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과 세대를 넘어서는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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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비극은 하나같이 명작이다. 그중에서도 <햄릿>은 유독 자주 공연되는 레퍼토리이자 그 자체로 연극을 상징하는 바이블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 우울한 덴마크 왕자 이야기는 수백년간 전 세계의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반복돼왔다. 얼핏 보면 매우 친숙한 소재인 왕위 찬탈과 복수를 다룬 이 이야기가 이토록 오랫동안 이어져온 이유는 이 작품이 덴마크 왕실의 비극을 넘어 삶과 죽음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 <햄릿>은 모든 배우가 한번쯤 오르고 싶은 ‘꿈의 무대’이다. 이는 이 작품이 연극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연극 <햄릿> / 신시컴퍼니 제공

연극 <햄릿> / 신시컴퍼니 제공

셰익스피어는 종종 극중극이라는 장치로 무대와 현실, 연극과 삶을 비추곤 했다. 그중에서도 <햄릿>은 극중극을 통해 연극의 의미와 가치를 확인시킨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햄릿의 주문으로 유랑극단이 펼치는 연극이 작품의 상당히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햄릿은 단순히 볼거리나 여흥을 위해 연극을 상연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유령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연극을 올린다. 다시 말하자면, 연극이 진실을 드러내고 확인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극중극을 통해 연극이 우리의 삶, 혹은 사회에서 무엇으로 존재하고 기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밝힌다.

이번 2022년 연극 <햄릿>의 초점은 오롯이 배우에게 맞춰져 있다. 실제로 이번 공연은 권성덕,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길해연 등 쟁쟁한 선배배우로부터 강필석, 박지연, 박건형, 김수현, 김명기, 이호철 등 후배배우에 이르기까지 전무후무한 캐스팅으로 공연 전부터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윗세대와 아랫세대를 아울러 연극·뮤지컬 무대를 대표하는 스타배우들이 총출동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무대는 햄릿의 주요 역할을 도맡아왔던 선배배우들이 후배배우에게 주역을 물려주고 뒤쪽으로 물러나 그들을 받쳐주는 조연과 단역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점에서 뜻깊다.

1981년부터 2016년까지 햄릿을 6번이나 맡아온 햄릿 전문배우 유인촌은 이번에는 클로디어스 역으로 분해 강필석의 젊은 햄릿과 함께 무대에 선다. 6년 전 <햄릿> 공연에서 폴로니어스와 거트루드, 오필리어를 맡았던 박정자와 손숙, 윤석화는 극중극 배우로, 레어티즈를 맡았던 전무송은 선왕 햄릿 역할로 함께한다. 수차례 햄릿과 거트루드, 오필리어 등 주요 역할을 맡아온 선배들이 한발짝 물러나 뒤에서 후배들을 받쳐주는 이번 공연은 그 자체로 무대 위에서 이어지는 역사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을 느끼게 해준다.

극중 햄릿의 대사 중에 “폴로니어스! 이 배우들을 잘 대접해주시오. 배우란 시간의 요약이자 짧은 연대기거든”란 말이 있다. 이는 극중 유랑배우뿐만 아니라 이번 무대에 서는 16명의 배우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수십년의 역사를 몸에 새긴 선배들이 그 자체로 ‘시간의 요약’을 보여준다면, 선배로부터 후배로 이어지는 배역의 대물림은 무대 위의 ‘짧은 연대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연은 수십년의 세월과 세대 간 간극을 넘어 연극 대사가 실제 삶의 언어로 이어지고, 극과 현실이 겹쳐지는 특별한 순간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8월 1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김주연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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