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개혁 효과 확실한 안이 선거제 논의 중심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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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인터뷰

“국민 대 기득권 의원 간의 싸움”.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선거제 개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승자독식, 지역주의, 정치 양극화를 강화하는 현행 선거제도하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은 기득권 현역의원들이다. 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유권자의 표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선출되면서 민생, 불평등, 기후위기, 남북관계 등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는 뒷전이 된다.

사진/서성일 기자

사진/서성일 기자

하승수 대표는 선거제 개혁이 성공하려면 개혁의 명분과 효과가 확실한 안이 논의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제안한 단순 중대선거구제는 선거제 개혁안으로 부적합하다. 단순 중대선거구제처럼 개혁의 효과가 불분명한 제도를 내세우면 기득권이 선거제 개혁에 반대하기가 너무 쉽다. 국민은 선거제 개혁한다고 뭐가 바뀌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 대표는 ‘표의 등가성’, ‘지역주의 극복’, ‘공천 개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선거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검토’를 제안했다.
“먼저 용어정리부터 정확히 해야 한다. 지금은 선거제도 개혁을 실질적인 방향으로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대선거구제라는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 ‘중선거구제’와 ‘대선거구제’를 나눠볼 필요가 있다. 중선거구제는 한 지역에서 2~4명을 선출하는 일종의 단순 중선거구제라고 볼 수 있다. 대선거구제는 5명 이상을 뽑는 제도다. 후보 중심으로 치르는 단순 지역구 선거에서 5등, 6등, 7등을 당선되게 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대선거구제는 사실상 비례대표제와 연결된다.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에서 실시하는 대선거구제는 1개 선거구에서 많은 수의 의원을 뽑되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말한 ‘중대선거구제’는 단순 중선거구제로 유럽 다수의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대선거구제와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단순 중선거구제는 선거제 개혁 방향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얘긴가.
“단점이 많다. 단순 중선거구제는 지방선거 기초의회에서 경험해봤다. 2인 선거구의 경우 수도권에서는 양당의 나눠 먹기, 영·호남에서는 일당 독식이 그대로 나타났다. 3인 선거구도 이와 비슷했다. 4인 선거구 정도 돼야 하는데 국회의원선거에 적용하면 선거구 4개를 합쳐야 한다. 선거 구역이 너무 넓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선거비용도 많이 든다. 금권선거, 파벌정치 같은 부작용 또한 우려된다. 후보 중심 선거이기 때문에 정당의 기능이 약화될 우려도 있다.”

-선거제 개혁의 대원칙이 있다면.
“첫째는 표의 가치가 선거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 등가성·비례성 보장이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거대 양당 중심의 기득권 구조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한 표의 가치가 똑같이 보장된다면 자연스럽게 다당제 구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경쟁이 가능한 정치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다. 두 번째로는 지역주의를 깨야 한다. 대구·경북에서도 민주당이 정당 득표율만큼 의석을 가져가고 호남에서도 국민의힘이 표를 얻은 만큼 의석수를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는 정당 공천개혁이다. 특정 지역에서 공천받으면 당선이 보장되는 구조에서 공천권은 계속 문제가 돼왔다. 유권자들이 정당의 공천권 행사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개방명부형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어떤 제도인가.
“가령 10명을 선출하는 대선거구가 있다면, 각 정당이 그 선거구에서 얻은 득표율대로 일단 의석을 배분한다. 단순하게 생각해 30%를 얻은 정당은 3석을 배분받는다. 투표용지에서 유권자들이 정당뿐만 아니라 후보까지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유권자의 선택을 당선자 결정에 반영하는 방식(개방명부형)이다.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에서 택하고 있다. 표의 등가성이 보장되고 정책 중심, 정당 중심의 선거를 가능케 해 정책으로 경쟁하는 다당제 구조 정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개방명부형 방식을 채택하면, 유권자의 선택권이 확대되고 정당의 공천개혁에도 도움이 된다.”

-이들 나라의 정치는 어떤가?
“상당히 안정돼 있다. 선거제를 바탕으로 다당제 구조가 정착됐기 때문이다. 흔히 다당제에서 정치 불안이 심할 거라고 착각한다. 실제로는 정치세력 간의 경쟁과 협력이 적절하게 조화돼 경쟁할 때 경쟁하고 협력할 때 협력하는 식으로 다당제일 때 정치구조가 훨씬 안정된다.”

-박주민 의원이 ‘개방명부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공직선거법 일부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가을 박주민 의원실에서 연락이 와서 같이 법안을 만들었다. 17개 광역시도를 기본권역으로 하되, 인구·면적이 크면 시·도를 여러 개의 권역으로 나눈다. 그리고 권역마다 6~11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방안이다. 지역구 253석을 30~40개의 권역(대선거구)에서 선출하고 비례대표 47석은 표의 등가성을 더 확실하게 보장하는 조정의석으로 전환한다. 단순 중선거구제의 단점으로 4명을 선출하게 되면 선거 구역이 너무 넓어지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대선거구제도 같은 문제가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이 안은 비례대표제와 결합돼 정당지지도대로 의석수를 배분해야 한다. 정당 중심의 선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단순 중선거구제 선거와는 많이 다르다. 정당지지도에 따라 한 선거구에서 6~11명을 선출하게 되면 대구·경북에서 민주당이 의석을 가져갈 수 있고 호남에서도 국민의힘의 원내 진입이 가능해진다. 또 조정의석으로 한 번 더 표의 등가성을 조정하기 때문에 소수정당도 득표율만큼 의석을 보장받을 수 있다. 앞서 말한 개방형 명부를 채택하고 있어서 지금처럼 당 지도부가 함부로 공천하기도 어렵다. 낙하산 공천이나 부패정치인을 공천하면 당 지지율 자체가 떨어져 선거 결과에 미치는 나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유권자가 누가 국회의원이 될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당 지도부의 공천권을 지금보다 훨씬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지난 1월 9일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가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지난 1월 9일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가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과거에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대안으로 많이 생각했다.
“독일은 지역구는 소선거구제로 하면서 16개 주별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하고 있다. 표의 등가성이 보장된다.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지배하기가 어렵다. 그런 점에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또 독일은 후보 공천도 전 당원 투표로 하기 때문에 내리꽂기 공천을 할 수가 없다. 좋은 제도지만, 한국 정치에 도입하기에는 의석수 문제가 장벽이 된다. 독일은 비례대표 의석을 충분히 가지고 있어서 지역구에서 생기는 승자독식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비례대표 의석수(47석)로는 비례성을 보장하기가 너무 어렵다. 300석 내에서 지역구 의원 수를 줄이거나 비례대표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야 하지만 둘 다 어렵다. 지난 총선 이전에는 의석수 확대와 관련해 전국을 돌며 강연했다. 특권은 없애고 의석은 늘리자고 계속 설득을 해봐도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너무 강했다. 300석을 유지하면서 선거제 개혁을 할 수 있는 방안이 뭘까 고민했다. 대선거구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300석을 가지고도 세 가지 원칙을 충족시키는 방안이라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점진적인 선거제도 개혁이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위성정당 출현 등 되레 후퇴했다. 이번에도 그럴 우려는 없나.
“대선거구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위성정당을 방지하는 제도다. 조정의석 47명의 명단을 따로 내는 게 아니다. 석패율제와 비슷한데 권역별로 나온 후보 중에 아깝게 떨어진 사람들 47명을 조정의석으로 구제해주는 제도다. 지금처럼 비례대표 명단이 따로 없다. 위성정당은 명단이 2개 있을 때만 가능하다. 위성정당 자체가 불가능한 제도다. 선거제도는 워낙 중요해 헌법과도 같다고 이야기한다. 위성정당 출현이 준 교훈은 ‘어설픈 제도를 도입해선 안 되고 명확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이다. 선거제도만큼은 절충해 잘된 사례가 거의 없다. 이탈리아는 1990년대 이후 계속해서 선거제도를 바꾸고 있다. 한번 잘못 손을 댔다가 계속해서 손질을 가해야 하는 악순환 상황에 빠진 셈이다. 자칫 잘못해서 절충하면 제도개혁의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에 협소한 지지, 광범위한 비판에 직면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당시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결과는 어떤가.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 제도가 됐다. 조금씩 찔끔 손보는 식으로 가다가는 선거제도가 한국 정치를 미로에 빠뜨려버릴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발언 이후, 국민의힘 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나왔다.
“2020년 총선 직후, 국민의힘에서 과거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지금 논의에는 유효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 국민의힘은 당론이 없다. 윤 대통령이 제안한 단순 중선거구제 중심으로 논의를 하게 되면 선거제 개혁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선거제 개혁은 어떤 식이든 현직에 있는 기득권 의원들에게는 도움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 중선거구제처럼 제도개혁의 효과가 불분명한 제도를 내세우면 기득권들이 선거제 개혁에 반대하기가 너무 쉽다. 제도개혁의 목표나 원칙을 확실하게 정하고 거기에 부합하는 제도를 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최소한 기득권 의원들이 자기 밥그릇 때문에 반대하고 싶지만, 명분상 반대하기 힘든 제도를 도입하려고 해야지 제도개혁을 추동하는 힘이 생긴다. 결국 선거제 개혁은 ‘국민의힘 대 민주당의 싸움’이 아니라 ‘국민 대 기득권 의원 간의 싸움’이다. 현행 선거제도로 이득을 보고 있는 기득권 의원과 피해를 보고 있는 국민 사이에 전선이 생겨야 한다. 제도개혁의 효과가 확실치 않은 제도를 논의하면 이런 구도가 안 생긴다. 국민은 선거제 개혁한다고 뭐가 바뀌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상은 선거제도 개혁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민생, 불평등, 기후위기, 남북관계 등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다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제안을 비판하면서 신중론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은 그동안 얘기해왔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면 된다. 사실 민주당은 이미 자기 정당의 선거제도 개혁방안을 내놨어야 한다. 작년 대선 직전에 의원총회를 열어서 만장일치로 선거제도 개혁을 약속했다. 작년 8월 전국 대의원 대회에서도 90%가 넘는 찬성률로 선거제도 개혁을 결의했다. 이후에 진전된 게 없다. 심지어 민주당이 주장하는 선거제도 개혁방안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도 않다. 개별 의원들이 발의한 개별적인 법률만 있을 뿐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오는 3월까지 선거제 개혁을 마무리짓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선거제 개혁이 잘될까.
“김진표 의장이 국회 정개특위에 2월까지 복수의 안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우선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안, 즉 선거제도 개혁의 효과가 확실한 안이 복수의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게 1차 관건이다. 국민과 시민사회가 지지할 수 있는 안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그래야 기득권 의원들의 반발로 선거제도 개혁이 지지부진해지더라도 국민 여론을 통해 밀어붙일 수가 있다. 복수의 안이 대충 절충하고 타협해 만든, 지지할 만한 안이 아닐 경우 국민의 관심이 이어지기 어렵다. 결국 선거제도 개혁의 효과가 확실한, 그리고 정말 지지할 만한 안이 포함되느냐가 핵심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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