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기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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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로봇은 인간일까 로봇일까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신형 로봇들은 체조선수처럼 제자리에서 사람 키만큼 점프, 공중회전하며 깔끔하게 착지한다. 숙련된 곡예사나 할 수 있는 솜씨다. 자율형 자동차시장 선점을 위해 하드웨어뿐 아니라 고품위 인공지능이 필요한 현대그룹이 2021년 1조원에 가까운 투자금으로 이 회사를 인수한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행동뿐 아니라 외모 흉내내기에도 열심이다. ‘엔지니어드 아츠’가 개발한 로봇은 표정 변화와 몸짓이 진짜 인간에 비해 손색이 없다. 이를 두고 일찍이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란 표현을 썼다. 인간의 외양을 많이 닮은 로봇일수록 대면하는 사람의 불쾌감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실제로 아톰 같은 만화캐릭터 로봇에게는 호감을 느끼나 인간의 외모를 빼닮았지만 어딘지 어색한 로봇 안드로이드에게는 섬뜩하고 불길한 인상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본 애니메이션 <아이코 인카네이션> / 넷플릭스

일본 애니메이션 <아이코 인카네이션> / 넷플릭스

일론 머스크의 바이오테크기업 뉴럴링크는 정반대 쪽을 노크한다. 뇌에 무선전자칩을 삽입해 방대한 인터넷과 직접 접속 및 실시간 대응함으로써 인간에게 인공지능 못지않은 능력을 부여하려는 시도다. 뇌파로 사물인터넷을 직접 제어하는 것은 단지 일론 머스크의 홍보성 주장에 그치지 않는다. 그에게 쏟아지는 신랄한 비판(독창성 없는 장사꾼)이 역설적 반증이다. 과학자들은 지난 수십년간의 연구로 자신들이 얻어낸 성과를 마치 혼자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고 있는 양 떠들어대는 발 빠른 사업가에게 분통을 터뜨린다.

우리는 SF의 상상을 현실이 가뿐히 넘어서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은 인공지능 못지않은 정보처리능력을 손에 쥐려 한다. 얼핏 양극단의 행보처럼 보이지만 결국 관련 과학기술은 서로에게 수렴되며 하나가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로봇이 행동거지와 외모에서 인간 뺨치게 흡사해지고, 인간이 로봇에 뒤지지 않는 보철기구와 인공지능에 견줄 만한 정보처리능력을 갖추게 되는 날, 인간과 비인간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힌트 또한 SF에서 찾을 수 있다. 다카하시 신의 만화 <최종병기 그녀>와 일본 애니메이션 <아이코 인카네이션>이 좋은 예다. 전자는 로봇화된 인간의 이야기고, 후자는 인간화된 로봇의 이야기다. <최종병기 그녀>

는 전쟁이 그치지 않는 환난의 세계에서 부평초처럼 떠도는 10대 연인의 이야기다. 여주인공은 난데없이 징집돼 하늘을 나는 최첨단 병기로 개조된다. 대규모 살육전에 번번이 투입되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다칠 때마다 뇌를 포함해 인간의 몸이었던 부분이 계속 기계로 대체되면서 인간으로서의 기억과 감정을 점차 잃어간다. 그럼에도 여주인공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몸부림친다. <아이코 인카네이션>에서는 한 소녀의 외모뿐 아니라 인격까지 그대로 복제된 안드로이드가 죽은 줄만 알았던 엄마와 남동생이 살아 있다는 소식에 사지로 뛰어든다. 심지어 그 기억이 이식된 가짜임을 깨닫고도 자신의 안위보다 가족을 구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아무리 보철물투성이 몸이라도 끝내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면 그 존재는 틀림없이 인간이다. 그런 자의식을 지닌 로봇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면 그 존재는 인간일까 아닐까? 아니 인간보다 못할까 더 나을까?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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