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음속 육상교통, 방대한 파급력에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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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튜브 개발 앞장선 이형우 한국교통대 교수

이형우 교수가 한국교통대 철도공학부 전동력연구팀이 개발한 ‘비대칭 양측식 선형유도전동기’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주미영 작가

이형우 교수가 한국교통대 철도공학부 전동력연구팀이 개발한 ‘비대칭 양측식 선형유도전동기’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주미영 작가

음속에 가까운 최대 시속 1200㎞로 달리는 초고속 미래교통 시스템이 건설된다고 한다. 공기 저항과 지면 마찰력이 거의 없는 진공 튜브 안에서 초고속으로 달리는 모빌리티다. 국제선 제트 여객기의 평균을 능가하는 마하 1에 근접한 속도로 441㎞인 경부선을 20분에 주파한다. 이 미래형 교통수단에 국토교통부는 ‘하이퍼튜브(Hypertube)’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반도를 1시간 안에 종단? 공기 저항이 거의 없는 ‘아(亞)진공’(0.001~0.01기압) 튜브 안에서, 자기력으로 차량을 추진하고 부상시키는 기술이 적용된다. 한반도 최북단인 함북 온성군과 최남단인 전남 해남군의 직선거리는 1013㎞에 불과하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한반도를 1시간 안에 종단할 수 있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현재 하이퍼튜브 프로젝트는 국토부·과기부가 공동 주관하고, 철도기술연구원·건설기술연구원 등 7개 관련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향후 9년간 9000억원 정도의 예산을 들여 ‘핵심기술과 실증 연구에 나선다’는 복안이다. 현재 기획재정부에 예타 절차를 신청한 상태다. 기술 개발 테스트베드 부지선정을 위한 공모 절차에도 들어갔다. 전라북도가 우선협상자로 선정돼 현재까지는 새만금 지역이 가장 유력하다. 단선 12㎞의 시험 선로를 만들어 시속 800㎞의 실증 속도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이퍼튜브는 ‘자기부상열차’와 핵심기술의 메커니즘을 상당 부분 공유한다. 한국이 세계적으로도 우월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분야다. 자기부상열차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건 1993년이다. 대전 엑스포 피라미드 모양 전시관에서 40인승 열차가 출발했다. 거리는 1㎞에 불과했지만, 바퀴도 없이 공중에 떠서 움직이는 열차에 관람객들은 열광했다.

이형우 한국교통대 교수(49)도 당시 대전 엑스포 현장에서 자기부상 열차를 관람했다. 이후 그는 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며 그 분야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가 됐다. 철도공학부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하이퍼튜브의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 8월 중순 한국교통대 의왕 캠퍼스에서 그를 만나 하이퍼튜브 기술의 원리와 그 적용 방식, 혁신적인 교통수단으로서의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1993년에 대전 엑스포가 열렸는데, 거기서 자기부상열차라는 게 처음 국내에 소개됐습니다. 현장에서 실물을 보고 그 분야를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한양대 공대 2학년 때였죠. 자기부상열차는 ‘선형 전동기’라는 특수한 모터를 사용하는데, 한양대가 당시 ‘에너지변환연구실’을 운영하면서 선형전동기에 특화된 연구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석사를 마칠 때까지는 전동기의 ‘설계와 해석 분야’를 공부했고,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할 때는 전동기의 구동 전반을 컨트롤하는 ‘제어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여기서 ‘해석’이라는 분야는 컴퓨터를 이용해 시뮬레이션하면서 전동기의 성능을 분석하고 모델링하는 일이다. 일일이 기계를 제작하게 되면 큰 비용이 드니까,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성능을 미리 파악하는 작업이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설계와 해석 분야 공부를 어느 정도 마친 이형우는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전기기기 제어 분야의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당시 독일이 자기부상열차 분야에서 앞서갔지만, 인적 네트워크와 저변에 있어서는 미국 대학이 더 낫다는 스승의 조언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자기부상’을 넘어 ‘하이퍼튜브’로 가려면 진공 시스템의 구축이 필수적이다. 여기에는 3가지 기본 요소가 전제된다. 첫째는 0.001~0.01기압의 ‘아진공 환경’을 만들고, 주행통로가 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자기력으로 차량을 부상하고 추진시키는 궤도의 완성, 마지막으로는 아진공 환경에서 객실의 기밀도를 유지하며 주행할 수 있는 차량의 개발이다.

“우리나라 KTX 같은 바퀴로 가는 열차를 생각해봅시다. 이 열차의 속도를 계속 높이다 보면 문제점이 나타납니다. 시속 300㎞가 넘어가면 바퀴의 점착력이 줄어들고, 또 공기의 저항을 받습니다. 공기 저항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 급격히 증가합니다. 이 저항을 극복하려면 결국 속도의 세제곱에 달하는 출력이 필요합니다.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기 때문에 고속으로 올리기가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초음속의 속도를 내기란 기존 인프라에서는 불가능하단 결론이 도출되죠. 그래서 ‘하이퍼튜브’라는 개념이 고안됐습니다. 공기 저항이 없는 튜브 안에서 자기부상 캡슐을 구동하는 고출력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지요.”

튜브 안의 캡슐은 그 추진력을 자석을 통해 얻는다. 캡슐 아랫부분에 자석이 놓여 있고, 터널 바닥에는 자기장이 흐른다. 같은 극의 자석은 서로 밀어내고, 다른 극은 서로 잡아당기는 원리가 적용된다. 캡슐이 터널을 지나가는 동안 터널 속 자기장은 수시로 변화한다. 캡슐 앞쪽에서는 끌어당기는 힘이, 뒤쪽에서는 밀어내는 힘이 발생한다. 자기부상 열차와 마찬가지로 캡슐은 터널 바닥에서 살짝 떠 있는 상태로 이동한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2020년 개발한 하이퍼튜브 축소 모형. 시속 1019km 주행에 성공해 하이퍼튜브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제공=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2020년 개발한 하이퍼튜브 축소 모형. 시속 1019km 주행에 성공해 하이퍼튜브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제공=한국철도기술연구원

일론 머스크의 하이퍼루프 “2012년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진공 튜브 안에서 캡슐 형태의 열차가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나르는 교통 시스템을 제안했어요. 그게 일론 머스크의 이른바 ‘하이퍼루프(HyperLoop)’ 구상입니다. 2013년 그는 하이퍼루프의 기본 개념을 담은 ‘하이퍼루프 알파’ 문서를 오픈소스 형식으로 공개했죠. 이후 전 세계 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이 분야 관련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제안을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자. 그가 제안한 ‘하이퍼루프’는 우리나라가 추진하는 ‘하이퍼튜브’의 원리와 큰 틀에서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일론 머스크는 대체로 1500㎞ 이내의 교통 수요가 많은 두 도시를 연결하는 데 하이퍼루프 교통수단이 유용할 것으로 예측했다. 안전하고 빠르며, 날씨나 지진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지속가능한 자가 동력 장치에, 소음과 분진 등으로 루프 근처에 사는 주민의 삶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일단 미국 LA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거대한 튜브를 설치하고 내부 공기를 모두 빼서 진공상태로 만든다. 그런 거대한 진공상태의 튜브를 만든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어쨌거나 일론 머스크의 상상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튜브 외벽에는 태양광 에너지를 전력으로 바꾸는 태양광 패널을 부착한다. 진공상태 튜브 내부에는 40~50명 승객을 수용할 수 있는 객차(캡슐)를 넣는다. 객차는 에어펌프 또는 자기장을 이용해 떠 있다.

객차에 가해지는 저항이나 마찰을 극소화했기 때문에 초반에 달리기 위해 가속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관성의 법칙으로 이동한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지상에 자리 잡은 터널 속을 날아다니는 비행기인 셈이다. 에너지 소비량은 항공기의 8%, 고속철도의 30%에 불과한데 이산화탄소와 소음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야말로 꿈의 교통수단이다.

“하이퍼루프, 또는 하이퍼튜브 시스템의 상용화에는 과학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우선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넓고 긴 공간에 아진공 상태를 장시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튜브 전체를 아진공 상태로 유지하려면 극도로 작은 균열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점도 넘어야 할 벽입니다. 튜브 안에서 운행되는 차체도 마찬가지죠. 호흡을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에 완벽에 가까운 차폐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넘을 수 없는 벽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형우 교수는 “하이퍼튜브 건설이 산업계에 미치는 테크놀로지의 파급력이 방대하단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미영 작가

이형우 교수는 “하이퍼튜브 건설이 산업계에 미치는 테크놀로지의 파급력이 방대하단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미영 작가

초고속 교통수단 현실화 가능성 입증 국내에서도 이와 관련한 핵심기술 연구는 그간 꾸준히 추진됐다. 우선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2020년 17분의 1 축소모형시험을 통해 시속 1019㎞ 주행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그 전까지 “튜브 내에서는 시속 700㎞ 이상의 속도 달성은 어려울 것”이란 인식을 그 실험의 성공으로 돌파했다. 튜브 내 초고속 교통수단의 현실화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다.

튜브 개발 시도도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건설기술연구원에서는 지난해 지름 4m, 연장 10m의 초고밀도 콘크리트 아진공 튜브를 개발했다. 이 튜브에서 0.001~0.01기압을 30분 이상 유지했다고 한다. 포스코는 철강재를 이용한 튜브 제작에 뛰어들었다. 지난 5월에는 하이퍼루프 튜브용 강재인 ‘포스루프355’를 네덜란드 하트사(社)에 처음으로 공급했다. 포스루프355는 포스코가 철강업체 ‘타타스틸 네덜란드’와 협업해 지난해 10월 개발한 열연 강재다. 콘크리트와 철강재 튜브가 개발되는 등 하이퍼튜브의 기초적인 기술 확보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의 차세대 초고속 자기부상열차인 리니어 추오신칸센은 2015년 시험 주행에서 최고 시속 603㎞를 기록했습니다. 2027년부터는 도쿄-나고야 286㎞ 구간을 시속 약 500㎞로 달릴 예정입니다. 최초로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했던 독일은 현재 초고속형 자기부상열차의 실용화에 성공했습니다. ‘트란스라피드(Transrapid)’라는 이름으로 중국 상하이에서 열차를 운행하고 있어요. 그 기술로 건설된 상하이 ‘마그레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기부상 열차입니다. 푸둥 국제공항과 시내 롱양루역을 자그마치 시속 430㎞로 질주합니다. 하이퍼튜브 전 단계의 기술에서 굉장한 의미가 있는 속도죠. 유럽은 바퀴 달린 열차로 350, 400도 가능하지만 300㎞가 최고 속도이고, 그 이상의 상업 운행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속도를 300에서 350㎞로 올리려면 인프라 비용이 거의 배로 뛰거든요.”

음속에 가까운 육상 운송 수단의 개발은 지금과 전혀 다른 시공간 개념의 출현이다. 지상에서의 인간 삶이 재구성되는 국면을 의미한다. 음속으로 땅 위를 달리는 세상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올 수 있을까. 공학적으로만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철학적인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적은 비용으로 인프라 건설이 가능하고,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절감하며, 빠르고 안전하게 사람과 화물을 나를 수 있다면… 그런 혁신이야말로 인간의 행복에 기여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형우의 생각이다.

“기술 개발은 양면성이 있어요. 소비자 또는 구매자 쪽에서 원하는 기술이 있습니다. 그들의 요구에 의해 기술 개발이 이뤄지는 것이죠. 반면에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선도적으로 기술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당연하게 향유하는 컬러 TV, 경부고속도로, 고속전철, 휴대전화 등은 대중이 선제적으로 요구했던 인프라나 테크놀로지는 아니었습니다. 사후에라도 그 필요성에 공감하게 되면 새로운 기술이나 문명에 대중은 대체로 적응합니다. 저는 하이퍼튜브도 대중의 환영을 받는 미래의 새로운 교통수단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화물 운송부터 시작해 도심과 공항을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이동하는 수단으로 각광받을 겁니다. 일론 머스크가 제시한 것처럼 장기적으로는 1500㎞ 이내의 도시를 잇는 유력한 교통수단이 될 수도 있죠. 그 세계는 새로운 문명의 시작을 의미하는 단계일 겁니다.”

하이퍼튜브 개발에 성과 축적 중 하이퍼튜브 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핵심기술을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가 관련 세계시장 선점의 관건이다. 이형우·박찬배·이재범 교수 등 한국교통대 철도공학부 전동력연구팀은 하이퍼튜브 핵심기술 개발에 상당한 진전과 성과를 축적하고 있다. 이형우는 그 가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의 튜브형 초고속 자기부상열차의 추진, 부상, 안내 시스템에 대한 선행 연구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의 핵심기술 개념을 추격하는 연구 개발에 그치고 있어요. 우리가 연구한 ‘비대칭 양측식 선형유도전동기’는 혁신적인 것이라 감히 자부합니다. 추진, 부상, 안내 중 2가지의 기능만을 수행했던 기존의 시스템과 달리 세 기능 모두를 ‘올인원’ 방식으로 묶어냈습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원천기술을 개발해 특허까지 받은 것이죠.”

이형우는 비슷한 맥락에서 “하이퍼튜브 기술이 각 산업 분야로 파급되는 효과와 잠재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분야에 복합적인 기술이 두루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기부상은 반도체하고도 관련이 깊다고 한다. 반도체 웨이퍼를 구동하는 것도 모터인데 그것도 자기부상의 원리가 적용된다. 분진이 나오면 안 되는 반도체 공정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반도체 상의 웨이퍼를 옮길 때도, 부상을 시켜 움직입니다. LED나 QLED 같은 디스플레이의 경우도 파티클 같은 게 하나라도 들어가 픽셀이 깨지면 그 디스플레이를 버려야 하거든요. 물체를 움직이는 공정 안에서 그런 미세한 마찰이 있으면 분진이 생기기 때문에 자기부상 기술을 응용해 대처합니다. 유럽은 현재 고속열차의 표준 속도를 300㎞로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속 500~600㎞ 속도를 계속 연구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상용화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것으로부터 얻는 방계의 기술이 상당히 많기 때문입니다. 국토가 좁은데 하이퍼튜브는 개발해서 뭐하냐는 식의 판단은 단견입니다. 전 산업계에 미치는 테크놀로지의 파급력이 방대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기홍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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