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디지털경제, 개방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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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이 장애를 일으키면서 많은 국민이 불편을 겪었다. 시스템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해당 기업뿐 아니라 정부, 그리고 국회까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데이터 안전관리는 일차적으로 기업의 책임이지만, 관련 시스템과 제도를 정비하는 노력을 정부와 국회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네트워크 기반 디지털경제의 한단면을 보여줬다. 인터넷 보안, 사이버 안보, 데이터 주권 등 디지털경제는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많은 중요한 사안을 제기한다. 관련된 사안 중에서 ‘힘의 집중’ 문제를 살펴본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긴 꼬리 분포와 롱테일 현상

우리나라 전체 유튜버들의 순위를 구독자 수로 순위를 매겨보면, 1위는 K팝 3세대 대표 그룹의 하나인 블랙핑크다. 구독자 수는 8240만명이다. 2위는 방탄소년단으로 7120만명이고, 3위는 방탄소년단 사업부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하이브 레이블즈로 6840만명을 기록했다. 1~3위까지의 최상위 그룹과 그다음 그룹 사이에는 현저한 격차를 보인다. 가수들이 모인 프로젝트 그룹인 SM타운이 4위인데, 구독자 수는 3100만명이다. 3위의 절반에 못 미친다. 순위가 내려갈수록 구독자 수가 크게 감소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20위권 바깥으로 내려가면 감소세가 잠잠해진다.

유튜브를 특정 부문으로 한정해보자. 바둑 유튜브에서 1위의 구독자 수는 18만2000명이다. 2위는 10만2000명, 3위는 6만7000명, 4위는 5만3000명, 5위 3만8000명 순이다. 바둑계 유튜브는 규모가 작아 프로기사가 운영하는 경우에도 구독자 수는 수천에 불과하고, 바둑 전문 포털도 구독자 수는 1만명을 넘지 못한다.

연예계 유튜브와 바둑계 유튜브는 구독자 수, 즉 규모 측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나지만, 두 유튜브 구독자 수의 분포는 비슷하다. 상위권이 압도적으로 큰 반면 하위로 내려가면 구독자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대부분의 유튜버는 미미한 숫자의 구독자를 가진다. 연예계 유튜버와 바둑계 유튜버 둘의 분포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그림 모양은 거의 동일하게 나타난다. 통계학에서는 이러한 분포를 ‘긴 꼬리 분포’라 한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긴 꼬리 분포를 갖는 사회경제적 현상이 많이 등장했다. 이러한 현상을 ‘롱테일 현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긴 꼬리 분포는 인터넷에 기반을 둔 디지털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힘의 집중이 일어나는 사회경제 여러 분야에서 나타난다. 19세기 말에 이탈리아 경제학자 파레토는 이탈리아의 땅 80%를 20%의 인구가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사실을 ‘파레토 법칙’ 또는 ‘80 대 20 법칙’이라고 부르게 됐다. 동종업계 기업들의 수익 분포를 그려보면 상위 20% 기업의 전체 수익이 80% 정도를 차지한다.

도시의 크기도 순위에 따라 나타내면 긴 꼬리 분포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도시를 거주민 숫자에 따라 순위를 매기고 그림을 그려보면 긴 꼬리 분포를 보인다. 80 대 20 법칙은 의사결정 과정에도 적용된다. 해야 할 과제를 나열해 두고 중요성이 높은 소수의 과제에 자원의 대부분을 배치하는 전략이 그것이다.

디지털경제에서 롱테일 현상은 상반된 의미를 가진다. 한편으로는 소수의 상위자가 나머지를 압도하는 경향, 즉 ‘힘의 집중’이 그것인데 이는 빈익빈 부익부와 같은 불평등의 심화 요인으로 작용한다. 유튜버 구독자 분포에서도 보았듯이, 인터넷상에서 연예계 스타는 실물 공간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걸그룹 블랙핑크의 <셧 다운>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 수가 공개 5일 만에 1억뷰를 달성했다. / YG엔터테인먼트 제공

걸그룹 블랙핑크의 <셧 다운>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 수가 공개 5일 만에 1억뷰를 달성했다. /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슈퍼스타의 출현은 개인에 한정되지 않는다. 플랫폼 서비스에서는 소수의 상위 기업들이 지배한다. 매출과 수익의 분포가 현저하게 상위기업에 집중된다. 이들 슈퍼스타 기업들의 성장은 인터넷 공간의 이점을 극대화해 실물경제에서는 대단히 힘든 성장을 이뤄낸다.

다른 한편으로, 소비자와 공급자 사이의 직접적인 소통이 훨씬 용이해지고 인터넷 공간 참여가 언제든 누구한테나 열려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효과다. 일반 서점에서 판매대에 오르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은 판매량의 큰 차이를 보인다. 온라인서점에서는 모든 책에 동등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온라인서점도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제시하지만, 비인기 출판물에도 독자가 동등하게 접근할 기회를 제공할 수는 있다. 온라인에서 독자들은 평점을 매긴다. 이는 출판사와 저자에 전달된다. 인터넷은 원칙적으로 양방향 소통을 활성화하는 민주적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인터넷에 기반을 둔 디지털경제의 근본 과제는 힘의 집중에서 오는 폐단을 최소화하면서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민주적 공간을 확대하는 일이다. 카카오톡 사태를 계기로 정부와 국회 그리고 언론에서 많은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비상사태를 대비한 데이터센터 설치 문제와 피해 보상을 포함한 경영진 책임 등이 거론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용자들은 아마도 카카오톡에 대한 의존을 낮출 것이고, 정부와 국회도 관련된 법과 제도를 정비할 것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이번 사태는 실물경제에서나 디지털경제에서나 제한받지 않는 자유 시장의 부작용을 교정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해준다. 오히려 실물경제보다 디지털경제에서 힘의 집중 현상이 더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제도적 보완 필요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경제의 근본 과제 각성

보다 근본적인 사안이 있다. 민간기업의 비즈니스가 공공인프라 역할을 할 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규정하고 실행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플랫폼 산업에서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시민의 참여가 열려 있어야 한다. 카카오의 경우 메신저 사업에서 시작해 13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한 기업집단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많은 나라가 자국의 인터넷 플랫폼을 가지지 못하고 외국의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플랫폼 기업들의 성공적인 성장은 박수를 쳐줄 만한 대단한 성취다.

한편으로 카카오톡이 국민메신저가 되면서 카카오 비즈니스는 아주 중요한 공공 인프라로 기능하게 됐다. 이 사안을 우리는 정책적으로 간과했다는 사실이 이번 카카오톡 사태를 통해 드러났다.

앞으로 진행될 제도 개선 과정에서 플랫폼 서비스를 공공 인프라라는 관점에서 보다 민주적 공간으로 활성화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개방된 거버넌스는 한 기업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다. 디지털경제의 근본 과제이기도 하다. 10월 셋째 주에 많은 국민이 겪은 불편이 보다 개방된 디지털경제의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서중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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