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라이즌 월드’와 현실세계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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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 월드의 캡처 화면. www.oculus.com

호라이즌 월드의 캡처 화면. www.oculus.com

메타가 출시한 소셜 가상현실(VR) 플랫폼 ‘호라이즌 월드’를 두고 흥미로운 논란이 일었다. 최근 메타는 호라이즌 월드의 유럽판 출시를 소개하며 이 회사의 창업자인 주커버그의 아바타 이미지를 공개했다. 이를 두고 다수의 언론사와 비평가들이 ‘캐릭터의 그래픽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절하했다. 며칠 뒤 메타는 올 하반기 대규모 그래픽 업데이트를 진행하겠다고 대응했다. 기술 수준에 대한 폄하로 이어질까 염려한 탓이다.

이 공방은 가상현실을 둘러싼 현실계 인간들의 복잡미묘한 감정과 인식체계를 폭로했다. 현실 인간에게 가장 이상적인 가상현실은 현실세계와 가까운 수준의 복제와 모방의 형태여야 한다. 현실과 VR의 거리, 그것이 기술적·사회적 평가의 척도가 된다. 호라이즌 월드에서 재현된 주커버그의 아바타를 그의 실제 외모와 가깝게 모사할수록 우수한 품질로 인정하려는 경향이 작동해서다.

하지만 소셜 VR의 세계는 그 단계를 넘어선다. 소셜 VR은 현실의 복제나 모방이 아니다. 원본과의 거리는 오히려 소통을 방해한다. 원본 현실의 모순과 한계까지 복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실세계의 유색 여성 사용자가 소셜 VR에서 동일한 캐릭터로만 재현된다면 그는 다시금 현실세계의 차별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물리적 현실세계의 사회제도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소셜 VR로의 이전 과정에서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2005년 출시된 세컨드라이프가 그랬다. 사용자의 두 번째 삶을 상징하는 가상현실 공간이었지만, 현실 재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세컨드라이프에 올라온 다수의 인간, 사물, 공간 등은 현실의 모방품들이었다.

2세대 VR이라 할 수 있는 소셜 VR은 현실의 우월성에 대한 부정에서 시작된다. 현실세계의 모양새를 가장 현란한 방식으로 재현하는 건 소셜 VR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대신 가상적 몰입성은 강화하되 상호작용성을 중심에 둔다. VR의 다음 버전이라기보다는 페이스북의 VR 재현 모델에 가깝다. 여기에 표현과 창작의 가능성과 잠재성이 덧붙는다. 세컨드라이프가 1개의 가상세계를 전제로 했다면 호라이즌 월드와 같은 소셜 VR은 복수의 가상세계를 창조하도록 허락한다. 소셜 VR 게임 ‘모여라 동물의 숲’이 판매된 기기 수만큼의 새로운 섬(가상공간과 세계)을 생성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이 단계로 진입하면 현실의 복제와 모방은 의미를 잃게 된다. 현실의 인간이 인간의 모습으로 재현될 이유도 사라진다. 동물의 모습이 될 수도 있고, 로봇의 형태도 가능하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경계선도 모호해진다.

정작 중요한 건 소셜 VR이 현실세계에 미칠 영향이다. 소셜 VR의 가상현실 생성은 현실과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연쇄적 지속 상태에 있다. 현실의 극복과 지양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서의 관계맺음과 소통방식을 재구축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현실세계의 기준과 제도가 소셜 VR에서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가상현실에서 경험한 제도와 소통 프로토콜은 곧장 현실세계로 향한다. 때문에 소셜 VR 의존도가 깊어질수록 현실 사회의 제도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가상화폐와 소셜미디어의 경험이 현실 제도의 위기 국면을 불러온 것과 같은 이치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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