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00원 해고와 법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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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전라북도 남원~전주 간 국도는 한때 교통사고가 잦기로 유명한 죽음의 도로였습니다. 이 도로를 오가는 시외버스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 버스 운전기사 A, B도 남원~전주 간 버스를 운전했습니다. 그 구간 중간에 있던 간이정류장에서는 버스요금을 현금으로 받았습니다. A는 직접 현금으로 내는 2명으로부터 받은 버스요금(1인당 6400원) 중 잔돈 800원을, B는 다른 버스를 운전하면서 같은 날 13명으로부터 받은 현금 중 잔돈 5200원을 회사에 납부하지 않았습니다. 승객 1인당 400원이었습니다. 잔돈이라도 당연히 입금해야 하는 회사의 수입원이었습니다. 회사는 A와 B를 해고했습니다. A와 B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습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 우철훈 선임기자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 우철훈 선임기자

중앙노동위원회는 ①잔돈 미납 행위가 징계사유는 인정되지만 ②징계양정(징계의 정도)이 해고는 너무 심하다고 보았습니다. ▲금액이 소액이고 ▲잔돈 미납이 묵인되는 관행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행위가 고의적이거나 계획적이지 않아 보이고 ▲회사에서 동일한 유형의 운송수입금 잔돈 미납을 이유로 징계를 한 전례가 없으며 ▲회사가 잔돈 미납에 관해 특별히 교육하지는 않았고 ▲근로자 A, B 역시 한 번도 징계받은 적이 없다는 점이 근거였습니다(부당해고).

회사가 중노위 결정에 불복해 법원으로 갔습니다. 법원은 해고가 정당하다고 봤습니다. “운송수입금 일부 미납이 마치 관행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단체협약 등에 비춰보면 정당한 행위라고 할 수는 없으므로 징계사유가 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횡령 액수가 적다고 하나, 횡령은 범죄행위로서 그 액수가 적다는 사실만으로 비행의 정도가 낮다고 평가할 수 없다. 회사의 순수익률은 요금의 약 7% 수준인데, 횡령한 운송수입금 승객 1인당 400원은 운송요금의 6.25%(=400÷6400×100)에 이르므로 원고의 해당 승객에 대한 수익 중 거의 대부분에 해당한다는 점도 중요하다.”(서울행정법원 2011구합25876)

10원이라도 신뢰를 깨뜨리면

특히 회사와 근로자 간 ‘신뢰’를 반복해 언급했습니다. “회사는 승객들이 내는 요금 외에 별다른 수입원이 없으므로 운전기사들이 받은 수익금을 전액 회사에 납부하리라는 신뢰는 회사의 운전기사에 대한 신뢰의 기본을 이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CCTV를 시외버스에 설치하기로 하고 노사 합의된 단체협약에는 “회사는 조합원이 회사의 재산을 횡령 또는 운송수입금을 부정 착복한 증거가 확실한 자는 노조 지부와 협의 없이 해고한다”라고 규정돼 있고, 해당 단체협약 제42조가 해고를 타당하다고 본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법원은 여러 사례를 통해 버스 운전기사 요금 횡령 사건에서 특히 엄격한 해고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버스 운전기사가 500원으로 커피와 장갑을 산 경우(서울고법 99누15909), 2600원 횡령한 경우(중노위 2002부해103), 6500원 횡령 사례(서울행정법원 2009구합45808), 1만3950원 횡령 사건(서울행정법원 2006구합34500), 버스요금 2400원 횡령으로 해고한 사건(광주고법 2015나102250)에서 모두 해고가 정당하다고 봤습니다. 제각각의 사연이 있지만, 횡령 금액이 적다는 공통점이 있는 사건입니다(예외적으로 3000원 횡령 건에서 지나치게 과도해 부당해고라고 본 판결도 존재하기는 합니다).

다른 업종의 예를 들어봅니다. 화학약품 회사에 근무하는 노동자 C가 회사 소유의 공구들 130만원어치를 몰래 반출하려다 발각돼 회사가 해고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법원은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25년간 공장장 표창을 받고 근속 20년 포상, 회사에 헌신해온 점 ▲25년간 한 번도 징계처분을 받은 적도 없고 ▲해고 이외에 다른 징계를 통해서도 충분히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는 것으로 추론되는 점을 근거로 부당해고로 판결했습니다. 징계해고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 여부”가 기준인데, 비슷한 사례라도 소액을 횡령한 버스 운전 노동자의 경우 법원이 유독 엄격하게 보고 있는 듯합니다.

이번에는 3350원 주차요금을 횡령한 D의 사례입니다. D의 횡령은 6번째 발각됐습니다. 이전에도 여러차례 2750원을 받고 입금하지 않았고, 한번 해고됐다가 노동위원회를 통해 복직한 전력도 있었습니다. D가 자필로 쓴 서약서에는 “직무를 수행하면서 부정한 방법 등으로 금전(과소 과대 불문) 착복 등의 사실이 적발될 시 해임조치의 처벌에 이의를 제기치 아니한다”고 돼 있습니다. 수년간 반복된 주차요금 횡령 사실, 벌금 전과와 징계를 기초로 중앙노동위원회는 정당한 해고라고 판정했습니다(중앙노동위원회 2007부해679). D는 반복된 행위로 인해 여러 번 징계 끝에 결국 해고된 사례입니다.

공평과 법의 재량

횡령(속칭 빼돌리기·삥땅·슈킹)죄는 형법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횡령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타인의 재물을 고의로 유용하거나 반환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론상 단 800원이라도 횡령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편의점 노동자가 밤 11시 30분에 폐기해야 할 5900원짜리 즉석식품 ‘반반 족발 세트’를 같은 날 저녁 7시 40분쯤 꺼내먹었다는 이유로 업무상 횡령죄로 기소된 사건(법원에서는 무죄선고)까지 있었습니다.

버스 운전기사 역시 판결문에 적힌 대로 횡령에 대해 유죄가 인정될 수도 있습니다. 노사합의와 단체협약 역시 영세한 버스회사에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게 맞습니다. 다만 추상같이 단호한 기준을 판사·검사·고위 공직자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들이 버스 운전기사와 똑같이 소액이라도 불법을 저질렀다면 ‘공평하게’ 면직하고 사회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 일반의 시각이 아닐까 합니다.

해고 조치는 한 사람을 최종적으로 생업의 장에서 배제하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단체협약을 숙지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누군가에게 단 한 번의 기회나마 법원이 부여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시각도 상당합니다. 단체협약에는 단 하나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단체협약보다 상위법인 근로기준법 제23조의 징계에는 해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 감봉, 그 밖의 징벌도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한 판결문(서울행정법원 2021구합58110)을 소개하면서 이번 이야기를 맺을까 합니다.

“원고의 한순간 실수는 공동체가 충분히 포용하거나 관용할 여지가 큰 것으로서 향후 그 공익 침해의 여지는 매우 희박하다고 볼 수 있는 반면,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해 원고와 그 가족은 그 생계수단 자체를 박탈당하게 되므로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심대하다고 할 수 있다. 입법자가 재량규정을 통해 법에 눈물과 온기를 불어넣은 이유는 요즘과 같이 우리 사회공동체 전체가 어려운 시절에 법의 일률성으로 인해 혹여라도 눈물을 흘리게 될지 모르는 그 누군가에게 단 한 번의 기회나마 부여할 수 있게 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어려운 시절에 사회공동체가 건넨 그 한 번의 기회가 어쩌면 공동체의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니, 이것이 바로 ‘법의 지혜’라고 하면 너무 과한 것일까?”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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