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시의 정신’으로 무장한 한·중·일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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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시(Zero Hour)’는 계획된 행동이 개시되는 결정적 순간을 뜻하는 군사용어다. 인류가 직면한 재난 속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화합과 상생을 위한 <예술 평화: 0시의 현재>를 주제로 한 울산시립미술관의 기획전이 주목받고 있다. “인류가 처한 사회적 대립과 갈등, 폭력과 혐오가 팽배한 오늘날의 사회를 한·중·일 3국의 지리적 인접성에 근간한 문화적 연대를 통해 현시대가 지향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회복과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화합과 상생의 미래를 제안”하는 전시다. 9월 18일까지 열린다.

울산시립미술관 <예술 평화: 0시의 현재>전 / 김옥렬

울산시립미술관 <예술 평화: 0시의 현재>전 / 김옥렬

올해 울산이 탄소중립지원 공모에 선정돼 2025년까지 국가적 지원을 받는다. 현대의 인류가 직면한 산불과 홍수 그리고 가뭄에 폭염이라는 기후재앙은 거실 창 너머가 아닌 집안 곳곳에 침투해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0(zero)’으로 만든다는 ‘탄소중립’과 ‘0시의 현재’는 국가이기주의와 자본주의로 점철되었던 근현대화 과정에서 싹튼 기후재난 앞에서 냉철한 자각의 시간을 요구한다.

<예술 평화: 0시의 현재>전은 낡은 세계의 몰락과 새로운 출발을 선언하는 ‘0시의 정신’으로 인류 공동체를 위한 화합과 상생의 미래를 제안하는 한국(김승영·박재훈·이용백·홍순명), 중국(쉬빙·장샤오강·송동), 일본(아이다 마코토·오자와 츠요시·침폼프롬스마파그룹·스노우플레이크) 작가 11명이 참여하고 있다.

김승영의 ‘쓸다’는 글을 쓰는(write) 행위와 마당을 쓰는(sweep) 행위를 통한 정화의식으로 상생과 조화에 대한 시청각적 체험을 제공한다. 홍순명의 ‘타국에서 온 장군’은 한국전쟁의 상징적 인물을 통해 동일한 역사적 사건과 평가에 대한 과잉과 결핍 사이를 자각하는 지점을 제시한다. 중국 작가인 송동의 ‘빅 브라더’는 현란한 빛을 발산하는 거대한 샹들리에를 쉽게 소비하고 폐기하는 플라스틱으로 설치했다. 화려한 외관의 대량 소비재에 감시카메라(CCTV)처럼 보이는 오브제를 배치해 마치 관객을 감시(조지 오웰의 정보독점 체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쉬빙의 ‘어디에 먼지가 있으리오’는 9·11테러 당시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작가가 건물이 파괴된 현장 인근에서 수거한 먼지로 쓴 문장이다. 이는 물리적인 빈 공간인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를 통해 비물질적인 물음 앞에서 인간의 실존과 사유의 의미를 찾으려는 지구 공동체의 움직임을 매개한다.

아이다 마코토의 ‘동북아시아 장아찌 선수권 대회에서 최하위를 차지한 일본 대표 누카즈케의 항의 성명서’는 한국, 중국, 일본의 대표적 절임채소(김치/짜이/누카즈케) 경연대회를 통한 작가의 유머를 담았다. 이러한 희화적 상징을 통한 작가의 의도에는 문화의 우열을 가리고 평가하는 자문화 중심주의라는 배타적 감성이 자리한다. 또한 아티스트 그룹인 ‘스노우플레이크’는 홋카이도 토비우 아트커뮤니티에서 결성된 아티스트(나라 요시토모·쿠니마츠 키네타·코즈케가와 히로야스·오쿠야마 미사에)의 협업으로 만든 설치와 다큐영상을 전시했다. 오브제는 바다에서 우연히 가져온 재료로 만든 설치물이다. 이 작업은 각자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서로의 미의식과 창작행위를 공유하고 겹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스노우플레이크’만의 눈송이로 다양한 이미지를 구현했다.

베를린의 0시, 그 성공의 원천이 어떤 핑계도 없이 가능했던 것처럼 울산시립미술관의 평화를 위한 ‘0시의 현재’는 폭력과 혐오 없이 한·중·일 작가의 작품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로 화합과 상생의 미래를 제안한다.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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