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어려울 때일수록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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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영향력은 세금만 봐도 안다. 2019년 법인세 10조5000억원은 대구·경북 세금 총액과 맞먹는다. 이재용 회장이 취임 후 첫 행보로 보여준 ‘동행의 철학’이 우리 사회 약육강식의 현장을 바꿔나가길 바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월 28일 광주 광산구 평동산업단지에 있는 협력회사를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면서 파이팅 구호를 제안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월 28일 광주 광산구 평동산업단지에 있는 협력회사를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면서 파이팅 구호를 제안하고 있다. / 연합뉴스

추운 겨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창문을 스쳐 지나가는 찬바람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칠흑같이 깜깜한 밤입니다. 새벽이 오고 있어선지 어둠의 농도는 짙기만 합니다. 옆에서는 고른 숨소리가 느껴집니다. 곤히 잠든 아내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잘 견디며 함께해온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조용히 거실로 나와 그동안 쌓아둔 신문 하나를 집어들고 책상에 앉아 펼쳐봅니다. 슬쩍 넘겨보는 지면에는 온통 어두운 기사가 도배돼 있습니다. 3년째 계속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공격, 정치 세력들의 다툼, 국가 간 분쟁에 따른 불안한 국제질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계경제의 암울한 현황 등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문제만 가득 담겨 있습니다. 더 불안한 마음으로 신문을 넘깁니다. 중간 정도 넘어가는데 불쑥 전면 크기로 배치된 기사가 눈앞으로 다가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 후 첫 일정으로 광주에 있는 한 협력회사를 방문했다는 내용입니다. 최근 그는 마침내 삼성전자의 회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별도의 취임식이나 취임사 없이 회장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공식일정이 더 관심거리가 되고 언론도 이를 크게 보도한 듯합니다.

초일류 삼성과 이재용의 시대

기사에서는 첫 번째 외부일정으로 협력회사 방문을 택한 걸 두고 이재용 회장이 어떤 가치에 중점을 두고 초일류 삼성을 경영해갈지를 행동으로 보여줬다고 해석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이재용의 시대’가 열렸으니 사람들은 그가 어떤 경영철학을 내세우며 삼성을 이끌어갈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초거대 선박’인 삼성전자를 운항해갈 선장이 어떤 방향으로 키를 잡을 것인지 큰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오랜 세월, 특히 지난 10년간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정리해온 사회·경제·사업 전반에 대한 철학과 이를 기초로 한 경영의사결정은 우리나라의 향후 진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대인 이병철·이건희 회장은 ‘사업보국’, ‘초일류’와 같은 비전을 제시하며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냈습니다. 이러한 비전의 달성을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한 것이 대한민국을 최후진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밀어올리는 중요한 원동력의 하나였습니다. 지금의 삼성전자는 선대회장 때보다 국내외적으로 모든 측면에서 훨씬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기업이 돼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는가는 삼성전자와 관련된 세금 규모를 예로 들어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2019년 삼성전자의 법인세 납부액은 10조5000억원이었습니다. 이 금액은 그해 1년간 대구·경북지역을 관할하는 대구지방국세청이 거둬들인 세금 총액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단순하게 말해 삼성전자가 하나 더 있으면 그 회사가 내는 법인세만으로도 대구·경북지역에 있는 모든 경제주체들이 국세 한푼을 내지 않아도 세금수입에는 차이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삼성전자가 내는 세금은 법인세만 있지 않습니다. 법인세에 더해 부동산 관련 세금과 10만명 넘는 임직원들이 내는 근로소득세까지 합친다면 그 금액은 훨씬 커집니다. 자영업자들이 삼성전자 노동자들에게 물건을 팔고 내는 세금과 삼성전자 주주들이 주식을 사고팔면서 내는 증권거래세까지 고려한다면 관련 세금의 규모는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이러한 삼성전자의 3대 수장이 된 이재용 회장은 선대회장들이 제시한 ‘인재제일’, ‘초격차 기술’, ‘조직문화 혁신’과 같은 비전을 앞으로도 계속 핵심가치로 가져갈 것으로 보입니다. 시대를 앞서갈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일관된 메시지를 보여주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사업추진의 동력을 얻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번 협력회사 방문이 이재용 회장만의 새로운 비전인 ‘동행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보여줬다는 해석을 담은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 회장은 얼마 전 선친의 2주기를 맞아 계열사 사장들과 가진 오찬 자리에서도 삼성이 이해관계자들과 더불어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이 매체는 “이번 방문을 통해 본격적으로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면서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동행의 철학’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외부에 보여줬다”는 설명까지 달아놓았더군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1월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의 티타임을 마치고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1월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의 티타임을 마치고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약육강식 구조, 이젠 바뀌어야

아직도 일상의 삶 속에는 약육강식의 현장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습니다. 소수의 기득권자가 그들보다 훨씬 다수인 약자들의 외침을 더 큰 소음으로 침묵시키고 왜곡된 결정을 하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아직은 분배보다 성장에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면서 대기업은 하청업체에게, 하청업체는 종업원에게, 정규직은 비정규직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반성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이 이러한 질문과 반성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의 새로운 수장이 된 이재용 회장이 취임 후 첫 번째 행동으로 보여준 ‘동행의 철학’이 이러한 질문과 반성의 새로운 마중물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삼성전자의 동행이 우리 사회의 왜곡된 의사결정 구조와 부당한 희생의 강요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해결에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 동행의 행렬이 삼성전자를 넘어 산업·사회 전반으로 확산해 잘못된 분배구조의 정상화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대립과 분열 현상의 완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사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우리 앞에는 항상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외부 환경이 좋았던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 신문만 유난히 암울한 기사로 가득차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지금 우리 앞에는 더 어려운 문제들이 놓여 있습니다. 더 좋은 사회, 더 훌륭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꼭 풀어야만 할 숙제들입니다. 난제들을 해결하고 모두가 함께 잘사는 사회로 나아가는 문을 열기 위해서는 한 꾸러미의 열쇠뭉치가 필요합니다. 이재용 회장의 새로운 비전인 ‘동행의 철학’이 그 열쇠 중 하나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새벽을 맞았습니다. 조금 있으면 아내도 일어날 것입니다. 추위와 어둠을 몰아내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또 하루를 함께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조정목은 세무법인 광화문 대표세무사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국세청에서 27년을 근무했다. 납세자 보호, 세원관리, 세무조사, 근로장려금 지급, 직원교육 등 국세행정의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다. 지난해 말 대구청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성숙한 개인, 함께하는 사회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조정목 세무사·세무법인 광화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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