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 - ‘사랑’이라는 감정에 깃든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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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난해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주제의식은 명료하다. 존재의 경계를 지키려는 몸부림. 시사회가 끝난 뒤 만난 한 평론가는 “명백한 남성혐오 영화”라고 말했다. 그럴까.

제목 멘(MEN)

제작연도 2022

제작국 영국

상영시간 100분

장르 공포, SF, 드라마

감독·각본 알렉스 가랜드

출연 제시 버클리, 로리 키니어

개봉 7월 13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수입/배급 판씨네마㈜

판씨네마㈜

판씨네마㈜

그러니까, 이건 이틀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남편을 ‘사고’로 잃은 하퍼는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고자 영국 시골의 한적한 마을에서 2주 동안 살기로 했다. 민박집은 마음에 들었다. 집주인은 전형적인 시골 남자로 마초적이지만 투박하게 그를 도우려 했고.

여장을 푼 하퍼는 산책을 나간다. 폐쇄된 기찻길 끝에서 마주하게 된 터널. 하퍼의 목소리는 울려퍼지는 에코가 되어 화음이 된다. 터널의 중간쯤에 들어섰을 때 반대편 끝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그림자. 하퍼를 쫓아온다. 도망쳐 어느 폐가에 이른 그는 한 벌거벗은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목격한다. 이튿날 아침,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는데 그 남자가 나타난다. 경찰이 출동하고 나체남은 체포된다.

하퍼는 언뜻언뜻 남편과 마지막 언쟁을 회상한다. 자신의 ‘인생’을 갈구하는 하퍼는 이혼을 원하고, 남편은 만약 하퍼가 이혼한다면 ‘평생 마음에 걸리게 하려고 자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퍼는 답한다. “이혼 못 하게 협박하는 것이 이혼하려는 이유야.”

다시 처음 장면으로 돌아가자. 황혼에 비가 내린다. 황혼에 비쳐 빗방울은 마치 피처럼 빨갛게 비친다. 창문을 닫으려다 하퍼는 옥상에서 추락하는 남편의 공포에 질린 눈과 마주친다. 그는 정말 하퍼에게 평생 트라우마를 안기기 위해 자살을 한 것일까, 아니면 하퍼가 자위하는 것처럼 윗집 베란다를 통해 집으로 들어오려다 실수로 미끄러진 것일까.

영국 시골 민박집에서 벌어진 일

나체남 사건이 트리거였을까. 집으로 돌아온 하퍼는 문을 잠그지만 남자들이 그의 집을 침입하기 시작한다. 환각과 현실을 구분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머리에 풀을 키운 나체남은 점차 하퍼가 성당에 갔을 때 목격한 그린맨(얼굴에 풀이 돋은 형상의 고대조형물)과 실라나히그(sheela na gigs·여성이 성기를 벌리고 앉아 있는 과장된 형태의 고대조형물) 조각상 중 그린맨을 닮아간다. 나체남은 하퍼를 향해 자신의 손 가득 담고 있는 민들레 꽃씨를 입으로 불어 날리는데, 그중 하나가 날아 하퍼의 입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향연. 나체남은 하퍼가 걸어잠근 문의 우유투입구로 손을 넣어 하퍼의 손을 잡는데, 하퍼는 칼로 그 손을 찍어버린다. 손을 잡아빼는데 바닥에 박힌 칼 때문에 손은 두 동강이 나고 만다. 이후 하퍼의 집에 난입한 남자들은 모두 한손이 갈라지고, 발목이 부러진 상태다. 하퍼가 목격했던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다. 난입한 남자들의 배가 부풀어오르며 또 다른 남자들이 뚫고 나온다. 모두 하퍼에게 트라우마를 안겼던 사람들이다. 맨 마지막에 나오는 남자. 죽은 남편이다. 지친 하퍼는 “나에게 뭘 원하는 거야”라고 묻고, 남편은 대답한다. “사랑”

남성혐오 공포영화라는 평, 맞을까

얼핏 난해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주제의식은 명료하다. 존재의 경계를 지키려는 몸부림. 시사회가 끝난 뒤 만난 한 평론가는 “명백한 남성혐오 영화”라고 말했다. 그럴까. 분명 영화의 주인공은 이제 막 남편과 사별한 하퍼이고, 이혼을 통해 자기의 존재의미를 되찾으려 했던 하퍼의 계획은 실패했다. 하퍼가 자신과 이혼을 하기 전에 자살해 평생 죄책감을 안기겠다는 남편의 ‘협박’은 실현된 것이고. 외국의 리뷰를 찾아봐도 남성혐오(misandry)와 여성혐오(misogynistic)의 잣대로 영화를 평가하는 경우가 꽤 된다.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장르가 젠더적 혐오에 기초한다고 주장한다. 분명 어떤 사람들이 보기엔 절정부에서 영화의 전략은 혐오를 일으키는 그로테스크한 환상을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그런데 신통하다. 영화는 사랑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가 사색하게 만든다. 자신을 올곧게 지키는 행위와 사랑은 양립 가능하지 않다. 따지고 보면 사랑은 존재의 경계를 허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퍼의 입속에 들어온 민들레 꽃씨는 정자이자 하퍼의 존재를 탈취하는 신체강탈자(body snatcher), 아이의 은유다. 나중에 보도자료를 보니 감독이 15년 동안 고치고, 또 고쳐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찍은 영화라고 하는데, 신 바이 신(scene by scene)으로 꼼꼼히 뜯어볼 가치가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강추한다.

곱씹게 되는 레슬리 던컨과 엘튼 존의 ‘러브 송’

경향자료

경향자료


영화에서는 시작과 엔딩 장면에 두 버전의 ‘러브 송(love song)’이 흘러나온다. 영국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평가를 받은 레슬리 던컨(사진) 버전과 엘튼 존이 부른 러브 송이다. 영화의 주제와 맞물려 다시 가사를 음미해보면 의미심장하다. 던컨과 존의 주장에 따르면 “사랑은 문을 활짝 여는 것이고, 사랑은 이곳에 온 목적(Love is the opening door, Love is what we came here for)”인데 영화의 주인공 하퍼는 비를 피해 창문을 닫고, 난입하는 남자들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도망치며(자폐 청년은 그에게 ‘술래잡기(hide and sick)’를 하자고 제안한다), 문을 걸어 잠근다.

그저 평범한 노래인 줄 알았는데 뜯어놓고 보면 소름 끼치는 이야기로 해석되는 경우가 꽤 있다. 영화 <데스티네이션(Final Destination)>(2000)의 주제곡인 존 덴버의 ‘로키 마운틴 하이(Rocky Mountain High)’가 대표적이다. 죽을 운명을 암시하는 시그널로 저 노래가 등장하는데 실제 존 덴버는 영화의 시작 장면에 등장해 영화 전반의 모티브로 기능한 항공기사고로 사망했다.

한국 노래인 ‘젊은 연인들’도 그런 괴담이 돌았다. 평범한 사랑 노래 같지만, 알고 보니 눈 속에서 조난당해 동사한 젊은 남녀 등반객을 보고 만든 추모곡이라는 소문이었다. “눈보라 속에도 손목을 꼭 잡고 따스한 온기를 나누리”라는 가사는 조난당한 상황을 묘사한 것이고 “저기 멀리서 우리의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라는 가사는 의식이 희미해져가는 순간을 암시하는 것이라는 데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설명이다. 사실이었을까. 작곡·작사자들이 불의의 사고(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로 세상을 떠난 마당에 정확한 사정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몇해 전 후배가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노래를 부른 서울대트리오 멤버도, 작곡자의 동생도 노래 배경에 그런 사연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갖다 붙인 이야기인 셈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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