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인을 존중한다면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우영우와 어둠의 속도

최근 화제몰이 중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며 응원하는 시청자들이 많으리라. 하나 현실은 냉담하다. 바로 이달에 대한항공 국제선 여객기에서 자폐인이 강제하차 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해가 될 만한 행동은 전혀 없었으나 승무원들 입장에서는 안내의 손길을 뿌리치고 달아나 기내를 벗어나기까지 하니 적잖이 당혹스러웠으리라. 자폐인은 낯선 이가 자신을 만지려 할수록 신경이 곤두선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문의 장편소설 <어둠의 속도> / 푸른숲

엘리자베스 문의 장편소설 <어둠의 속도> / 푸른숲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런 현실을 소위 ‘서번트 증후군’으로 분류되는 극소수의 자폐인을 내세워 우회한다. 실제로 일부 자폐인은 자신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악기연주와 회화 같은 예술을 비롯하여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 솜씨를 발휘한다. 믿기 어렵다면 영화 <레인맨>에 나오는 자폐인(더스틴 호프만 분)의 실제 모델인 미국인 킴 픽이 전화번호부를 통째로 암송하는 다큐멘터리를 유튜브에서 확인해보시라. 다만 우영우 같은 자폐인 변호사는 나오기 어렵다. 자폐인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낯선 이와의 소통이다. 서번트 증후군 자폐인조차 한정된 영역에서는 놀라운 자질을 보여주나 대인관계에 관한 한 속수무책이다. 우영우는 꿈의 이미지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그럴까? 장차 나노테크놀로지와 생명공학의 시너지는 배아단계에서 유전자 결함을 원천제거하거나 어른이 된 자폐인의 증상을 후천적으로 상당부분 완화해줄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의학적 개입이 윤리적으로 온당하냐는 것이다. 단순한 질병이나 상처와 달리 자폐는 한 인간의 기질을 결정짓는 생득적 유전형질이다. 이 말의 의미가 단번에 이해되지 않는다면 당신이 이 사안을 자폐인 대 정상인이란 이분법 구도로 보는 틀에 갇혀 있다는 뜻이다. 엘리자베스 문의 장편 소설 <어둠의 속도>는 바로 이 문제를 자폐인의 시각에서 사려 깊게 헤아린다(작가의 아들 또한 자폐인이다).

수정란 때부터 자폐 치료가 가능해진 미래, 하지만 미처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태어난 자폐인 마지막 세대가 있다. 이들은 패턴 알고리듬을 순식간에 읽어내는 특출한 능력 덕에 대기업에 채용돼 후한 복지혜택을 누리는데, 주인공 ‘루’도 그중 한명이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방침이 바뀌고 이들에게 막 새로 개발된 ‘정상화 치료’를 받으라는 강압적 분위기가 형성된다. 인건비 감축과 신기술 검증이 목적인 만큼 치료의 실질적 수혜자는 자폐인이 아니라 회사다. ‘루’는 이 임상시험의 모르모토로 나서도 될지 솔직히 망설여지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데서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운 터라 전전긍긍한다. 그가 고뇌를 거듭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내게서 자폐가 사라진다면 그런 내가 이전의 나와 여전히 같다 할 수 있을까?’

자폐인뿐 아니라 살다 보면 누구나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요는 그러한 선택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자폐인 ‘루’가 머뭇대는 까닭은 ‘정상화 치료’가 그의 내면에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욕구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가해진 압박이라서다. 자폐는 고칠 수 있다면 고쳐야 하는 질병인가, 아니면 그것을 소유자가 지닌 고유 인격의 일부로 봐야 할까? 우리 사회가 자폐인을 존중한다면 그들을 우리와 똑같이 개조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온당할까? 이런 고민은 비단 SF소설만이 아니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온전히 소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고장원 SF평론가>

장르물 전성시대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