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시벨 - ‘선택’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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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액션영화의 가치와 별개로, 감독은 이 영화를 ‘불가피한 기로에서 선택을 강요받은 사람의 이야기’라 정의한다. 선택·희생·책임이라는 화두를 절감하는 시대. 절대적 평가를 떠나 여러모로 여운이 남는다.

제목 데시벨(Decibel)

제작연도 2022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10분

장르 액션, 드라마

감독 황인호

출연 김래원, 이종석, 정상훈, 박병은, 이상희

개봉 2022년 11월 16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마인드마크

㈜마인드마크

1년 전 발생한 잠수함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한 전직 부장 강도영(김래원 분)은 목숨은 건졌지만, 당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겨운 일상을 이어간다. 이런 상황은 그와 함께 살아 돌아온 동료들도 마찬가지. 하나같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피폐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이들 중 한명의 집이 폭발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곧이어 강도영은 의문의 인물에게 걸려온 전화로 동시다발적인 폭탄테러가 연이어 발생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는다. 특수하게 제작된 폭탄은 주변의 소음이 일정 기준 이상으로 커지면 작동하게 설계됐으며 막고 싶다면 직접 해결하라는 것. 아내와 딸이 테러범의 인질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도영은 이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내달린다.

도심의 다양한 풍경을 무대로 한 폭탄테러

겉으로는 상업 장르영화를 표방하지만 막상 내면에는 뜻밖의 심오함이나 무거운 주제를 던지는 작품들이 있다. 적절한 균형 안에서 이야기가 잘 다듬어지고 충분한 설득력을 담보로 한다면 한계를 넘어선 수작으로 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대다수의 경우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린 ‘배신’이란 혹평을 피하기 힘들다.

<데시벨> 역시 이런 도박과도 같은 위태로운 양면성을 내포한 작품이다. 평가의 호불호를 가를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하다. 관객들에게 ‘액션영화 이상’이란 환영을 받거나 ‘이도 저도 아닌 액션영화’란 외면을 받게 될 수도 있겠다.

<데시벨>은 ‘사운드 테러 액션’이라는 메인 카피에서 알 수 있듯 표면적으로는 정통 액션영화를 예상케 한다. 홍보 역시 이에 주력한다. 소음으로 작동하는 폭탄이란 소재, 군중이 밀집한 축구장 전경이 포착된 티저 포스터, 테러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주인공을 부각시킨 예고편 등 일관된 정보로 관객들의 장르적 기대치를 높인다.

한나절 동안 부산 시내를 배경으로 한 테러 극이 매우 숨 가쁘게 펼쳐진다. 한적한 주택가, 아파트 놀이터, 축구장, 워터파크, 고층 컨벤션 센터 등 주변에서 친숙하게 마주할 수 있는 공간 다수가 위기의 무대로 쉴 새 없이 등장한다.

빠른 전개를 욕심낸 건 좋은데 순간순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지점이 빈번하다. 예를 들어 주인공을 비롯한 대부분의 인물이 사건에 휘말리는 과정은 구도적으로는 납득이 되지만 감정적으로는 설득이 되지 않는다. 영화의 키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소음감지폭탄 역시 영화 속 정보만으로는 대략적인 작동 방식을 짐작만 할 뿐 정확히는 모르겠다. 나중에 보도자료와 기타 정보들을 통해 기본적으론 시한폭탄이며 일정 소음 이상이 되면 제한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거나 바로 폭발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공개된 영화는 관습적 장르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야기 쪽에 좀더 공을 들이고 있는 모양새다.

액션영화 이상을 욕심낸 드라마적 반전

영화는 현재의 테러 사건을 전개하는 사이사이에 발단이 된 과거의 사건을 놓치지 않고 끌어들인다. 말미에 가서는 과거의 사건 자체에 더 큰 무게를 싣는 느낌이다. 실제로 드라마적 연출도 훨씬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일단 장르 불문하고 ‘결말에 가서는 결국 관람객들을 울려야 한다’는 한국영화만의 흥행공식을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그럼에도 영화 <데시벨>을 보고 긍정적 평가를 하는 관객이 있다면 그는 아마 이 후반부의 과거 장면과 여기서 파생되는 애잔한 정서에 몰입한 관객일 것이다.

여기서 ‘선택’은 의외로 큰 비중으로 다뤄지는 주제다.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감독은 이 영화가 시원한 액션영화의 가치와 별개로 ‘불가피한 기로에서 선택을 강요받은 사람의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이는 다시 ‘필연적 희생’이라는 대의적 주제로 확장돼 관객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선택’에서 비롯된 ‘희생’과 ‘책임’이라는 화두를 그 어느 때보다 절절히 실감하는 시대다. 절대적 평가를 떠나 그냥 한편의 액션영화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여러모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최선에 대한 물음 ‘트롤리 딜레마’

㈜마인드마크

㈜마인드마크


샘 레이미 감독이 연출한 2002년작 <스파이더맨>의 절정부엔 주인공에게 악몽과도 같은 선택의 시간이 도래한다. 악당 그린고블린은 철교의 높은 교각 위에서 한쪽 손에는 어린아이들이 타고 있는 케이블카 줄을, 다른 손에는 주인공이 사랑하는 연인을 볼모로 잡고 있다. 악당은 영웅에게 선택을 종용한다. 다수의 무고한 아이들을 구할 것인가? 한명의 사랑하는 연인을 구할 것인가?

개개인의 정의 관념을 시험할 때 종종 등장하는 것이 일명 ‘전차의 딜레마’, 또는 ‘광차문제’(鑛車問題)로도 알려져 있는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가 달리고 있다. 철로 앞쪽에는 5명의 일꾼이 있다. 철로를 바꾸면 열차를 다른 길로 유도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엔 다른 일꾼 한 사람이 있다. 선로를 바꿀 수 있는 스위치가 자신에게 있다는 그는 작동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런 가정과 심리실험은 오래전부터 시작돼 발전해왔다. 국내 대중에게 친숙하게 회자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번역 발간된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선풍적 판매고를 기록하면서부터다. 예제 자체가 던지는 직관적이고 현실적인 상황도 인상적이지만, 추측건대 트롤리 딜레마가 책의 서두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였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을 것이다.

이런 ‘선택’의 딜레마는 앞서 언급한 <스파이더맨>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에서 절정의 과제로 빈번히 등장한다. 영화 <데시벨> 역시 트롤리 딜레마가 더욱 중요한 소재로서 다층적으로 등장한다. 한발 더 나아가 선택의 피 말리는 과정을 잔인하리만큼 집요하게 관찰하며 관객의 감정을 자극한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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