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의 시대’와 민주당 당대표 선거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왜 그렇게 ‘운동권 족보’에 관심이 많습니까.”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박용진 의원을 인터뷰할 때 박 의원으로부터 받은 반문입니다.

[취재 후]‘학생운동의 시대’와 민주당 당대표 선거

민주당 97세대 의원들의 당대표 출마를 두고 일각에서는 “전대협에서 한총련으로 ‘주사파 권력’이 이어지는 것일 뿐 세대교체라고 할 수 없다”는 평을 합니다. 주로 국민의힘 주변 또는 보수매체에서 ‘우파 버전의 86기득권론’을 주장하는 분들이 내놓는 주장입니다. 기사를 준비하며 어찌 됐든 팩트에선 디테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97세대 그룹의 특징은 재선그룹이라는 것 이외에도 강병원·박용진·강훈식은 총학생회장, 박주민은 학생운동단체의 학교 위원장을 지내는 등 학창 시절 공개조직의 수장을 맡은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파고들면 그 활동은 86운동권 그룹을 묶는 공통분모, 역시 총학생회장이 다수지만 ‘전대협’ 운동, 다시 말해 NL(민족해방)이라는 운동권 이념과 논리로 수렴되는 것과는 다른 길, 즉 PD(민중민주) 또는 비(非)NL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그동안 이들 97세대 의원들이 당 내에서 겉돌았던 내적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정치권에서 취재하다 보면 사적인 자리를 가질 때 ‘과거에 뭐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종종 주고받습니다. 보통 ①몇학번이며 ②그해 어떤 사건이 날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묻습니다. 상하·좌우관계 인연과 ‘서열’을 가늠하기 위한 대화입니다. 예컨대 기자의 경우 89학번입니다. 자동으로 따라붙는 질문이 ‘그해(1989년) 여름 임수경 방북 때 전국 집결 지지 집회가 열린 한양대 진입투쟁 경험이 있는지’ 같은 겁니다. 전형적으로 86세대 학생운동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문답이지요.

돌이켜 보면 86운동권 리더십에 대한 비판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긴 인생을 놓고 보면 학생 시절 4~5년의 경험과 행적이 나머지 수십년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당시 ‘열심히’ 살았다고 나머지 인생도 과연 그랬다고 할 수 있을지, 당시의 경력이 복잡다단한 지금의 한국사회 문제를 풀고 비전을 제시할 능력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학생운동의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랜데 유독 정치권만 과거 고난과 영광의 추억에 사로잡혀 있었던 건 아닐까요. 민주당 당대표 선거가 과연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보겠습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취재 후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