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엘비스(ELVIS)
제작연도 2022
제작국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상영시간 159분
장르 드라마
감독 바즈 루어만
출연 오스틴 버틀러, 톰 행크스, 올리비아 더용 외
개봉 2022년 7월 13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올해 초쯤이던가, 인상 깊은 외신 보도가 있었다. 영국에서 임종 직전 환자의 뇌파를 분석해보니 실제로 기억세포가 활성화되는 패턴이 관찰됐다고 한다. 흔히 ‘죽기 전에 자기 삶의 주요장면이 주마등(Phantasmagoria)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속설이 있는데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보도였다.
영화는 1997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병원에서 임종을 앞둔 한 노인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카지노에 붙어살며 평생 도박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흉흉한 소문 속 주인공으로 삶을 마감하지만, 그는 그래도 자신이 ‘그’를 발굴해 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엘비스 프레슬리다. ‘로큰롤의 제왕’이라는 별칭을 가진 20세기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다. 하긴 엘비스를 빼놓고 미국 대중음악을 논할 수는 없다. 컨트리 음악에서부터 리듬 앤드 블루스, 록과 헤비메탈, 오늘날의 흑인 랩 문화까지 구석구석 영향을 안 미친 데가 없으니까.
20세기 미국문화 아이콘의 일대기
톰 파커 대령이 엘비스를 발견한 건 점잖은 컨트리 가수 행크 스노의 순회공연 매니저를 하고 있을 때였다.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는 ‘엘비스’라는 가수의 풍문을 듣고 공연장에서 그를 만났다. 엘비스는 무대 뒤편에서 가족과 함께 공연이 성공하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있었고, 첫눈에 그는 그 친구의 상품성을 알아봤다(고 주장한다).
엘비스의 외설스러운 엉덩이 털기 춤은 당장 보수적인 미국 남부 백인들의 눈 밖에 났다. 게다가 그의 음악은 점잖은 컨트리도 아니라 흑인 장르인 리듬 앤드 블루스와 가스펠이 ‘짬뽕’된 특이한 스타일이었다. 실제로 엘비스는 백인이지만 흑인 뮤지션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고, 그들의 음악과 스타일을 ‘훔쳤다’(정확히 말하면 훔쳐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백인주류 사회는 엘비스의 춤과 노래를 외설에다 천박한 것으로 규정했다. 전국에 방영되는 TV쇼에서는 그에게 엉덩이를 흔들지 말고 얌전히 노래만 하라고 요구했다. 중간에서 그걸 요구하는 한편, 그의 수입 상당수를 착취해 탕진한 인물이 바로 톰 파커 대령이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들-예컨대 ‘잔인하게 굴지 마세요(Don’t be Cruel)’이나 ‘하운드 도그(Hound Dog)’, ‘하트브레이크 호텔(Heartbreak Hotel)’, ‘뜨거운 사랑(Burning Love)’ 같은 노래들은 알고 있겠지만(각종 CF의 배경음악으로도 익숙하다)-이 코너에서 앞서 리뷰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의 프레디 머큐리처럼 ‘팬덤’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왜일까. 일단 ‘하트브레이크 호텔’이나 ‘하운드 도그’ 같은 노래들이 나온 시기가 1956년이다. 너무 옛날이다. 한국전쟁의 상흔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때였다. 엘비스 생전의 마지막 히트곡 ‘웨이 다운(Way down)’이 발표된 것이 1977년인데 AFKN 라디오를 통해 미국 팝송을 듣던 일부 마니아를 넘어서 대중화된 것은 1979년에서 1980년 이후쯤으로 기억한다.
엘비스가 월드투어를 할 수 없었던 사연
그러니까, 한마디로 한국이 본격적으로 미국 팝 문화를 수용하기 이전의 가수였기 때문이지 않았나 생각했다.
이번 영화를 보며 하나 더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월드투어를 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아메리칸 스타일, 미국 가수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미국 내수시장에서만 공연을 이어간 가수였다. 그 이유는 바로 그의 매니저였던 톰 파커 대령 때문이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불법체류 신분이었던 톰 파커 대령이 여권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해외공연 시도 때마다 온갖 종류의 핑계를 들이대며 엘비스 프레슬리의 발을 묶었다. ‘대령’이라는 경력도 사실상 사기로 얻어낸 것이고.
이 전설적인 록스타의 일대기를 그리면서 이야기의 화자를 그의 매니저인 톰 파커 대령으로 택한 것은 영리한 선택이었다. 톰 파커가 닮고자 했던 ‘쇼 비즈니스’라는 말을 만들어낸 바넘의 인생이 보여주는 것처럼 쇼란 본질적으로 사기니까. 기왕 ‘구라’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면 좀더 극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전반적으로 영화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일대기를 재현하는 데 충실한 편이다. 엘비스역 오스틴 버틀러의 연기도 좋았다.
<엘비스>는 올해 5월 칸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와는 별도로 영화사 워너브라더스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유족을 대상으로 별도의 시사를 가진 모양인데 전처 프리실라, 딸 리사마리 그리고 외손녀이자 영화배우인 라일리 키오 등이 각각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 남긴 영화평을 보면 영화가 그려낸 엘비스에 대체적으로 만족해하는 듯하다.
톰 파커 대령(사진)에 대한 평가는 더 신기하다. 프리실라가 남긴 글을 찾아보면 “실제 내가 만났고 아는 톰 파커 대령을 그의 역을 맡은 톰 행크스가 훌륭하게 재현해 여러차례 감탄했다”와 같이 술회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자신의 사욕(정확히는 도박욕)을 충족하고자 엘비스를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호텔에 묶어 두고, 평생을 손아귀에서 못 벗어나도록 한 원망의 대상에 해당하는 인물이 아니던가!
외국에선 워낙 팬덤이 두텁다 보니 엘비스에게 톰 파커 대령이라는 존재란 무엇인가를 추적하는 르포르타주가 여러건 나와 있는데 그가 왜 미국행을 결심했나를 두고 실제 네덜란드에서 살던 집 인근에서 벌어진 미해결 살인사건의 진범이라고 주장하는 책까지 나와 있다. 여러모로 재미있는 인물이다.
연출을 조금만 달리하면 <아마데우스>에서 결국 질투심이자 경외심에 눈이 멀어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살리에르와 비슷하게 각색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까지 하기엔 세기가 바뀐 지금까지도 매년 집계되는 음반 판매량의 상위에 랭크돼 있는 이 전설적인 록스타가 남긴 삶의 궤적과 무게가 너무 버거웠다고나 할까.
과거 니콜라 테슬라(세르비아계 미국인 전기공학자이자 물리학자) 등 실존인물의 전기영화 리뷰에서 만듦새의 아쉬움을 밝힌 바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에 관한 한, 이번 영화에서 ‘전기영화라면 마땅히 이래야지’ 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채워낸 듯싶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