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폭포수 같은 나의, 낡은 수도꼭지 같은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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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친구들과는 어느새 잘 만나지 않는 사이가 됐다. 그들에게 했던 표현을 그대로 쓰자면 그들은 한 달 몫의 우정을 한 번에 월급처럼 주는 데 출중한 능력이 있다. 우리가 삶의 중요한 순간에 함께 목격자가 되는 일은 점점 드물어졌다. 이를테면 밤을 꼬박 새워 핏발 서린 눈으로 원고를 마감하고 다음 일정으로 급히 뛰어가다가 지하철 문과 역 사이 작은 틈새에 안경을 떨어뜨려 분실했을 때(나는 안경이 없으면 뵈는 게 없다), 퇴근하는 직장인들 사이에 껴서 마스크 사이로 홍삼진액을 빨아 먹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곳에 40분이나 늦었음은 물론 완벽히 틀린 장소에 잘못 찾아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강남의 벌판 같은 대로에서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행사장에 도착해 사죄한 뒤 3시간 동안 갖은 애를 쓰며 행사를 마치고 자정이 가까운 시각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을 잘못 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아무도 없는 건너편 승강장에서 마지막 차를 기다리던 중 그러고 보니 온종일 한끼도 먹지 못했음을 깨달았을 때, 내 전화를 받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약속처럼 응답이 없었다. 그냥 전화기가 고장 났다고 믿고 싶었다. 나는 그저 오늘 하루가 얼마나 촘촘하고 기가 막히게 고생스러웠는지 말하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승강장에서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친구들은 분명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일을 마치고 목욕을 한 뒤 잠을 자려 하거나, 깨끗해진 몸 위에 보디로션을 바르며 애인과 대화를 하고, 담배를 한대 피우며 책장을 넘기다 휴대폰에 뜬 ‘양다솔’의 전화 화면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돌렸으리라. “내일 얘기하지 뭐.”

전화통에서 길을 잃다

어쩌다 내 전화를 받지 않는 친구들만 사귀게 됐나 생각했다. 내가 그들의 전화를 안 받은 적은 단연코 없다. 언젠가는 지인의 장례식장에 조문을 가기 위해 서울을 벗어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득달같이 받아들었다. 워키토키 같았을 것이다. 창공에 대고 다솔아, 하고 부르면 바로 응? 하고 답이 들리는 수준이었다. 두 달 만에 온 전화였다. “그냥 한번 걸어봤어.” 그 말이 얼마나 벅차고 충격적이었는지 모른다. 그냥이라는 마음으로 나를 떠올려줬다는 것이 감동스러워 벅찼고, 그들에게 그냥 전화를 걸어본 적도 없었으며 그렇게 해서 그들이 받아준 적은 더더욱 없기에 충격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쇼! 음악중심> 같은 프로그램에서 맨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는 실질적인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폭죽 같은 이벤트였다. 유학 간 자식의 국제전화 한통, 실종된 우주인의 무전 신호같이 귀하고 귀한 목소리였다.

오매불망 원해온 전화통이 이어졌으니 절대 끊을 수 없었다. 친구의 목소리는 마치 1980년대에 상공을 날고 있는 전투기에서 들리는 무전처럼 통화 품질이 좋지 않았다. 안 그래도 시끄러운 전철 안에서 친구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를 귓구멍에 쑤셔 넣다시피 했다. 그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있다고 했는데, 그 목소리는 작고 자주 끊겼으며 그 위로 온갖 치지직거리는 소리가 뒤덮여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환승할 정거장을 놓쳤다. 다시 탄 지하철은 방향이 맞지 않았고, 맞장구를 치다 보니 한참 동안 잘못된 버스를 타고 있었다. 별안간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얘기는 계속됐으므로 맞으며 걸었다. 그쯤 되니 귀로 걷는 기분이 들었고, 길이 아니라 전화통 속을 방황하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내 목소리는 점점 촉촉해져 갔다. 친구는 내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초행길의 낯선 장례식장을 향해 가다 길을 잘못 들었는지 따위는 일절 알지 못했다. 전화 속 내 목소리가 한결같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너와 나의 전화 환율

그들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전화를 사수하는지 결코 모를 것이다. 가장 원하는 것들이 으레 그렇듯 그것은 나를 시험한다. 참았던 똥을 싸러 막 화장실에 갔을 때, 따끈한 밥상을 막 한술 뜨기 시작할 때, 샤워실에서 막 머리에 샴푸질을 시작했을 때 울리기 시작한다. 그 기적에 가까운 울림은 짧고 흔치 않으며 그에 대한 내 대답은 오직 하나다. 다리를 비비 꼬고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니며, 갓 지은 밥을 식히고 허리를 숙이고 물을 뚝뚝 흘리며 말한다. “여보세요?” 비행기 이륙 직전에 전화가 온다고 해도 나는 벌떡 일어나 모두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그리고 조용히 하라고) 말한 뒤에 그들의 전화를 받을 것이다.

이쯤에서 그 전화의 출처가 운명적인 연인이나 적어도 썸타는 관계, 짝사랑, 곧 죽음을 앞둔 친구 정도 되냐면 전혀 아니다. 그들은 사지 건강하고 잘난 십년지기 친구들이다. 나는 차라리 그들이 발신전용 휴대폰을 가졌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들이 타국에 있다고 상상하기도 한다. 한 달에 한 번 시차가 맞는 다른 행성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일단 전화를 받으면 필연적으로 매번 벅차오르는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바보처럼 군다. 그러니 그들이 평소에 나를 바보 취급하고 바보라고 평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나에게 그들은 비행기의 기장이 착륙을 알리듯 말할 것이다. “25분 뒤에 끊을 거야.” 그럼 나는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을 애써 추스르고 25분 뒤에 밀려올 슬픔과 아쉬움을 생각하는 것도 미루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랩처럼 쏟아낼 것이다. 그 이야기들은 결국 실제보다 바래고 축소되고 지루해질 것이며 그들에게는 아무런 상관 없는, 그저 평소와 똑같은 이야기가 돼버릴 것이다. “거기서 안경을 떨어뜨렸다니까.” 일어난 사건들을 차례로 발음하고 그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그것은 비로소 과거가 된다. 그제야 그 순간을 보내줄 수 있다.

이후 며칠은 그들과의 통화를 음미하며 지낸다. 마음이 든든했다. 어떤 마음이 내 옆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그려보라고 새 도화지를 받은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이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또 언젠가 달려가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며 색연필을 들었다. 혼자임을 잊었다. 우리 사이의 10년은 그저 전화 환율을 조정하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친구를 가장 사랑하는 이와 친구란 한 달에 한 번 기분 좋은 전화 한통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이와의 관계 수립은 쉽지 않다. 폭포수와 낡은 수도꼭지를 나란히 상상하면 될 것이다. 우리의 관계는 친구라는 존재의 크기가 개개인의 사람에게 잔인하리만치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협의한 순간에 성장했다. 그들이 언젠가 고개를 들고, 전화해볼까? 생각하는 유일한 친구가 나라는 것을 알게 된 바로 그때, 그들에 대한 항의를 멈췄다. 그들이 나에게 전화하지 않는 모든 순간이 조금은 싫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화하지 않는 순간도 사랑했다. 그들은 말했다. 어제 저녁밥을 먹으면서도, 한참 네 얘기를 했어.

<양다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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