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선택의 자유와 공정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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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9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관중들이 프로배구 올스타전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 정지윤 선임기자

지난 1월 29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관중들이 프로배구 올스타전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 정지윤 선임기자

여자프로배구에서 최근 작은 소동이 있었다. 여자프로배구는 일곱 팀으로 구성돼 있다. 가장 최근에 창단해 최하위에 있는 페퍼저축은행 구단은 GS칼텍스 구단으로부터 오지영 선수를 지난해 12월에 영입했다. 선수와의 계약조건에 ‘전 소속팀 상대 출전 금지 조항’을 삽입했다. 이 계약조건은 GS칼텍스가 주전선수를 내어주면서 계약을 공평하게 하고자 요청했다. 상대 구단과 선수 본인도 동의하고 여자배구단을 관장하는 한국배구연맹(KOVO)도 승인했다. 지난 1월 23일 양팀 간의 경기에 오지영 선수가 출전하지 않으면서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배구 팬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배구연맹 홈페이지 자유게시판과 각종 커뮤니티엔 한국배구연맹 사무국과 두 구단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 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 팬은 “트레이드 조항으로 선수의 출전을 제한하는 건 공정성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일자 한국배구연맹은 문화체육관광부에 자문을 구하고 규정 개정 등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최후통첩 게임’과 공정성

팬들은 왜 공정성을 위배했다고 느꼈을까. 프로배구계를 선수, 구단, 연맹, 팬으로 구성된 공동체로 놓고 보면 팬들의 지적에 공감하게 된다. 선수 개인의 계약이 선수가 누려야 할 기본 권리를 얼마나 침해했는가는 다소 애매하다. 오지영 선수 본인도 계약 당시에 이 조항을 인지했고, 별문제를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선수 개인과 구단 사이의 자유로운 계약이라도 공동체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게 되면 공정하지 못하다는 세간의 인식과 맞닥뜨리게 된다.

보편적으로 문화 전반에 걸쳐 사람들은 공정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심리학, 인류학, 경제학, 수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 과학자들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 선택에서 전체를 고려하는 공정성이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다양한 실험을 통해 확인해 보았다. 이러한 실험의 하나가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다. 이 게임은 단 한 번의 결정으로 게임이 끝난다는 뜻에서 최후통첩이라 이름을 붙였다. 두 사람이 참여해 일정한 액수의 돈을 나눠가지는 게임이다. 한 사람이 주어진 돈을 나눠주면, 상대방은 그 돈을 수용하거나 거절하는 결정을 한다. 제안된 액수를 수용하면 두 사람은 그 제안대로 돈을 나눠 가진다. 거절하면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이 게임은 1982년 독일 경제학자 베르너 귀트(Werner Guth)가 고안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형태로 진행됐지만 뒤이어 여러 학문 분야에서 보완이 이뤄졌다. 유럽, 아시아, 공산권 등 지역을 달리하거나, 판돈을 매우 키우거나(인도네시아에서는 월 소득의 3배로 실험을 했다), 선진국과 저소득 국가뿐 아니라 아마존 밀림의 부족 같은, 문명이 덜 발달한 사회에서도 진행됐다. 실험 결과는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근접했다.

실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대략 3분의 2는 판돈의 40~50%를 제시했다. 20% 이하로 돈을 제시하는 경우는 100명 중 4명 정도였다. 실험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판돈의 20% 이하로 제시되면 수용을 거절했다. 수용을 거절한 이유는 대체로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왜 사람들은 너무 적다고 느낄까. 단돈 1원이라도 수용하는 게 돈이 없는 것보다 나을 텐데(이를 경제학에서는 이기적인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라고 한다) 왜 20% 아래면 받지 않을까. 실험 참가자가 온전히 자신의 돈만을 바라보고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단돈 1원이라도 받는 게 합리적인 결정이다. 그런데 게임 참가자는 자신의 몫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몫도 보게 된다. 10만원 중에서 내가 2만원을 갖고 상대방이 8만원을 가진다면 ‘나는 이 게임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가 실험의 요지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여기서 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왜 그런 경우에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학문 배경에 따라 다양하게 제시됐다. 게임 이론에 따르면 게임 참가자들이 이 게임을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게임으로 잘못 이해했을 것으로 추론했다. 이 추론은 실험 과정에서 참가자들에게 배팅이 한 번만 이뤄진다는 사실을 주지시켜도 유사한 결과로 나타나 설득력을 잃었다. 진화생물학에서는 아주 오랜 기간 인류가 진화하면서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점을 체득했다고 설명한다. 작은 공동체 생활에서도 자기 몫을 더 크게 챙기는 편파적인 동료는 악명을 얻어 회피의 대상이 되고 공동체에서 배제돼 생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평판을 중시하고 상대방의 이익을 고려하는 행위가 생존에 유리하고, 수백만 년 동안의 진화 과정에서 이러한 감정이 인류에 체화됐다고 설명한다.

경제적 인간이건 진화의 산물로서의 인간이건, 개인의 선택에서도 사회적 공정성은 엄연히 작용한다. 개인의 선택은 진공상태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공동체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스포츠계는 선수와 구단과 팬들로 이뤄진 공동체다. 경제는 많고 다양한 공동체의 큰 집합이다.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구입하는 경우, 적절한 품질을 갖춰 적당한 가격에 제공하는 음료회사와 소비자, 이 둘을 연결하는 편의점, 물건을 날라주는 유통업체 등으로 연결되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공동체가 작동한다. 기업은 개인의 집합으로서 공동체를 이룬다. 공동체의 관점에서 보면 프로스포츠에서처럼 경제 활동에서도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은 사회 전체의 공정성과 연결돼 있다.

제도·시스템 보완의 전제 조건은

이번 프로배구계의 작은 소동은 큰 울림을 준다. 아마도 우리의 유전자에 체화된 공정성 본능이 배구장에서 작동한 것 같다. 개인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면서도 생태계 전체의 발전을 지향하도록 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교훈이다. 프로배구계는 이번 소동을 계기로 제도를 보완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선례도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020년 전(前) 소속팀 출전 금지 조항을 삽입하지 말라는 규정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규정 자체보다는 공정성을 외치는 팬들의 울림이 더 크게 들린다. 경제 체제도 스포츠 세계와 같이 끊임없이 제도를 보완해 나가야 한다.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선택은 그 선택을 받쳐주는 제도와 시스템을 전제한다. 이 제도와 시스템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정해야 한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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