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겸재 정선 화첩>이 한국에 돌아온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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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주려면 (이런저런 생각 말고) 기꺼이 줘야 합니다.” 2005년 10월 독일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의 예레미아스 슈뢰더 아빠스(원장)가 <겸재 정선의 화첩>(21점)을 영구대여형식으로 건네면서 언급한 담화문 중 한구절입니다. 슈뢰더 원장의 담화문을 더 볼까요.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독일인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1925년 한국 방문 당시 구입했다는 <겸재 정선 화첩>에 포함돼 있다. /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제공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독일인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1925년 한국 방문 당시 구입했다는 <겸재 정선 화첩>에 포함돼 있다. /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제공

“우리는 한국인과 한국 역사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겸재 정선 화첩>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12명으로 이뤄진 수도원 장로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했습니다.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선한 반환 <겸재 정선 화첩>은 1911년과 1925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한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 신부가 1925년 가져간 그림첩이었습니다.

화첩은 ‘금강내산전도’와 ‘만폭동’, ‘구룡폭포’ 등 금강산 그림 3폭과 태조 이성계가 함흥의 고향집에 심었다는 소나무를 그린 ‘함흥본궁송도’ 등 18폭을 담았습니다.

이 화첩은 1964년 광부로 독일에 파견됐다가 3년 뒤 뮌헨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던 유준영 전 이화여대 교수가 발견했습니다. 유 교수는 1975년 베버 신부가 오랫동안 아빠스로 일하던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의 선교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겸재 그림을 찾아냅니다. 다시 10년이 흐른 1985년 경북 왜관 성베네딕도수도원의 선지훈 신부가 이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1990년대 독일 뮌헨대에서 교회사를 전공하던 선지훈 신부는 막역한 사이였던 예레미아스 슈뢰더 신부가 상트오틸리엔수도원장이 되자 반환을 계속 타진합니다. 이 무렵부터 예기치 못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미국 덴버미술관의 케이 블랙 연구원이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을 찾아와 이 화첩을 보고 “숨막힐 듯한 걸작”이라고 극찬합니다. 블랙은 1999년 미술전문지(‘오리엔탈 아트’)에 관련 논문을 실었습니다. <겸재 정선 화첩>은 일약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됐습니다.

마침내 뉴욕 크리스티 같은 세계적인 경매회사가 나서 ‘50억원’을 호가하며 경매를 권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11년과 1925년 한국을 두 차례 방문한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1870~1956). 베버 신부는 성베네딕도회 소속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의 초대 아빠스(원장)이었다. 1925년 한국 방문 후 귀국 때 겸재 정선의 화첩을 가져갔다. /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제공

1911년과 1925년 한국을 두 차례 방문한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1870~1956). 베버 신부는 성베네딕도회 소속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의 초대 아빠스(원장)이었다. 1925년 한국 방문 후 귀국 때 겸재 정선의 화첩을 가져갔다. /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제공

반전이 일어납니다. 수도원 측은 <겸재 정선 화첩>을 돈벌이 수단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외려 ‘해외에서 그 정도로 가치 있는 유물로 평가한다면 당연히 한국에서는 무가지보(無價之寶·값으로 칠 수 없는 문화유산)가 아니겠냐’고 판단합니다.

상트오틸리엔수도원 측은 “2009년은 상트오틸리엔수도원과 왜관의 성베네딕도회가 한국에 진출한 지 100주년 되는 해다. 그걸 기념하는 이벤트로 <겸재 정선 화첩>을 기증하는 게 어떠냐”는 선지훈 신부의 간청을 받아들입니다.

결국 상트오틸리엔수도원 측은 경매회사 등의 제안을 뿌리치고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영구 임대 형식으로 반환합니다.

물론 환수 과정에서 화첩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유준영 교수와 기증을 권유한 선지훈 신부 등이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만약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의사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수도원 측이 한번 ‘줄 때는 아낌없이!’라는 원칙을 세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은 <겸재 정선 화첩> 외에도 20세기 초 한국에 파견된 선교사들이 수집한 1700여점의 한국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는데요.

한번 약속한 ‘선한 기증’의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2014~2015년에는 희귀한 식물표본 402점과 17세기 익산 지역의 호적대장을 돌려주었고요. 2018년 1월에는 국내 최초의 양봉 교재 중 하나로 알려진 <양봉요지>를 돌려주었습니다. 2018년에는 조선 후기 보병이 입었던 ‘면피갑(면직물 갑옷)’을 기증 반환했는데요. 18세기쯤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면피갑’은 현재 국내외에 10여벌밖에 남아 있지 않아 유물로서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60여년 전인 1960년을 전후한 시기에 사용했던 남성용 혼례복(혼례용 단령)을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1998년 9월 2일에 세종에서 단종 대 활약한 이선제(1390~1453)라는 인물의 무덤에서 도굴된 분청사기 상감 묘지(죽은 이의 행적을 기록한 글)가 일본으로 밀반출됐다가 16년 만인 2014년 환수됐다. 뒤늦게 불법반출 사실을 확인한 일본 측 소장자의 조건없는 기증으로 환수된 것이다. /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1998년 9월 2일에 세종에서 단종 대 활약한 이선제(1390~1453)라는 인물의 무덤에서 도굴된 분청사기 상감 묘지(죽은 이의 행적을 기록한 글)가 일본으로 밀반출됐다가 16년 만인 2014년 환수됐다. 뒤늦게 불법반출 사실을 확인한 일본 측 소장자의 조건없는 기증으로 환수된 것이다. /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독일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의 한국문화재 반환은 ‘선한 기증’의 모범사례로 꼽힙니다.

무덤 파헤쳐 해외 밀반출 반면 이런 사례는 어떻습니까. 1998년 9월 2일 각 언론이 ‘눈먼 김포세관… 안타깝게 유출된 분청사기 상감 묘지(죽은 이의 행적을 기록한 글)’라는 기사를 보도했는데요. ‘분청사기 상감 묘지’는 1454년(단종 2) 세종~단종 연간의 인물인 이선제(1390~1453)의 행적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 묘지가 감쪽같이 도난당했던 겁니다.

도굴꾼이 도굴 흔적을 지웠기 때문에 문중에서도 언제, 무엇이 도굴당했는지 알 수가 없었죠.

어떻게 밝혀졌을까요. 밀매단이 1998년 6월 김포공항의 세관원을 뇌물로 매수한 뒤 감정 절차를 생략한 채 여행용 가방에 넣어 ‘이선제 묘지’를 일본으로 밀반출해버렸습니다. 사라진 유물은 16년 만(2014)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도쿄(東京) 내 한국문화재의 유통조사를 하던 중 ‘이선제 묘지’의 존재를 알게 됐고요. 뒤늦게 불법 반출 사실을 확인한 일본 측 소장자의 조건 없는 기증으로 환수됐습니다.

한편으로는 50억원의 유혹까지 뿌리치고 한국 유물을 보내준 ‘선한 기증’의 사례가 있잖습니까. 다른 한편에서는 남의 집 조상의 무덤까지 파 거기서 나온 유물을 해외에 밀반출한 어처구니없는 사례도 있군요.

다양한 환수 사례 또 다른 사례를 보겠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직원이 2017년 경매에 나온 유물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것이 있었는데요.

<효명세자빈 죽책>입니다. 효명세자(1809~1830)의 부인인 신정왕후 조씨(1808~1890)가 세자빈으로 책봉될 때 대나무를 엮어 제작한 왕실문서인데요. <순조실록> 등 관련 자료에 죽책의 목록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럼 이 죽책은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빼앗아간 외규장각 도서 중에 포함된 것이 아닐까요.

프랑스군이 본국 정부에 보고한 약탈품 목록에 이 <효명세자빈 죽책>은 빠져 있습니다. 프랑스군 중 누군가 슬쩍해 시중에 팔아넘긴 자료였던 겁니다. 죽책의 소장자가 1930년대 파리 골동품상에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4년 4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 선물로 가져온 ‘황제지보’, ‘유서지보’, ‘준명지보’ 등도 기막힌 운명을 갖고 있죠.

2013년 9월 23일이었습니다.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의 한국지부가 문화재청에 사진첨부 e메일을 하나 보냈습니다.

“한국전쟁 참전 해병대 장교의 사위가 고인이 된 장인의 유품을 처분하려 한다. 이 유품들이 도난품인지 알아봐달라.”

미국 내에서는 불법 거래된 문화재의 반입·유통을 형사처벌하는 법규정(관세법·연방도난품법)이 존재합니다.

한미 수사당국은 이미 1년 전(2013), 한국전쟁 때 미군이 슬쩍한 호조태환권(1893년 구화폐를 신화폐로 교환하려고 발행한 인쇄원판)을 압수한 예가 있거든요. 그런 사례가 있었기에 이번에도 공조수사가 이뤄진 겁니다.

전문가 검토 결과 대한제국 국새(‘황제지보’) 등을 포함한 9개의 인장임을 확인합니다.

소장자인 참전 미군은 “공산군이 철수하면서 덕수궁 소장 문화재 모두를 약탈해갔으며, 이 인장들은 구덩이에 묻혀 있던 것을 가져왔을 뿐”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수사과정에서 이 물품은 명백한 도난품임이 밝혀졌습니다.

미국 수사당국은 2013년 11월 18일, 대한제국 선포(1897)를 계기로 제작한 국새(‘황제지보’) 등 9점을 전격 압수했고요. 압수 유물은 이듬해 오바마 대통령(재임 2009~2017)의 방문 때 정식 반환됩니다.

이후 한미 양국 간 문화재 수사의 신속한 해결을 강조하는 양해각서를 주고받았는데요. 덕분에 한국전쟁 전후로 미국에 불법 반출이 된 왕실과 황실 소유의 국새·어보가 속속 환수되고 있습니다.

<효명세자빈 죽책>. 프랑스 파리에서 경매에 나온 것을 구입 환수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강화도 외규장각 도서 중 하나이다. /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효명세자빈 죽책>. 프랑스 파리에서 경매에 나온 것을 구입 환수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강화도 외규장각 도서 중 하나이다. /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2017년 경매에서 구입 환수된 강노(1809~1889·좌의정 역임)의 초상화 또한 재미있습니다. 이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중에 강노의 증조할아버지인 강세황(1713~1791)과 강현(1650~1733·강세황의 아버지), 강인(1729~1791·강세황의 장남), 강이오(1788~1857·강세황의 손자) 등 ‘강씨 4대의 초상화’가 있었는데요. 구입 환수한 강노의 초상화가 어쩌면 그렇게 기존의 강씨 4대 초상과 닮았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아직도 214208’ 지난 7월 7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환수문화재 40여점을 출품한 특별전(‘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이 열리고 있는데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설립 10주년을 맞아 열리는 전시입니다. 특별전에는 독일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이 영구기증형식으로 보내준 <겸재 정선 화첩>을 전시하고 있고요. 2021년 일본에서 환수한 ‘나전 매화, 새, 대나무 상자’와 올해 3월 미국에서 환수한 ‘열성어필’과 ‘백자동채통형병’을 처음으로 공개합니다.

2022년 1월 1일 현재 21만4208점의 문화유산이 25개국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중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2011~2021년 사이에 환수한 유물은 2341점(7개국 61건)에 달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직원들이 지구 160바퀴(629만㎞)를 돌면서 거둔 실적인데요. 하지만 산술적으로 따지면 전체 국외 소재 유산(21만4208점)의 0.11%에 불과하죠.

천덕꾸러기에서 아시아 톱 10으로 그렇게 발품을 팔아 찾아내고, 한점 한점 환수한다면 언젠가는 0에 가까워지겠죠. 한계는 분명 있습니다.

적법하게 반출돼 기관이나 개인이 소장 중인 문화유산의 경우 ‘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그 문화유산이 그 자리에서 제대로 대접받고 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겁니다.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미술관이 소장한 ‘해학반도도’가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이 병풍은 거센 파도 속에서 복숭아나무, 대나무, 소나무로 꾸며진 선경 위에 백학 6마리가 노니는 장면을 그린 작품인데요. 불과 몇년 전까지는 16~17세기의 중국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수진 성균관대 연구교수와 일본인 이도 마사토(井戶美里) 교토(京都)공예섬유대 교수의 현지조사 결과 ‘한국(대한제국기) 병풍’임이 밝혀졌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이 병풍을 국내에 들여와 1년 6개월간 보존처리를 한 뒤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을 통해 국내 관람객들에게 선보인 뒤 돌려보냈는데요.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세계적인 미술전문 매체(‘아트뉴스’)가 ‘오랫동안 (중국 그림으로) 오인되던 100년 전 그림이 한국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는 제목으로 소개했습니다.

베버 신부가 가져간 <겸재 정선 화첩>에는 금강산 그림 3점을 비롯해 겸재 정선의 다양한 산수화풍을 알 수 있는 그림 21점이 들어 있다.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제공

베버 신부가 가져간 <겸재 정선 화첩>에는 금강산 그림 3점을 비롯해 겸재 정선의 다양한 산수화풍을 알 수 있는 그림 21점이 들어 있다.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제공

보존처리 후 미국으로 돌아간 ‘해학반도도’는 데이턴미술관의 특별대접을 받았다는데요.

피터 되블러 데이턴미술관 아시아담당 큐레이터는 “보존처리된 이 작품은 미술관의 아시아 유물 중 ‘톱 10’에 쉽게 들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6월 25일 개막해 오는 9월까지 열리는 데이턴미술관의 ‘보존처리 유물 특별전’에서 메인 전시품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해학반도도’의 사례는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13년부터 9개국 25개 기관을 대상으로 44건의 국외 소재 한국문화재의 보존 및 복원과 활용사업을 지원해왔는데요.

이 ‘해학반도도’의 사례가 국외 소재 문화유산 관리·보존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불법 유출됐거나, 미술시장에 나온 유물 중 우수한 것은 환수 추진을 원칙으로 해야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 해당 문화유산이 그 자리에서 제대로 된 대접과 사랑을 한몸에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차선책이 될 수 있습니다.

국외 소재 문화유산의 투트랙 전략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례로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존처리를 하지 않았다면 ‘해학반도도’는 영원히 ‘중국 유물’로 치부됐을 것이 아닙니까.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lkh0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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