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금융권 내부통제’ TF 잠정안의 문제점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지난 11월 29일, 금융위는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개선 T/F’의 중간논의 결과(이하 ‘T/F 잠정안’)를 발표했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사태를 비롯한 작금의 대형 금융사고와 관련해 금융사의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몸짓으로 보인다. 오늘은 이 T/F 잠정안의 문제점을 짚어보려 한다.

2020년 1월 금융정의연대와 DLF피해자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DLF 제재 관련 은행장 해임요청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0년 1월 금융정의연대와 DLF피해자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DLF 제재 관련 은행장 해임요청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결론부터 살펴보자(보도자료 앞부분에 나와 있는 여러 훌륭한 말씀은 넘어간다). 보도자료 4쪽 마지막 행에 나와 있는 개선방향 제1번은 “중대 금융사고에 한정”해 대표이사 책임을 묻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이거 뭔 소리지? 느낌이 벌써 쎄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보도자료 5쪽 상단에는 “중대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무조건 대표이사를 제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통제제도를 마련하고 관리했다면 감경 또는 면책까지 해주자고 돼 있다.

결국 T/F 잠정안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중대 금융사고가 아닌 모든 금융사고에 대해 대표이사는 무조건 면책이다. 설사 중대 금융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내부통제제도를 마련하고 관리했다면 감경 또는 면책이다.

이게 내부통제제도를 강화하자는 방안인가, 아니면 대표이사를 면책시켜주기 위해 노력하자는 방안인가.

DLF 사태 관련자에 면죄부 될 우려

일단 제일 먼저 드는 느낌은 T/F 잠정안이 현재 대법원에서 재판 중인 DLF 사태 관련자들에게 꿀 같은 면죄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왜? 대표이사에게 ‘지금부터 의무와 책임을 강화하자’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이제까지는 의무와 책임이 별것 없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럴진대, 정신없는 금융감독원장이 애먼 금융회사 대표이사를 제재했으니 천부당만부당하지 않겠는가?

과거는 그렇다 치고, 그럼 T/F 잠정안대로 하면 앞으로는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인가? 회의적이다.

현재 방안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대표이사에 대한 제재가 유효하게 작동해야 한다. T/F 잠정안은 멀쩡한 개활지에 대표이사를 위해 2개의 방어진지를 구축해 주었다. 제1차 방어선은 “중대 금융사고”가 아니라고 우기는 일이다. 중대 금융사고만 아니면 몇몇 꼬리 자르기를 통해 대표이사는 무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 기준이 무엇일까? 100명의 재산을 홀랑 날리면 중대 금융사고이고, 99명의 재산을 홀랑 날리면 보통 금융사고일까?

더 논란이 되는 건 제2차 방어선이다. ‘삐까번쩍’한 내부통제제도를 만들고 이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도록 관리”했다면 봐주겠다는 내용이다. 삐까번쩍한 내부통제제도는 지금도 있다. 문제는 “정상적 관리” 부분이다. 무엇이 정상적 관리인가? 정기적으로 내부통제 관련 회의하고 여기서 “잘 운영하라”고 대표이사가 발언하면 관리한 것인가? 참 어려운 얘기다.

그렇다면 왜 이런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일까? 애초부터 대표이사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다. 꼭 그렇게 악의적으로 프레임을 짜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잘못된 길”로 T/F가 방향을 잡게 된 다른 정황도 생각해볼 수 있다. 금융회사 대표이사의 의무와 책임 그리고 그것을 감독해야 할 금융감독기구의 정책 수단에 대한 이해가 혹시라도 부족했을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을 조금 더 살펴보자.

금융회사의 대표이사는 (중대하건 아니건) 금융사고가 났을 때 3가지 책임에 직면한다. 첫 번째는 형사 책임이다. 금융회사가 금융관련 법령을 어겨 벌금형에 처해지면 양벌규정에 따라 (별도의 합리적 반증이 없는 한) 대표이사 역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두 번째는 민사 책임이다. 금융사고를 일으킨 금융회사가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준 경우, 회사는 대표이사에게 회사가 입은 손해를 보전하도록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만일 회사가 미적거리면 주주들이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세 번째는 감독상 책임이다. 금융회사 경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금융감독기구의 적격성 심사(fit and proper test)를 통과한 자에 한해 주어지는 특권이다. 그런데 금융사고를 일으킨 대표이사는 적격성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고, 금융감독기구의 수시 적격성 심사에 직면해 자신의 적격성이 유지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 입증에 실패하면 적격성을 상실해 경영에서 물러나야 한다.

‘감독상 책임’에 대한 이해 부족

문제는 이 3가지 책임이 처벌의 강도나 침익성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처벌의 근거, 입증의 주체나 입증의 강도 등에 차별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형사 책임은 개인의 재산권이나 자유권이라는 헌법적 권리를 국가가 제약하는 일이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 따라서 처벌의 근거가 법률에 있어야 하고(죄형법정주의), 입증의 강도도 합리적 의심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강해야 한다.

민사 책임은 상당히 다르다. 대표이사는 상법상 이사로서 설사 명문의 규정이 없더라도 당연히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duty of care)를 부담한다. 그 구체적 갈래의 하나로서 감시의 의무(duty of oversight)를 진다. 입증의 강도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는 그럴 가능성이 조금 더 크다”는 정도면 된다.

금융회사 대표이사에게 가장 불리한 경우가 감독상 책임이다(그리고 바로 이점이 행정법원이나 이번 T/F가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부분이다). 전술했듯이 금융회사를 경영하는 행위는 보편적인 헌법적 권리가 아니라 금융감독기구가 규정한 “적격성 요건”을 구비한 자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한 특권이다. 원칙적으로 금융회사 대표이사는 정기적으로 그리고 필요시에는 수시로 자신의 적격성을 감독당국에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다. 감독상 제재는 특정 자격을 구비한 자에게 예외적으로 허용했던 특권을 자격 미달에 기인해 회수하는 조치로 봐야 한다.

금융사고는 금융회사를 경영해온 대표이사의 적격성에 중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다. 단순히 사고방지 제도를 만들고 잘해보라고 말했다고 그 적격성에 문제가 없었다거나 하자가 치유됐다고 당연시할 수는 없다. 이번 T/F 잠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종합적으로 내려야 할 적격성 유지 여부의 판단을 팽개치고, 대표이사 면책을 위한 간단한 충분조건을 새로 설치해 주었다는 점이다.

T/F는 이번 잠정안의 목적을 우리 사회가 (금융사의) 내부통제를 “경영전략이나 조직문화”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데 있다고 보았다. 틀린 말이다. 내부통제는 “대표이사가 이사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여러 업무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금융회사를 경영하기 위한 적격성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해야 할 업무”다. 바로 여기가 삐딱선의 갈림길이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전성인의 난세직필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