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 - 노예제 시대로 타임 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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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패턴마스터>로 데뷔한 옥타비아 버틀러는 당시 SF계에서 가장 이질적인 작가로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주로 백인 남성 작가들이 백인 남성 캐릭터를 앞세우던 SF계에서 그는 흑인이면서 또 여성이었다. 이러한 ‘독특한’ 정체성은 그대로 작품에 반영돼 독보적인 성취로 이어졌다. 그는 2006년 58세로 타계하기 전까지 아프리카 문화와 미국 역사에 판타지를 덧대 인종과 젠더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등 권력과 시스템에 저항하고 반발하는 SF 장르의 보다 근원적인 의미에 천착했다.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작가 개인의 배경 그대로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이를 부추겼던 낯설고도 익숙한 환경이 무척 이채롭게 그려졌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장편소설 <킨> / 비채

옥타비아 버틀러의 장편소설 <킨> / 비채

1979년작 <킨>은 타임 슬립과 미국 노예제도를 결합한 그의 대표작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1800년대 초 미국 메릴랜드로 강제로 소환된 흑인 여성 다나는 느닷없이 엄혹한 노예제의 희생자가 된다. 갑자기 과거로 가게 되는 이유나 방법은 알 수 없지만 루퍼스라는 백인 남자아이가 곤경에 빠질 때마다 자신이 그곳, 그 시간대로 옮겨가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처음 타임 슬립했을 때도 물에 빠진 루퍼스를 구해 인공호흡으로 겨우 살려냈다. 그런데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아이의 부모란 작자들이 ‘검둥이(nigger)’라는 차별적인 언사와 함께 다짜고짜 총구를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총에 맞기 직전 다나는 원래의 1976년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후에도 이 일은 반복된다. 이번엔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다음에는 어떨까. 심지어 금세 돌아올 거라는, 아니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없다. 실제로 다음엔 남편 케빈과 함께 과거로 간 다나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노예로 생활한다. 게다가 노예주에게 가죽 채찍을 맞고 극도의 고통을 느낀 나머지 케빈을 남겨둔 채 홀로 현대로 소환된다. 다나는 8일 후 다시 과거로 가지만 그사이 케빈은 그곳에서 무려 5년을 버텨야 했다.

다나를 위협하는 건 노예제가 상징하는 명백한 폭력만이 아니다. 위생 개념이라고는 없어 언제고 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그는 음식을 섭취하는 위험과 배고픔을 저울질한다. 그럼에도 가장 큰 고통은 루퍼스와의 애증관계에서 찾는 게 옳다. 다나는 루퍼스가 자신의 먼 조상임을 곧 깨닫는다. 루퍼스가 강제로 범한 노예 앨리스 역시 족보에는 그의 부인으로 명시돼 있었다. 그러니 현대의 자신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루퍼스를 지켜야만 할 테고, 지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진실을 알고 있는 ‘권력자’ 루퍼스에게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루퍼스는 이 시대 다른 백인 남자들과 다르지 않아 변덕스럽고 잔인하며 자기중심적이다. 그리고 뭐든 소유하려 한다. 다나의 마음까지도.

<킨>의 타임 슬립은 노예제를 그대로 체험하는 듯한 감각으로 왜 이 시스템이 사람을 그토록 옭아맬 수 있었는지 그 효율적인 심리 감옥을 현대인의 시선에서 들여다보게끔 이끈다. 나아가 현대인인 다나가 루퍼스에게 느끼는 증오와 애착이 상충하며 만들어내는 갈등은 단순히 시대의 고통에 그치지 않고, 타락과 공포, 용서와 복수까지 아우르며 내내 인간의 충동과 이성을 저울질한다. 그렇게 우리의 눈으로 바라본 19세기에는 이기적인 인간의 저열한 지배욕이 낱낱이 드러나 있다. 여러 위기와 갈등으로 그려낸 서스펜스와 애증의 드라마 모두 시대의 비극을 넘어선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유산답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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