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설입니다. 코로나19가 여전하고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되지 않았지만, 얼굴을 맞대기조차 어려웠던 지난 3년과 비교하면 이번 설은 그래도 오랜만에 가족,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일 소중한 기회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설 제사상을 물리고 마주 앉아 무슨 이야기를 나눌 계획인가요. 아마 아이들은 오랜만에 어른들이 흰 봉투에 넣어줄 세뱃돈에 마음이 설레겠지요.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전 세대가 어울려 희망의 이야기꽃을 피우는 명절 연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간경향 기자들이 각 분야에서 설 밥상에 올라올 법한 이야기 반찬을 차려봤습니다. 정치 분야에선 이재명 대표의 검찰수사와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능력에 대한 이야기 이외에 연초부터 급작스레 여의도를 휩쓸고 있는 선거구제 개편 논란을 다뤄봤습니다. 여기에 무인기 소동과 미사일 발사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남북관계 전망도 빠질 수 없을 것 같고요. 이제 막 초입에 들어섰다는 불황과 경제위기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세대 문제도 빠지지 않을 이슈입니다. 일각에서 대안으로 제시하는 정년 연장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초고령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윤석열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공공주택, ‘뉴홈’의 앞날은 어찌 될까요. 대통령이 바뀌니 전임 대통령의 복지정책도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을 짚었습니다. 어느 곳 하나 녹록지 않지만, 주위가 어둡기만 한 건 아닙니다. 시니어 한류에 도전하는 노익장들, 기후위기 시대의 친환경 크루즈여행 이야기도 이번 설 연휴 특집에 담았습니다.
하나같이 정답을 내기 어려운 주제들입니다. 모쪼록 부족하나마 이야기 나누는 데 길잡이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주간경향이 정성껏 마련한 ‘설 대화 7첩반상’ 맛있게 드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첩 정년 연장
미래노동연구회, 직무·성과급제 전환 제안에 노동계 반발
경영계에선 정년 연장만으론 신규채용 감소 불가피 주장
윤석열 정부가 ‘정년 연장 논의’에 시동을 걸었다. 빠르게 진행되는 저출생과 고령화,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이 국가재정과 미래 세대를 위협한다는 인식에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현안인 건 맞다. 하지만 임금체계 개편과 세대 간 갈등, 연금개혁 등과 맞물려 있어 앞날은 첩첩산중이다. 이해 당사자인 노동계와 재계, 정부와 정치권이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하는 사안이다. 사회적 합의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 ‘정년 연장’ 방안은 정부가 내민 카드는 ‘계속고용’의 법제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9일 ‘2023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고령자 계속고용’ 법제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계속고용’ 제도란 만 60세 정년 이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기업이 재고용·정년 연장·정년 폐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노동자는 정년 이후에도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기업은 임금 부담을 낮추면서 숙련된 노동자를 재고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한국의 법정 정년은 만 60세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2016년부터, 300인 미만 사업장은 2017년부터 의무화 조치가 시행됐다.
정년 연장을 포함한 노동개혁안 밑그림은 지난해 7월 출범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연구회)가 도맡았다. 학계 등 관련 분야 전문가 12명으로 꾸린 연구회는 지난해 12월 12일 내놓은 권고문에서 “정년 연장을 검토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정년 연장과 관련한 연구회 권고안의 주요 내용은 (대·중견기업 중심의) 현 연공(여러 해 일한 공로·호봉제)형 방식을 직무·성과급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임금체계 개편이다. 오래 근무할수록 더 많은 급여를 받게 되는 호봉제 때문에 임금 부담이 커진 기업들이 청년 채용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연구회는 또 “국민연금 수급 연령을 고려해 만 60세 이상 계속고용 법제 마련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조속히 시작해야 한다”고도 했다. 현재 만 62세인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2028년 64세, 2033년부터는 65세로 늦춰질 예정이다. 정년 시기와 연금 수급 연령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소득 공백(크레바스)으로 노후 생계 불안이 커질 수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온 힘을 다해 기필코 완수하겠다. 이른 시일 내 입법안을 마련하고,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적었다.
한국의 저출생·고령화 속도는 가파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합계출생률은 0.79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1.59명보다 한참 낮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900만명(901만8000명)을 돌파했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서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된다. 한국은 2018년 14.4%에서 2025년 20.6%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5명 중 1명은 65세 이상 고령자가 되는 셈이다.
고령자 비중이 커지는 것은 복지지출 수요의 증가를 의미한다. 국가재정 부담도 커진다. 지난 1월 2일 한국은행의 ‘인구구조 변화의 재정지출 성장 효과에 대한 영향 분석’ 보고서(이재호·김철주)를 보면 고령층 인구 비중이 1%포인트 증가하면, 국내총생산(GDP) 성장 효과가 5.9% 감소했다. 국가재정뿐 아니라 개인의 삶도 빈곤해지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 중에서 소득이 중위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 비율을 의미하는 노인빈곤율은 40.4%(2020년 기준)로 OECD 2018년 평균인 13.1%보다 3배가량 높다. 대만(23%), 일본(20%)과 비교해도 훨씬 높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4월 ‘노인빈곤과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제언’(김태완·이주미) 보고서에서 “1999년 국민연금제도가 전 국민으로 확대됐지만 여전히 국민연금이 완전한 노후소득보장 수단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최후의 안전망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빈곤 노인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역시 노후소득보장제도로서 의미 있는 역할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노후소득보장 정책의 보완을 제언했다.
공적이전소득(공공기관 등에서 개인에게 지급)으로 생계가 어렵다 보니 일을 찾는 고령자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지난해 11월 2일 내놓은 ‘55~79세 고령인구의 노후실태 및 취업 현황 분석’ 결과를 보면, 연금을 받으면서도 일을 놓지 못하는 55~79세 고령인구는 370만3000명으로 2017년(252만4000명)보다 46.7% 늘었다. 국민·기초·개인연금 등을 포함한 공·사적 연금 월평균 수령액은 2인 기준 138만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는 은퇴 후 최소 생활비인 월 216만원의 64% 수준이다. 반대로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는 급격하게 줄어 2020년 3738만명에서 2050년이면 2419만명이 된다. 주요 생산가능인구인 25~49세 비중은 2020년 36.8%에서 2050년 23.1%까지 내려간다.
임금체계 개편 등 곳곳 난제 가장 큰 쟁점은 임금체계 개편이다. 노동계는 직무성과급으로의 전환은 부작용만 키울 것이라고 반발한다.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직무성과급제로의 전환 등을 담은 연구회의 권고안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소원수리를 그대로 반영한 내용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경영계는 그간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하는 법·제도 정비를 요구해왔다. 노동자들이 연차가 쌓일수록 임금을 더 많이 받아가는 임금체계 하에선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계속고용 법제화를 비롯한 정년 연장을 논의하려면 이에 대한 손질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 입장도 이와 대체로 일치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21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년 연장을 획일적으로 하면 청년 일자리를 제약하는 문제가 있고 대개 연공서열에 의한 봉급체계를 가져가기 때문에 직무성과급으로 임금체계가 바뀔 때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고령자들이 일자리를 계속 가져갈 수 있는 제도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양 부위원장은 “2000만 직장인 사업장 가운데 노조 결성 비율은 15% 정도에 불과하다. 노조가 있는 곳은 직무성과급이 도입되더라도 어느 정도 대항력과 협상력을 가지고 사측과 협의할 수 있겠지만 노조가 없는 대다수 사업장은 회사가 정하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결국 임금 결정권은 회사가 가져갈 것이고 노동자들의 임금은 쪼그라들고 마는 것이다. 정부는 제3의 단체를 통해 경영계 입장만 대변할 게 아니라 노측과 대화를 위한 정책 협의체 구성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경영계는 임금체계 개편없이 정년 연장만 추진했을 때 신규채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경총은 지난해 12월 16일 발표한 ‘최근 고령자 고용 동향의 3가지 특징과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정년 연장 수혜 인원이 1명 늘어나면 채용되는 정규직 근로자도 거의 1명 감소한다. 특히 임금 연공성이 높은 사업체에서는 정년 연장 수혜 인원이 1명 늘어나면 정규직 채용인원이 거의 2명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비슷한 보고서를 낸 바 있다. KDI는 2020년 5월 ‘정년 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 보고서’에서 “민간사업체(10~999인)에서 정년 연장의 예상 수혜자가 1명 증가할 때 고령층(55~60세) 고용은 약 0.6명 증가한 반면, 청년층(15~29세) 고용은 약 0.2명 감소했다”고 밝혔다. 당시 보고서를 작성한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정년 연장 의무화를 한 민간 대기업을 중심으로 청년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두드러졌는데 이는 기업이 인건비 부담 증가 때문에 신규채용을 줄였기 때문”이라며 “(기업에 자율권을 부여하는) 계속고용을 통해 재계약을 하게 되면 기업의 비용 부담은 줄어들 여지가 있다”고 했다.
경총은 또 같은 보고서에서 통계청 자료를 인용, 정년 60세 의무화 이후 지난해까지 정년퇴직자 증가율보다 조기퇴직자 증가율이 더 크게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정년퇴직자는 2013년 28만5000명에서 지난해 41만7000명으로 46.3% 증가한 반면 명예퇴직·권고사직·경영상 해고를 이유로 주된 일자리에서 이탈한 조기퇴직자는 2013년 32만3000명에서 지난해 56만9000명으로 76.2% 증가했다. 반론도 있다.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법정 정년이 있음에도 노동자들이 10여년(지난해 기준 49세) 빠르게 조기 퇴직하는 이유는 (기업이) 사내하청과 같은 간접고용을 활용하고 기존 인력은 쉽게 해고가 가능하도록 한 일자리 구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쟁점은 임금피크제다.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도가 분쟁과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앞둔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는 대신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기업은 숙련된 직원을 비교적 낮은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고, 청년을 신규 채용할 여력도 가질 수 있게 된다. 반대로 기업이 노동자의 임금을 객관적 기준없이 후려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때문에 노사의 관점도 상반된다. 경영계는 고령자 고용 불안, 청년 구직자 일자리 기회 등을 위해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경총)는 입장인 반면 노동계는 신규채용 등과 같은 긍정적 효과 없이 비정규직만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립은 지난해 대법원 판단이 나온 이후 더 증폭되는 양상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5월 26일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삭감한 임금을 돌려달라며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회사가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한 것은 차별”이란 판결을 내렸다. 이를 두고 중소벤처기업연구원(중기연)은 지난해 8월 발간한 중소기업 임금피크제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대법원 판결 이후 중소기업들이 임금피크제에 부담을 느껴 도입을 망설이고 있다.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는 중소기업(300인 미만)은 전체의 4.58%에 불과하지만, 대기업(300인 이상)은 48.7%에 달한다”고 밝혔다. 연구를 맡은 황경진 중기연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정년제를 운용하지 않거나 정년이 있어도 60세 이상 고령자를 계속 고용하기 때문에 임금피크제 도입이 저조하다”고 했다.
“사업장별 노사 협의가 우선돼야” 정년 연장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참고 사례로 거론되는 국가가 일본이다. 한국보다 훨씬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호봉제를 중심으로 한 임금체계, 노사 관계 등에서 한국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우선 인구구조를 보면 65세 이상이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5년 10%. 2005년에 20%를 넘어 2021년 29.1%까지 치솟았다. 법적 정년은 한국과 동일한 60세이나, 2012년부터 65세 이상 ‘고용확보조치’ 의무를 시행했다. 이는 재고용·정년 연장·정년 폐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한국 정부가 추진하려는 계속고용과 비슷한 개념이다. 2021년부터는 강제는 아니지만 기업에 만 70세까지 ‘취업기회확보’의 노력을 의무화했다. 정년 후 계속 일하길 희망하는 노동자는 대부분 재고용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국회미래연구원의 지난해 10월 ‘일본의 정년정책: 한국과 비교의 관점에서’ 보고서를 보면 고용확보조치 의무를 달성하지 않으면 고령자고용안정법 위반에 해당해 조언·지도·권고·기업명의 공표 등 행정처분 대상이 된다. 보고서는 “일본은 정년연령에 대해 노사가 합의해 법률로 정했으면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용자 인식이 강하다. 법적 정년조차 지키지 않아 미디어에서 블랙기업(노동법을 지키지 않고 노동자에게 열악한 노동환경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거론되면 기업 운영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적었다.
연금 수급 연령은 정년과 연계돼 있다. 일본의 국민연금은 이중구조(정액 연금+보수비례 연금)다. 전체 국민이 수령하는 정액 연금은 65세부터 지급된다. 임금생활자가 수령하는 보수비례 연금은 60세(2013년)에서 65세(2025년)로 수급 연령을 점차 높여가고 있다. 다만 고령노동자의 최소 생활을 보장하면서 연금재정을 건전화하기 위해 임금과 연금의 월 합계액이 47만엔(약 443만원)이 넘을 경우 연금 지급이 삭감된다. 이렇다 보니 60대의 생계유지를 위한 주수입에서도 ‘본인의 공적연금’(63.5%·복수응답), ‘본인의 임금 등 수입’(47.9%), ‘배우자의 공적연금’(42.4%) 등 공적연금 비중이 높다.
보고서는 또 일본의 정년제도는 단계적·점진적으로 노사합의에 기반을 둬 자율적으로 시행하도록 제도가 설계되고, 민간에서 제도가 시행되면 그 후 법제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은 정부가 특정 제도와 방침을 강제하거나 연금 등 사회안전망 제도와 연계되지 않은 파편적 제도 도입에 주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혜윤 부연구위원은 “정년 연장이라는 이해 당사자와 이슈들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특정 법과 제도만 두고 논의를 이어가거나 정부 주도로 강제하는 방식은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며 “정부는 큰 틀의 방향만 제시하고 (세부 내용은) 사업장별·업종별 특성에 따라 사업장별로 노사가 논의하고 협의해나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