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사라진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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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지 체티 하버드대 교수는 경제학계의 슈퍼스타다. 엄청난 규모의 데이터로 미국의 기회 불평등을 분석해 학계와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은 소득불평등이 높지만 아메리칸 드림으로 대표되듯 가정형편이 어려워도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한 나라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 부모의 소득과 가정환경이 자녀가 나중에 자라 버는 소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픽 엄희삼 기자

그래픽 엄희삼 기자

경제학에서는 이를 ‘기회의 불평등’이라 표현한다. 본인의 능력이나 노력이 아니라 환경적 요인의 차이가 출발선 자체를 다르게 만들어 격차를 만들어내는 불평등이다. 한국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금수저·흙수저 이야기가 그것이다. 부모가 부자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커서도 성공해 높은 소득을 벌기가 쉽지 않은가. 기회의 불평등은 보통 부모의 소득과 자녀가 자라 버는 소득의 관계인 세대 간 소득탄력성이나 부모의 소득분위수와 자녀의 소득분위수 사이의 상관관계로 측정된다. 그 수치가 높을수록 세대 간 이동성이 낮고 기회의 불평등이 크다.

모두에게 기회가 평등하다면 사람들은 결과로서 소득불평등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자 아빠를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부자가 되기 쉬운 사회에서는 특히 청년들의 불만과 분노가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이 체티 교수가 기회 불평등에 관한 연구팀을 조직하고 관련 연구를 발전시키게 된 계기다.

예를 들어 그의 한 연구는 과거 미국에서는 자녀 세대가 자라 부모 세대보다 보통 실질소득이 높아졌는데 최근에는 그 확률이 크게 낮아졌다고 보고해 충격을 던졌다. 그에 따르면 1940년에 태어난 이들은 약 90%가 부모보다 잘 살았다. 198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그 비율이 겨우 50%를 살짝 넘었다. 절대적 사회이동이 약화됐다는 의미인데, 이러한 변화는 성장률 둔화도 관계가 있지만 소득불평등 심화가 더욱 큰 요인이었다. 2017년에 나온 이 논문의 제목은 ‘사라지는 아메리칸 드림’이다.

친구관계가 기회의 평등에 중요

한편 세금자료를 사용해 기회의 불평등을 분석한 2014년 연구는 1970년대 생과 1980년대 후반 이후 태어난 이들을 비교해 역사적으로 세대 간 이동성이 악화하지 않았다고 보고해 놀라움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통근지역별 상세 자료를 사용한 그의 다른 연구는 역시 세대 간 이동성에 아이들이 자란 동네의 소득불평등, 가족의 구조, 학교의 질 그리고 주거지역의 분리 등 여러 환경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했다.

최근 체티 교수는 친구관계가 기회의 평등에 중요하다는 새로운 연구를 ‘네이처’에 발표해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연구팀은 사회적 자본의 새로운 지표로서 페이스북의 7220만 성인 사용자의 친구관계 자료를 사용해 사회경제적 지위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연결성을 측정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이 부자 친구를 상대적으로 많이 가진 동네인 경우 가난한 부모를 가진 아이들이 자라서 더 높은 소득을 벌어 소득의 상방이동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사용해 고등학교 학생들의 연결성을 살펴보거나 인종 요인을 통제해도 결과는 동일했다. 이 연구는, 특히 경제적 연결성이 지금까지 지적돼온 빈곤율·불평등과 같은 요인들보다 소득의 이동성에 더욱 중요하다고 보고한다.

비판의 여지도 있다. 먼저 페이스북 친구관계를 대상으로 한 자료는 전체 인구의 현실을 대표하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연구는 개인 수준이 아니라 지역 수준의 분석이다. 즉 부자 친구가 많은 가난한 이들이 부자가 되기 쉽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계층 간의 친구관계가 많은 지역에서 사회적 이동성이 더 높다는 것만 보고한다. 결국 개인 수준의 인과적 메커니즘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소득의 상방이동성 자체가 경제적 연결성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또한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더라도 적극적이고 상위계층 마인드를 가진 이들한테 지위가 높은 친구들이 많고 나중에 성공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그 관계는 더욱 복잡하다. 사회적 자본을 연구해온 사회학자들은 이들의 결론이 너무 과장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소득불평등이 기회의 불평등으로

체티 교수의 다른 논문은 경제적 연결성을 설명하는 요인으로서 학교 등에서 사람들이 다른 사회경제적 지위를 지닌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만나는가와 비슷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진 이들끼리 친구가 되는 편향 모두가 중요하다고 보고한다. 그런 편향이 낮은 공동체에서는 사회경제적 통합을 통해 다른 지위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는 것이 연결성을 강화하는 반면 그 편향이 높은 곳에서는 현재 구성원 사이에 상호작용을 높이는 것이 연결성 강화에 더 중요하다.

사회적 이동과 기회 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도 현재까지는 주로 주택정책이나 대학입시 등에서 다양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지닌 사람들을 통합하기 위한 노력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집단 내의 비슷한 친구맺기 편향은 사회적 관계를 해치기 때문에 식당 공간의 변경이나 공공도서관과 같은 다양한 정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체티 교수는 사회경제적 배경이 낮은 청년 트레이너를 부자 고객들에게 연결해준 보스턴의 한 헬스클럽을 성공사례로 제시하기도 했다.

계층을 초월한 친구가 기회의 평등에 중요하다는 결론은 흥미롭지만 한계도 작지 않다. 특히 사람들 사이의 격차가 클수록 현실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이와 친구를 맺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심리학 연구들은 불평등이 심각하면 사회적 평가를 위협받고 지위가 낮은 이들의 불안이 커져 친구를 맺거나 공동체에 참여하는 정도가 낮아진다고 보고한다. 또한 불평등은 지배와 종속을 심화시키고 수평적인 친구관계와 네트워크를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피켓과 윌킨슨이 ‘불평등 트라우마’에서 보고하듯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회적 자본과 공동체가 약화돼 사회적 이동성이 낮아질 수 있다.

무엇보다 가난한 부모가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하기 어려운 현실에서는 소득불평등 자체가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기 쉽다. 국제적으로 봐도 소득불평등이 높은 나라가 기회의 불평등도 높다. 이를 ‘위대한 개츠비 곡선’이라고 부른다. 아메리칸 드림을 좇기 위해서는 소득과 기회의 불평등이 모두 높은 미국이 아니라 그 반대인 덴마크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사회복지와 교육에 대한 공공투자가 모자란 미국의 현실과 관련이 크다. 결국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라서 가난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려면 현재 세대의 가난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중요하다. 기회의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결과의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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