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산란계 자연순환농 김태현 “옥수수 사료 먹이면 건강한 달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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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네자연숲농장’ 김태현(60) 대표를 사흘 연속 만나 8시간에 걸쳐 긴 인터뷰를 했다. 그는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과 사리현동 소재 2곳의 농장에서 산란계 약 2300마리를 키운다. 닭을 키운 지 올해로 10년째, 그의 닭농사 철학은 집요하고 비범하며, 까다롭다. 결코 양보하지 않는 원칙 ‘16무(無) 계명’을 준수한다. 김태현 방식의 ‘자연순환 유기축산’이다.

김태현 대표는 “풀을 먹이지 않고 흙의 중요성을 도외시하는 일이 우리 축산의 큰 폐해”라고 지적했다. / 주미영 작가

김태현 대표는 “풀을 먹이지 않고 흙의 중요성을 도외시하는 일이 우리 축산의 큰 폐해”라고 지적했다. / 주미영 작가

유나네자연숲농장에서 생산하는 유정란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다. 오메가6와 오메가3 지방산 비율이 최적 상태를 유지한다. 치유식이 필요한 다양한 질환의 환자에게 호평받는 달걀이다. 농장을 시작하면서부터 정기 배송 서비스를 채택하고, 정기구매 신청회원 5000여명에게 유정란을 공급하고 있다.

좋은 달걀을 얻는 법 큰 틀에서 그의 양계법은 흙과 풀, 미생물에 기반을 둔다. 닭의 본성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을 때 좋은 달걀을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이다. ‘16무 계명’은 닭을 키울 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그가 설정해 엄수하는 항목이다.

핵심은 ‘무창 밀폐식 사육시설’을 채택하지 않고, 공장에서 생산된 사료를 일절 먹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간에 전등을 밝혀 닭에게 본성에 반하는 달걀 생산을 강요하지 않는다. 항생제나 성장촉진제, 소독약과 살충제도 물론 사용하지 않는다. 유정란을 생산하면서도 인공 수정 방식을 피한다.

흙과 풀, 미생물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라면 닭은 건강하다. 면역력이 강해지면서 항생제를 쓰지 않아도 질병에 시달리지 않는다. 냉난방시설 없이도 엄동설한 추위와 한여름 더위를 거뜬히 이겨낸다. 그가 직접 조제한 사료가 건강한 닭과 달걀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다. 수입 옥수수와 콩이 들어간 공장 사료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 대원칙인데, 그렇게 닭을 키운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김태현은 그 원칙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은 동물 사료용으로 연간 1000만t의 옥수수, 200만t의 콩을 수입한다. 거의 전부가 GMO(유전자변형 농수산물) 작물로 보면 된다. 공장 닭 사료에는 옥수수 60%, 콩 20%가 들어간다. 옥수수를 먹인 닭은 콜레스테롤과 지방의 성분 비율이 건강하지 않다. 그 닭이 낳은 알은 콜레스테롤이 과도하고 오메가3와 오메가6의 비율이 1 대 60까지 나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옥수수는 필수지방산의 불균형이 심한 작물이다. 우리 농장 달걀을 충남대 연구팀에 분석을 의뢰해봤더니 불포화 지방산과 포화 지방산의 비율이 2 대 1이란 결과가 나왔다. 옥수수 사료를 먹여서는 절대 이런 수치가 나올 수 없다.”

반드시 풀을 먹여야 한다 그는 닭에게 16~20가지 정도의 재료가 들어간 자가 사료를 급여한다. 16가지 재료를 기본으로 하고, 계절별로 몇개씩 추가하는 메뉴다. 무공해 풀, 쌀겨, 미강, 산야초, 통현미, 통밀, 통보리, 청치, 건새우, 멸치, 고추씨, 비지, 황토, 과일, 숙성볏짚, 천일염 등이다. 유해물질이 없고, 불포화 지방산과 필수 영양소가 풍부하며, 유전자를 변형시키지 않은 식재료다.

“가장 중요한 것은 풀이다. 풀을 먹인 닭은 지방 성분의 밸런스가 건강하고 영양이 풍부한 알을 낳는다. 옥수수 사료를 먹이지 않으면 노른자의 색깔이 진하지 않다. 그래서 반드시 풀을 먹여야 한다. 그래야 노른자의 색깔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 옥수수 대신 풀을 먹은 닭이 낳은 달걀의 노른자는 진노랑이 아닌 레몬색에 가깝다. 그게 진짜다. 이런 오해가 생긴 데에는 유명 요리연구가와 셰프의 책임도 있다. TV에 나와 색이 진한 노른자를 좋은 달걀의 속성으로 소개하고 있다.”

노른자 색깔이 진할수록 좋은 달걀이라는 ‘속설’에 대한 김태현의 반론이다. 실상은 옥수수를 많이 먹은 닭이 노른자 색깔이 진한 달걀을 낳는다는 것이다. 노른자의 색깔은 ‘크산토필’이라는 황색 색소가 침잠돼 형성된 것이다. 일부 농가에서는 선명한 노른자색을 유지하기 위해 인공 착색제를 사료에 섞기도 한다.

옥수수 사료를 먹이지 않은 닭의 달걀은 노른자가 진노랑이 아니라 레몬색과 비슷한 연한 색을 띤다. / 주미영 작가

옥수수 사료를 먹이지 않은 닭의 달걀은 노른자가 진노랑이 아니라 레몬색과 비슷한 연한 색을 띤다. / 주미영 작가

“철학으로 무장돼 있지 않으면 자연축산은 불가능하다. 우선 압도적인 노동량을 견뎌내지 못한다. 나는 ‘동물복지’라는 제도적 규정이나 의미 부여에 공감하지 않는다. 케이지(Cage·우리)만 걷어내면 동물복지 인증을 준다. 1평당 27마리 이하로만 키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면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1평당 27마리를 키우면 닭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 공무원의 탁상공론으로 이런 제도가 생겼다. 우리 농장은 평당 8마리를 키우는 공간이 있지만, 동물복지 인증을 신청할 생각이 없다. 나는 ‘동물복지’보다 ‘윤리축산’이란 말을 쓴다. 동물복지는 인간 중심의 관점이고 윤리축산은 동물의 입장에서 축산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동물의 행복에 대한 인간의 책임의식에 주목하는 개념이다.”

동물의 행복에 대한 인간의 책임의식은 어떻게 표현되는 것일까. 김태현은 “동물도 시간의 흐름 안에 유장하게 존재한다는 것, 인간처럼 천명(天命)을 받아 낳고 자라고 죽는 존재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후 30일 된 닭이 도축돼 프라이드용으로 팔리는 게 현실이다. 우리 농장의 기준으로 보면 생후 한 달은 아직 병아리에 불과한 시기다. 동물을 속성으로 키우려면 생명을 여러 방식으로 조작해야 한다. 생명에 대한 존중심은 차치하고, 생명이라는 인식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과정이다. 생명이 아니라 1개의 공산품으로 보는 관점이다. 인간이 닭을 고기로 먹으려면 최소한 1년 6개월은 지나야 한다고 본다. 닭은 1년이 지난 후에 골수가 차기 시작해 3년 정도가 돼야 그 과정이 마무리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3년 된 닭을 잡으면 100명이 먹을 떡국을 끓일 수 있다’고 했다. 자연이 동물에게 부여한 ‘생명의 세월’을 인간이 잔인하게 박탈하는 행위는 이제 멈춰야 한다.”

그는 옛 농가의 씨암탉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10년씩이나 키워가며 가족이나 다름없는 대접을 했다. 인공부화가 개발되기 이전에는 오로지 씨암탉의 포란(抱卵)에 의지해 번식이 이뤄졌다. 모든 암탉이 포란을 하고 병아리를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취소성(就巢性·알을 품거나 병아리를 기르는 성질)이 강한 씨암탉은 영혼이 깃든 존재이기도 했다. 김태현은 “취소성이 강한 씨암탉은 유전에 의한 영향을 크게 받는데, 다른 배에서 난 병아리까지도 살뜰하게 돌보는 성정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만의 ‘육추상자’ “병아리를 어떻게 키우느냐가 중요하다. 닭의 모든 특성이 병아리 시절 결정된다. 우선 먹이다. 첫날부터 3일간은 통현미만 먹인다. 가장 딱딱한 곡식을 막 부화한 병아리에게 먹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먹게 된다. 먹을 게 그것밖에 없고, 앞으로도 생존하려면 이 거친 먹이를 먹어야 한다는 자각이 생기는 것이다. 통현미를 먹이면 병아리의 장이 튼튼해진다. 두께가 2배로, 길이가 2.5배로 늘어난다. 장의 길이가 길어지면 먹이를 흡수하는 능력이 좋아진다. 장의 두께는 면역력과 관련이 깊다. 4일째부터 1주일간은 대나무 잎을 먹인다. 아주 거친 먹이다. 이렇게 먹이면 병아리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앞으로 거친 먹이를 먹으면서 성장해야 한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체질이 강해지는 것이다. 1주일 후에는 부드러운 풀을 준다. 풀을 좋아하는 닭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방편이다.”

김태현 대표는 “국회가 축산법 개정을 통해 유기농 자연축산의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주미영 작가

김태현 대표는 “국회가 축산법 개정을 통해 유기농 자연축산의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주미영 작가

그는 병아리를 키울 때 자신만의 육추(병아리를 키움)상자를 활용한다. 육추상자 1개에는 약 150마리의 병아리가 들어간다. 통상 1년에 두 번, 이른 봄과 늦가을에 육추를 시작한다. 절대 난방을 하지 않는다. 바닥과 지붕은 볏짚으로, 벽면은 왕겨로 단열할 뿐이다. 150마리가 각자의 체온으로 육추상자를 따뜻하게 한다. 춥게 키워야 솜털도 많이 나고, 추위에 견디는 내성이 생긴다.

육추상자는 30도 이상의 경사면을 하루에 50번 이상 왕복하도록 고안했다. 이렇게 운동을 하면서 다리의 근력을 키운다. 병아리의 하체가 튼튼해지면 어미 닭이 된 후에도 면역력이 강해 좀처럼 병에 걸리지 않는다. 병아리 때부터 강하게 키우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겨울에도 풀을 먹여야 한다. 그래서 수막하우스에서 호밀과 갓을 키운다. 건초를 먹인다고 홍보하는 농장주도 간혹 있지만 거짓말이다. 닭은 절대 마른 풀을 먹지 않는다. 우리 축산의 가장 큰 폐해가 몇가지 있다. 시멘트 바닥에서 동물을 키우고, 옥수수가 들어간 사료를 먹인다. 풀을 먹이지 않고 흙의 중요성을 도외시하는 일도 큰 폐해로 지적할 수 있다. 미생물의 가치를 무시하는 일 역시 우리 축산의 발전을 가로막는 근원적인 한계로 작용한다.”

그는 옥수수 대신 통밀과 통현미, 청치와 싸라기를 먹인다. 청치는 덜 여물어 껍질 부분에 엽록소가 남아 있는 푸른색의 쌀알을 지칭한다. 청미라고도 부른다. 싸라기는 정미를 할 때 부스러져 상품성이 없는 쌀이다. 쌀눈이 살아 있는 청치가 싸라기보다 닭에게 좋지만, 가격이 비싼 게 흠이다. 10년 전에 비해 가격이 두세 배 상승했지만 감수하고 먹일 수밖에 없는 곡물이다.

“고추씨는 곡물은 아니지만 비타민이 많아 자주 먹이는 재료 중 하나다. 겨울에 고추씨를 먹이는 일은 삼간다. 고추씨를 먹이면 노른자가 짙어진다. 섞여 있는 고춧가루가 색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순환농법을 한다는 사람들도 겨울에는 풀 대신 고추씨를 먹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풀이 귀하기 때문이다. 풀 먹이는 닭이 가장 중요한 브랜드 가치인데, 풀 대신 고추씨를 먹여서 되겠나. 그런 여지를 아예 잘라야 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고추씨를 가까이 두지 않는다.”

그가 산란계 농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목이 바로 미생물이다. 닭에게 프로바이오틱스, 즉 유익균을 먹여야 한다는 것이다. 미생물은 항생제를 대체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토착 미생물을 그는 늘 배양한다. 농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서식하는 미생물을 채취한다.

농장 근처 부엽토를 살짝 걷어내면 그 밑에 흰색 곰팡이가 눈에 띈다. 그게 미생물이다. 채취해서 양파망에 넣고 쌀뜨물, 김칫국물 등 미생물의 먹이를 첨가한다. 토착 미생물의 번식을 활성화하는 물질이다. 미생물이 번식한 깨끗한 물을 매일 아침 2시간 정도 닭에게 급여한다.

“두부를 만들 때 생기는 비지도 좋은 미생물 사료다. 여기에 깻묵과 쌀겨를 투입하면 수분조절제 역할을 한다. 손으로 만지면 툭 하고 부스러질 정도가 된다. 공기를 완전히 차단하는 ‘혐기 발효’를 이용해 미생물을 배양하는 방식이다. 미생물을 먹이면 닭똥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분변이 미생물에 의해 완전히 발효되기 때문에 악취 원인이 사라진다. 원래 닭이란 동물은 몸집이 작아 크고 작은 질병이 잦다. 사실상 항생제 없이 키우기 어렵다. 이때 미생물이 위대한 작용을 한다. 면역력을 키우고, 악취 발생을 억제하니 자연축산의 핵심 요소라고도 할 수 있다. 닭똥과 왕겨, 흙 등이 섞여 사육장 바닥에 쌓이면 그 자체로 더없이 훌륭한 유기농 퇴비가 된다. 1년에 두 번씩 걷어내 풀과 블루베리를 키우는 퇴비로 활용한다. 닭을 건강한 먹이로 키우고, 그 분변으로 다시 식물을 키우는 경축순환 농법이 성립된다.”

진정한 윤리축산 그는 유기축산업계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한다. 초심을 잃고 편법에 의존하는 행태가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보다 돈이 눈에 보이는 순간, 이 사업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김태현 대표는 자신이 직접 재배하거나 채취한 풀을 닭에게 매일 급여한다. / 주미영 작가

김태현 대표는 자신이 직접 재배하거나 채취한 풀을 닭에게 매일 급여한다. / 주미영 작가

공장 사료를 섞어 먹인다는 풍문도 들린다. 작은 농장과 큰 농장을 병행하면서, 건강한 방식의 작은 농장을 앞세워 홍보하는 방식도 활용한다고 한다. 공장 사료를 먹인 달걀을 섞어 판매하기도 한다. 이렇게 소비자의 눈을 속이기 시작하면 장기적으로 이 업계에 희망이 없다고 그는 지적한다. 현행의 동물복지, 유기농 인증제도의 맹점에 대해서도 그는 이런 우려를 제기했다.

“케이지에서만 키우지 않으면 다 동물복지라고 한다. 유기농 사료를 구매해 거래내역을 첨부하면 유기농으로 인증을 받는다. 역설적으로 유기농이 되려면 옥수수 사료를 먹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게 과연 진정한 유기농이 될 수 있나. 철학을 지키면서 유기농 인증을 받으려면 방법은 하나다. 일단 유기농 옥수수 사료를 구매해 인증을 받고, 그 사료는 다 폐기하는 것이다. 무항생제 축산도 마찬가지다. 항생제를 투여하고 2주가 지나면 그 성분이 검출되지 않는다. 항생제를 쓰고 2주를 기다린 후 출하하면 무항생제 축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난 동물복지나 유기농 인증에 관심이 없다. 진정한 윤리축산을 실천해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축산법의 개정이 그래서 필요하다. 국회가 유기농 자연축산의 제도적 틀을 만들어줘야 한다.”

김태현은 농협에서 오래 근무하다 퇴직한 후 크고 작은 사업에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다. 유통업에 종사하며 연간 100억원대 매출을 올리며 큰돈을 벌기도 했다. 승승장구의 운세를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다. 대신 자연순환의 건강한 축산농가를 일궈냈고, 딸 셋에 아들 하나를 잘 키운 유복한 가장이 되는 데는 성공했다. 뉴질랜드에 유학한 아들이 한국에 돌아와 지난해 말부터 양계장 일을 돕기 시작했다.

“아들이 대를 이어 닭을 키워보겠다고 한다. 한 달 더 일을 시켜보고 그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경기도 연천에 세우고 있는 3000평 규모의 양계장 운영을 맡길 생각이다. 철학과 가치의 자각이 없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본인이 행복을 느껴야 한다. 조만간 결론을 내릴 생각이다. 그것이 내 축산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

<한기홍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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