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감동 <서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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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소리만 좇던 아비 유봉. 노랫소리에 깊은 한을 심어주려 일부러 딸 송화에게 약을 달여 먹여 눈을 멀게 한다. 이윽고 아비가 세상을 떠나자 밉다고 통곡하는 송화의 소리는 때론 악에 받친 비명 같고, 때론 구슬픈 자락처럼 들린다. 바로 득음의 순간이다. 뮤지컬 <서편제>에서 만나는 처연한 감동이 담긴 장면이다.

뮤지컬 <서편제> / PAGE1 제공

뮤지컬 <서편제> / PAGE1 제공

영화로 알고 있지만 사실 진짜 원작은 소설이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처음 선을 보인 것은 1976년 발표된 이청준의 소설이다. 그래도 대중의 기억에 선명하게 각인된 계기는 그 활자를 영상으로 승화시킨 임권택 감독의 손길 덕분이다. 멀리서부터 구불구불 이어지는 시골길을 걸으며 아버지와 오누이가 함께 소리하는 모습이 담긴 롱테이크 기법의 영화 장면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대한민국 영화사의 대표적인 명장면이다. 당시 신예 국악인 오정해는 이 영화를 통해 일약 국민배우로 등극했다.

뮤지컬은 2010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여러 작품을 통해 자신의 색깔을 뽐내고 있는 연출가 이지나가 특유의 이미지와 색채, 개성 강한 무대적 양식을 더해 대극장용 창작뮤지컬로 완성했다. 우리 소리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전반적인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재가공하는 승화의 과정을 거쳐 입체적으로 다시 짜맞추는 묘미를 선보였다. 아역 배우와 성인 배우가 번갈아 등장하며 이중창을 노래하는 회전무대의 수려한 이미지는 이지나표 재미가 듬뿍 묻어 있는 이 뮤지컬의 백미다. 영화를 알고 무대를 찾더라도 익숙함 속에 여전히 다시 새로운 감상이 느껴지는 배경이자 이유다.

국악을 적절히 활용했지만, 무대에 등장하는 음악은 사실 그 이상의 다양한 장르가 총망라돼 있다. 이은미의 노래로 유명한 대중음악 작곡가 윤일상이 참여하며 음악적 경계를 확장한 까닭이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바로 그가 만든 이 작품 최고의 선율이다. 극장을 나서며 한숨을 섞어 흥얼거리는 관객들의 모습에서 작곡가의 탁월한 대중적 감각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영화에 오정해가 있었다면, 2022년 앙코르 무대에선 이자람과 차지연, 유리아, 홍자, 양지은, 홍지윤 등 여섯 배우가 번갈아 무대를 꾸민다. 앞선 세 배우가 다양한 작품을 통해 무대적 완성도를 뽐내왔던 경우라면, 뒤의 세 배우는 <내일은 미스트롯>을 통해 가창력을 검증받았던 경우다. 국악을 배웠거나 전공이었던 경우도 여럿 있다. 덕분에 어느 배우가 등장하는가에 따라 음악적 감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도 우려되지만, 여러 번 객석을 찾고 싶을 만큼 호기심을 자극받게도 된다. 여러차례 무대를 꾸몄던 원숙함을 기대한다면 이자람이나 차지연을, 신선한 변화나 실험을 원한다면 다른 배우들을 도전해보길 권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역시 엔딩신(scene)이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서편제>의 매력이 듬뿍 담긴 판소리 ‘심청가’ 중에서 심학규의 개안 장면 소리 자락이 원형으로 돌아가는 턴테이블 무대에서 극장을 가득 메우는 조명과 함께 배경음악과 어우러지며 화려함을 선사한다. 마치 소리가 조명 빛깔처럼 펼쳐지는 별난 체험을 하게 된다. 창작 뮤지컬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일대 장관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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