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완 형사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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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1980년 언저리를 되돌아보면 뭔가 불온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던 때다. 그렇다고 정치영화는 아니다. 전형적인 형사추리물이다.

제목 암스테르담 바이스(Amsterdam Vice, Baantjer het begin)

제작연도 2019

제작국 네덜란드

상영시간 110분

장르 액션

감독 아르네 투넨

출연 발데마르 토렌스트라, 티호 헤르난트, 리사 스밋

개봉 2022년 10월 예정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씨네마블랙

씨네마블랙

왜 한국에서는 저런 운동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영화 <암스테르담 바이스>를 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스쿼팅(squatting), 우리말로 풀어보면 ‘빈집점거운동’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꽤 흥했다. 대학원에 다닐 때 미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진학한 교포 2세가 같이 공부했는데, 실제 미국 대학원에 진학한 자기 친구 중엔 참여관찰로 빈집점거운동을 연구테마로 삼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때는 198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이야기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담 광장’에서는 베아트릭스 여왕의 즉위식이 열릴 참이었다(네덜란드가 군주제 국가였던가… 싶어 찾아보니 실존 인물이다. 그해 4월 30일 즉위해 2013년 같은 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퇴임했다. 현재는 전 여왕이다). 즉위식을 기점으로 대규모 시위가 준비되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구호는 “집이 없으면 대관식도 없다”다. 비싼 돈을 들여 왕위승계식을 하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비싼 집세를 못 내 가난에 허덕이는 서민을 도우라는 주장이다.

여왕대관식을 둘러싼 음모

영화의 주인공은 이제 막 홍등가 관할 경찰서로 부임한 형사 저드 콕스다. 이름이 그 콕스(cocks), 그러니까 영어권에서 남성 성기의 은어 맞다. 찾아보니 원작 소설의 일부 드라마판에서는 ‘koks’로 쓰기도 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뭔가 홍등가 경찰과 어울리는 이름인데 이 친구, 파릇한 양복이 어울리는 샌님 엘리트 형사다. 그의 파트너는 토니 몬타인. 홍등가 사람들은 다 아는 부패 경찰이다. 그는 현장에 잘 적응하려면 몇가지 법칙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로는 항상 현금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것. 마냥 윽박지른다고 정보를 얻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도주하던 마약사범을 쫓던 저드는 운하에 뛰어드는데,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를 발견한다. 경찰서 형사들은 그의 고지식함을 야유한다. 그냥 내버려 뒀으면 시신은 물에 흘러내려가 다른 경찰서 관할로 넘어가는데 괜히 귀찮은 일만 떠맡게 됐다, 정도다.

그런데 이 사체 심상치 않다. 부검을 해보니 배에 RAT(배신자)라는 글이 칼로 새겨져 있다. 마약에 취해 물에 빠져 죽은 것이 아니라 살인사건이다. 도대체 누구를 배신했다는 것일까.

시체의 미스터리는 두가지 사건의 플롯이 얽히며 풀려나간다. 얼핏 대관식을 방해하려는 거대한 음모가 있어보인다. 시신의 신발에서 나온 주소지를 찾아간 두 형사는 대관식이 열릴 담 광장 인근 빌딩의 평면도와 관련 정보 및 자료를 방대하게 스크랩해놓은 방과 마주한다. 지문이라도 얻고자 과학수사대와 방문한 형사들 앞에 놓인 것은 깨끗하게 치워진 방과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세척제다. 처음에 운하에서 발견된 시신은 여왕의 대관식을 방해하려는 급진 좌익과격파들의 음모였을까.

앞서 빈집점거운동을 거론했는데, 파트너 형사 토니의 집에 놀러간 주인공은 토니의 여동생 진이 그 스쿼팅 운동의 수괴에 해당하는 인물임을 눈치챈다. 대관식을 앞두고 경찰은 과격분자의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기획한다. 저드 콕스 형사는 진을 찾아가 작전을 누설한다. 다치기 전에 피하라고. 두 사람은 ‘썸’을 타는 관계로까지 발전한다.

전형적인 형사추리물

스쿼팅 운동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리뷰를 시작했지만 그건 일종의 맥거핀(미끼)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형사들의 눈을 돌리기 위한 ‘누군가’의 음모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80년이다. 대관식이 진행된 날은 4월 30일. 그 전후 며칠 상간에 벌어진 일을 영화는 담고 있다. 분명 이 무렵의 시기를 되돌아보면 뭔가 불온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던 때다. 북미와 유럽을 휩쓴 68혁명의 여진(餘震)은 대의를 위해서는 살인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식의 과격한 흐름조차 나타내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를 다룬 <바더 마인호프>(2008)와 같은 정치영화를 기대했다면 아마 실망할 것이다. 영화는 형사를 주인공으로 한 전형적인 추리오락물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홀로 남겨진 저드는 토니가 이야기했던 첫 번째 교훈, 현금을 항상 들고 다니라는 말을 떠올리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술값을 치른다. 민완형사의 탄생이다.

<투캅스>와 <암스테르담 바이스> 원작, 누가 오리지널일까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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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드와 토니 듀오의 활약을 보면 한국영화 <투캅스>(1993)에서 박중훈이 연기한 경찰학교를 막 졸업한 신입형사 강민호와 퇴임한 비리형사의 후임으로 짝을 맞추는 조형사(안성기 분) 콤비가 떠오른다. 그런데 누가 오리지널일까. <암스테르담 바이스>가 2019년작 영화이니 <투캅스>와 같은 영화를 참고한 것?

<암스테르담 바이스>의 원제는 ‘Baantjer Het begin’이다. 영화의 원작인 인기 TV형사드라마 시리즈가 있었던 모양인데 방영 시기가 1995년에서 2006년이다. 꽤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총 12시즌에 123편이 제작됐다. 주인공은 저드 드콕. 그러니까 이번에 만들어진 영화는 암스테르담에서 벌어지는 온갖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헤쳐 나가는 드콕 형사라는 인물이 어떻게 세상에 나타나게 됐는가를 보여주는 일종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작품이 되겠다.

아무튼 영화가 묘사하는 주인공의 캐릭터는 로봇같이 기계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냉혈한이라기보다 고뇌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가진 형사의 모습이다. 익숙한 캐릭터 아닌가. 사실 <투캅스>가 나왔을 때 프랑스 영화 <마이 뉴 파트너(Les Ripoux)>(1984)의 표절 아니냐는 뒷말이 돌았다. 세상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는 법.

영화의 원작인 드라마 전에 원작 소설이 있었다. 드콕 형사 시리즈는 암스테르담 경찰 출신인 네덜란드 소설가 A. C. 반처가 1964년부터 쓰기 시작한 대표적 형사물이다. 찾아보니 그중 국내 번역판도 한권 있다. <드콕 형사와 침울한 누드>라는 야릇한 제목으로 1994년 출판됐는데(사진) 이제는 절판된 희귀서적인데도 헌책값이 그리 비싸지 않은 것을 보면 네덜란드만큼 국내 팬층이 두텁진 않은 듯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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