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도터-모성이라는 잔혹하고 아름다운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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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를 통해 배급되는 영화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극장 개봉이 이뤄진다. 특별한 기회가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제목 로스트 도터(The Lost Daughter)

제작연도 2021

제작국 미국, 그리스

상영시간 122분

장르 드라마

감독 매기 질렌할

출연 올리비아 콜맨, 다코타 존슨, 제시 버클리, 피터 사스가드

개봉 2022년 7월 14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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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에서 ‘여성’은 지난 수년간 중요한 화두가 돼왔다. 제작현장에서 활약이 눈에 띄게 두드러졌고, 다수의 영화가 여성 서사를 표방하며 관객들에게 호소했다. 이것이 하나의 ‘현상’ 이상의 성과로 이어졌는지, 그만한 가치를 성취했는지에 관한 평가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와중에 기계적 피해의식이나 편 가르기의 강박을 초월한 작품이 등장했다. <로스트 도터>는 그동안 신화적으로 박제화돼온 모성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찰함으로써 진정한 여성 연대에 대한 올바른 시선과 책임이란 어떤 것인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로스트 도터>는 현대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여성 작가로 손꼽히는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 <잃어버린 사랑>을 원작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엘레나 페란테는 절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얼굴 없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매기 질렌할은 판권을 구매하기 위해 출판사와 작가에게 직접 e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진심을 담은 수차례의 구애 끝에 원작자는 긍정적 답변을 보내왔지만 한가지 조건이 있었다. ‘매기 질렌할 본인이 연출을 맡을 것!’ 스스로가 유명배우이자 배우 제이크 질렌할의 누나로도 잘 알려진 매기 질렌할은 이를 계기로 탁월한 각본가와 연출가로서의 재능까지 증명하게 됐다.

모성의 신화를 깨다

홀로 그리스 휴양지로 여행 온 중년의 여교수 레다(올리비아 콜맨 분)는 아름다운 자연에서 느끼는 모처럼의 한가로움에 행복하기 그지없다. 평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난다.

해변에 난데없이 들이닥친 소란스러운 일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이 레다의 심기를 건드린다. 특히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니나(다코타 존슨 분)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긴다. 젊고 아름답지만, 천방지축 어린 딸에게 시달리며 힘겨워하는 니나의 모습을 비밀스럽게 관음하며 레다는 묘한 흥분까지 느낀다.

며칠 후 니나의 딸이 행방불명되면서 해변은 아수라장이 된다. 레다는 남다른 기지와 감각으로 길 잃은 아이를 발견하지만, 더불어 애써 잊고 싶었던 과거의 힘겨운 자신(제시 버클리 분)과도 조우한다.

매기 질렌할은 배우 시절 체험한 풍부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소통과 즉흥적인 교감에 의존한 열린 방식의 연출을 지향했다고 한다. 철저한 사전준비와 협업하는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는지 깊이 신뢰하고 있기에 가능한 방식이었고, 이는 보다 깊이 있고 풍성한 정서를 얻어내는 성과로 이어졌다.

가수에서 배우로 거듭난 제시 버클리

섬세한 연출에 어울리는 배우들의 연기도 출중하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의뭉스러운 중년여성의 심리를 승화한 올리비아 콜맨의 압도적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더불어 젊은 레다 역을 맡은 제시 버클리의 발견은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배우라기엔 평범한 외모라 더욱 눈에 띄는 제시 버클리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입상하면서 대중에게는 가수로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2017년 영화 <비스트>로 본격적인 연기에 도전해 바로 영국 독립 영화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의 가능성 또한 입증했고, 이후 탄탄한 이력을 쌓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로스트 도터>보다 하루 앞선 13일, 주연을 맡은 또 다른 신작 <멘>도 개봉한다. 이로써 그의 최신작 2편을 동시에 만날 수 있게 됐다. SF 스릴러 <엑스 마키나>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한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신작 <멘>은 남편의 죽음에 죄책감을 짊어진 젊은 여성이 한적한 시골에서 겪게 되는 악몽을 다룬 로컬 호러다.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제작사인 ‘A24’의 작품이라 장르 팬들에게 더 큰 기대를 모으고 있기도 하다.

<로스트 도터>의 전 세계 배급은 베니스 영화제 프리미어 상영 이후 글로벌 판권을 구매한 넷플릭스를 통해 이뤄진다. 예외적으로 한국에서만 극장을 통한 정식 개봉이 이뤄지게 됐다. 이는 영화가 완성되기 전에 판권 사전 구입이 성사됐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시간과 비용이 아깝지 않을 작품이다.

‘오스카’를 향해 따로 또 같이

screenra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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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오스카’ 트로피가 주어지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올해로 94회를 맞이했다. 긴 역사만큼 매해 진귀한 기록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로스트 도터>에서 젊은 레다를 연기한 제시 버클리는 이번 역할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생애 첫 아카데미 진입에 성공했다. 이채로운 점은 이미 91회 시상식에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올리비아 콜맨 또한 중년의 레다 역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동반 지명됐다는 점이다. 이처럼 한 영화에서 같은 인물을 연기한 다른 배우가 각각 연기상 후보에 오르는 경우는 이례적인데, 이는 아카데미 역사상 세 번째 기록이란다. 그렇다면 이전 2개는 어떤 작품일까? 첫 번째는 70회(1998)에 출품됐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대작 <타이타닉>이다. 여주인공 로즈의 과거를 연기한 케이트 윈슬렛이 여우주연상 후보로, 현재를 연기한 글로리아 스튜어트가 여우조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글로리아 스튜어트는 당시 87세로 역대 최고령 후보라는 기록도 남겼다. 이 기록은 90회(2018) 시상식에서 <올 더 머니>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88세의 크리스토퍼 플러머에 의해 깨졌다. 두 번째는 리처드 에어 감독의 <아이리스>(2022)다. 알츠하이머를 앓게 된 노년의 철학교수를 연기한 주디 덴치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젊은 시절을 연기한 케이트 윈슬렛이 여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됐다.

공교롭게 앞선 2개의 기록 모두에 케이트 윈슬렛이 포함돼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만약 이번 <로스트 도터>의 기록이 추가되지 않았다면 2개의 진귀한 기록 모두를 독점하는 유일한 배우로 남을 뻔했다. 안타깝게도 세 번 모두 수상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결과도 흥미로운 공통점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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