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덴버 죽이기- SNS 통한 뒤틀린 정의구현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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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덴버가 아이패드를 훔쳤다고 의심하는 친구. 가방을 뺏기지 않으려다 벌어진 주먹다짐이 영상으로 찍혀 바이럴을 탄다. ‘정의구현’의 대상이 돼버린 존 덴버. 장편 데뷔작임에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완숙하다. 좋은 영화다.

제목 존 덴버 죽이기(John Denver Trending)

제작연도 2019

제작국 필리핀

상영시간 96분

장르 드라마

감독 아덴 로즈 콘데즈

출연 쟌센 막프사오, 메릴 소리아노

개봉 2022년 11월 23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시네마 뉴원

시네마 뉴원

그날 교실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아이들과 춤 동작을 잘 맞추지 못한 14세 소년 존 덴버(쟌센 막프사오 분)는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고 어머니가 일하는 시장으로 향했다. 존 덴버를 놀리던 친구 마코이가 교실에서 충전하던 자신의 아이패드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그를 쫓아가 돌려 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이 가져가지 않았다는 존 덴버. 마코이는 존 덴버의 가방을 빼앗아 뒤지려 한다. 억울한 존 덴버는 가방을 뺏기지 않으려 한다. 가방을 탈취해 옥상으로 도망한 마코이가 존 덴버에게 맞는다.

마코이가 맞는 장면이 고스란히 카를로스라는 친구의 휴대전화 영상에 담긴다. 카를로스는 영상을 페이스북에 공유한다. 영상이 바이럴을 타며 유명해진다. 이제 존 덴버는 ‘정의구현’의 대상이 되는 천하의 악당이 됐다. 과거 그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지인들이 ‘존 덴버 때리기’에 동참한다. 점심 도시락을 뺏겼다는 여학생이나 과거 그에게 얻어맞았다는 친구까지.

SNS가 만들어낸 14세 악마 소년

정말 존 덴버는 친구의 아이패드를 훔쳤을까. 영화에서 존 덴버는 끝까지 결백을 주장한다. 그 주장이 통하진 않는다. 마코이의 옆집에 사는 경찰관은 모든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이 존 덴버가 범인이라는 ‘사실’이라며 그를 의심한다. 원래 춤 연습장면을 아이패드로 찍기로 했는데, 충전이 안 돼 카를로스의 노트북 카메라로 찍었고, 어쨌든 그 영상에 따르면 교실에 들어간 사람은 존 덴버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상이 바이럴을 타면서 애초에 카를로스가 제보하려고 했던 ‘블로거’는 존 덴버의 이웃집 아저씨를 인터뷰한다. 이미 온라인 여론은 존 덴버를 아이패드 절도범으로 낙인을 찍고 있는 마당이다. 이웃집 아저씨는 한 달 전쯤 사건을 거론한다. 존 덴버가 폭죽을 터뜨리는 바람에 자기가 키우던 물소가 놀라 죽었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던 존 덴버의 엄마는 매주 200페소씩 소 값을 갚는 형편이었다. 그는 존 덴버가 나쁜 애는 아니며 엄마의 빚을 갚기 위해 쌀가마니를 함께 팔았다고 증언하면서도 “나쁜 짓을 했다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블로거는 영상을 띄우기 위해 ‘악마의 편집’ 기술을 발휘한다. 1주 전에 목격했다는 “쌀가마니를 팔았다”는 대목을 편집해 쌀가마니 대신 아이패드 발언을 잘라넣는다. 이제 이웃집 아저씨는 존 덴버가 훔친 아이패드를 1주일 전 파는 현장을 본 목격자가 된 셈이다. 결국 존 덴버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걸까.

<존 덴버 죽이기>는 필리핀 감독 아덴 로즈 콘데즈의 장편 데뷔작으로 적은 예산으로 만든 독립영화다. 실제 영화를 촬영한 필리핀의 팔라완 판단섬은 감독의 고향이기도 하다. 휴양지로 개발된 곳이 아닌 깡촌이다.

토속신앙과 결합한 영화의 서브플롯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가톨릭과 결합한 토착신앙을 이야기를 풀어가는 알레고리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마을 주민들의 말을 통해 서브플롯으로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돌로레스라는 여성이 디다이스라는 사람의 집을 몰래 엿봤는데, 이 돌로레스라는 여성은 과거에도 조니라는 사람에게 주문을 걸어 죽게 만든 마녀라는 것이다. 저주를 풀기 위해 마을 영매인 비닝 영감은 밤늦은 시간 술법을 하며 다닌다. 존 덴버는 매우 불안한 시선으로 비닝 영감의 행동을 바라본다. 마코이의 엄마는 진짜 존 덴버가 아들의 아이패드를 가져갔는지 비닝 영감을 찾아가 물어본다. 가위를 매달아 점을 쳐본 비닝 영감은 “처음에 가져간 사람이 아직 가지고 있다”(엄밀히 말해 존 덴버라고 직접 지칭하지는 않는다)고 그(마코이의 엄마)의 확신을 더한다.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달려갈 때 존 덴버의 불안 역시 절정으로 치닫는다. 몰릴 대로 몰린 존 덴버의 시선으로 길가에 급사(急死)해 쓰러져 있는 한 여성이 들어온다. 전후 맥락으로 보아 영화의 초반부에 존 덴버 모자를 지나쳤던 돌로레스다. 존 덴버는 마을 사람의 지탄을 받았던 ‘마녀’ 다음 차례로 이제 세상에서 제거돼야 할 악마는 자신이라는, 운명의 천형 같은 걸 느꼈을까.

장편 데뷔작임에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 연출에서 감독은 완숙한 능력을 보여준다. 장이머우 감독의 데뷔작 <붉은 수수밭>(1987)을 보는 느낌이다. 기회가 된다면 몇몇 시퀀스의 연출 의도를 감독에게 물어보고 싶다. 좋은 영화다. 얼마나 많은 상영관에 걸리게 될지 모르지만 강추한다.

영화 배경을 필리핀 깡촌으로 설정한 까닭

시네마 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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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크레딧에는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했다고 적혀 있다. 물론 타임라인이나 캐릭터, 일부 사건 등은 드라마화를 위해 창작됐지만. 영화는 2019년 필리핀에서 제작돼 그해 부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출품됐다. 한국에서 개봉제는 ‘존 덴버 죽이기’였다. 영화의 원제는 ‘존 덴버 트렌딩(John Denver Trending)’, 그러니까 존 덴버라는 온라인상 핫이슈에 대한 영화다. 보통 ‘~죽이기’라는 명명은 역설적으로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는 영화의 내용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니 그리 좋은 작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IMDB) 등 영화 관련 사이트를 보면 영화화되기 전에 필리핀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은 뭔지를 묻는 사람이 많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에 아마도 고인(故人)이 된 것으로 보이는 4명의 이름이 거론돼 혹시 영화화된 사건과 관련된 인물인가 검색해봐도 딱히 나오는 정보는 없다. 앞서 싱가포르 인터넷 영화 매거진과 인터뷰에서 감독은 이 사건을 알게 된 것은 라디오를 통해서이며, “영화화를 위해 실제 취재를 해보니 알려진 이야기와 사건 당사자들의 증언은 많이 달랐다”고 밝히고 있다. 감독은 영화의 배경으로 쓰인 필리핀의 깡촌 출신이다. 배경지로 시골을 고른 이유에 대해 “당장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마닐라 같은 대도시와 달리, 옆집 사정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고만고만한 동네가 악성 소문과 소셜미디어가 결합했을 때 나타나는 문제를 부각하기에 더 좋은 장소라고 생각해서”라고 답했다. 감독 말마따나, 필리핀 마닐라나 한국의 경우 서울 같은 대도시의 학교에서 아이패드 분실과 같은 사건이 얼마나 화제를 일으키겠는가. 영화의 주인공인 14세 소년 존 덴버 역은 신인 쟌센 막프사오가 맡았다. 어머니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전형적이며 두드러진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한 기성 유명배우인 메릴 소리아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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