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의 사전에 ‘책임’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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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핼러윈 참사 직후,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이들의 말은 상식 밖이었다. “경찰을 미리 배치했어도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국가의 재해예방과 안전관리를 총괄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말이다. “저희는 전략적인 준비를 다해왔다”, “이건 축제가 아니다.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용산구 관내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말이다.

박송이 기자

박송이 기자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거움을 알지 못한 채 공직에 올라선 이들은 158명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자신들을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유체이탈 화법도 나왔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경찰은 정부조직이 아니라는 듯 경찰만 탓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대한민국과 우리 정부의 수준에서 참 어이가 없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며 “교통만 통제했어도 애들이 저렇게 안 죽었다”고 말했다. 책임지고 사퇴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 바꿔라, 청장 바꿔라 이것도 후진적으로 본다”고 비난했다. 국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내내 신경질적이며 고압적이었던 김대기 비서실장의 태도를 보며 이 정부의 사전에는 ‘책임’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말은 곧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당일 상황을 대비하고 사고에 대응해야 했던 실무자들의 법적인 책임만을 따지면 결국 현장에 있던 공무원들의 책임만 남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적 책임을 넘어 정치적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책결정권을 갖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사회와 국가영역에 재난을 야기했던 잘못된 정책의 순위가 바로잡힐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부터 용산구청장까지 책임을 부정하고 회피하는 모든 말이 가리키는 방향은 동일했다. 앞으로도 한국사회에서 이런 재난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8년 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당시 많은 사람이 입을 모아 세월호 이전과 이후 한국사회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사회는 달라지지 않았고, 또다시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마주하게 됐다. 반복되는 재난 앞에서 무력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의 말들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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