신흥사에서 뜯어간 경판 1점(17세기 제작)까지 기증했습니다. ‘제반문’(諸般文·사찰에서 수행한 일상의 천도 의식과 상용의례를 기록한 것) 경판 중 87~88장에 해당합니다.

이 경판과 관련해서는 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인 고 리영희 교수(1929~2010)의 일화가 유명합니다.

리영희 교수는 1996년 12월 4일 법보신문에 흥미로운 회고담(‘내가 젊었을 적 잘한 한가지’)을 털어놓았는데요.

“(1951년 겨울) 11사단 9연대 본부중대 병사들이 몸을 녹이려고 신흥사 안팎 여기저기서 활활 불을 태우고 있었다…. 돌과 도끼, 삽으로 빠갠 불경 목판 더미가 타고 있지 않은가…. (장교였던) 나는 부연대장에게 달려가 ‘문화재가 타고 있으니 즉시 불을 끄고 경판을 회수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했다.”

리영희 교수는 그때 불경판을 지킨 공로로 2000년 제4회 만해대상 ‘실천상’을 받았습니다. 락웰의 기증 사진에도 1954년 가을 신흥사에서 미군들이 불을 피우는 장면이 보입니다. 락웰은 이 무렵 신흥사 경판 1점을 전리품 삼아 들고 갔을 겁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 설악산을 포함한 속초 지방은 미 군정 치하로 편입된다. 이곳은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 된다. 미 군정은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1년 4개월이 지난 1954년 11월까지 이어진다. 민정 이양 후 신흥사로 복귀한 스님들은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등 성보 문화유산이 사라진 모습에 망연자실한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 설악산을 포함한 속초 지방은 미 군정 치하로 편입된다. 이곳은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 된다. 미 군정은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1년 4개월이 지난 1954년 11월까지 이어진다. 민정 이양 후 신흥사로 복귀한 스님들은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등 성보 문화유산이 사라진 모습에 망연자실한다.

환지본처 본지풍광 각설하고 팬처와 락웰의 사진과 함께 ‘영산회상도’와 ‘시왕도’(6점) 환수 협상이 급물살을 탔습니다.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등이 미군에 의해 불법 반출된 전시 약탈문화재가 분명해진 만큼 반환은 시간문제가 됐습니다.

드디어 2020년 7월 29일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성대한 환영식과 함께 환수됐습니다. 여섯 조각으로 무참히 잘린 채 밀반출된 ‘성보 문화유산’이 66년 만에 귀환한 겁니다. 국내 보존상태 등의 점검이 끝난 8월 28일에는 성대한 이운식과 함께 본향인 신흥사로 돌아왔는데요. 새삼 불교에서 말하는 ‘환지본처 본지풍광(還至本處 本地風光)’의 구절이 떠오르네요.

‘환지본처’는 본래의 장소로 돌아온다는 뜻이고, ‘본지풍광’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일컫는다죠. ‘영산회상도’의 환수야말로 ‘환지본처 본지풍광’의 정수라 할 수 있겠네요.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kh07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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