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논문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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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로 서울대 교수팀의 논문 표절 사건으로 학계가 어수선하다. 윤성로 교수는 보통의 과학자가 아니다. 올해 12명만 뽑는 기초과학 ‘리더연구자’로 선정돼 향후 국가로부터 매년 8억원 규모의 연구비를 9년 이내 최대 72억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과학자다. 게다가 그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물론이고 역대 정권 모두가 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쳐온 인공지능 분야의 권위자다. 그의 연구과제는 인공지능 기반 메타버스 연구다. 한마디로 말해 윤 교수는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최고 과학자이자 한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연구 분야 권위자이며, 문재인 정부에서 4차산업혁명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문제는 교수가 그 정도 규모의 학생을 제대로 된 과학자로 가르칠 확신 없이 공장형 실험실을 운영하는 무책임이다. 교수에게도, 학생에게도, 마치 공장형 축사처럼 학생을 뽑아내는 행태는 행복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관행이다.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문제는 교수가 그 정도 규모의 학생을 제대로 된 과학자로 가르칠 확신 없이 공장형 실험실을 운영하는 무책임이다. 교수에게도, 학생에게도, 마치 공장형 축사처럼 학생을 뽑아내는 행태는 행복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관행이다.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학회의 자격

이번 사건은 유튜브에 익명의 계정이 올린 7분 16초짜리 영상에서 촉발됐다. 익명의 트위터 계정이 이 유튜브 영상을 학회 계정과 표절된 논문의 저자들에게 알리면서 학회는 즉시 논문을 철회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윤성로 연구팀이 제출한 논문은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 분야 학회인 ‘국제 컴퓨터 비전 및 패턴 인식 학술대회(CVPR)’에 발표됐다. 세계 최고 학술지인 ‘네이처’와 ‘사이언스’도 매년 엄청난 숫자의 논문 철회로 몸살을 앓지만, 문장 표절이 분명한 논문을 싣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 문장 표절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쉽게 걸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 검증에서 거의 매번 터지는 논문 표절은 검증되는 이들이 꽤 오래전 학계를 경험한 운 좋은 세대임을 방증한다. 이제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논문 표절은 꿈도 못 꾸는 일이 돼버렸다. 이 사건이 ‘웃픈’ 또 한가지 이유가 바로 윤성로 교수가 인공지능 분야의 권위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CVPR은 인공지능을 밥 먹듯 사용하는 전 세계 컴퓨터과학 분야의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다. 인공지능 전공자가 아닌 교수들도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표절검사 프로그램을 돌리는 게 일상이다. 인공지능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자기 제자의 논문을 인공지능 분야 최고의 학회에 제출하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다.

컴퓨터 분야의 한 교수는 인공지능 분야가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 이 분야의 교수들이 경쟁적으로 빠르게 논문을 발표하는 데만 급급할 뿐, 연구의 질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은 지 오래됐다고 말한다. 남범석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는 “CVPR을 비롯한 AI학회들은 한해 2000편이 넘는 논문을 뽑아”내며, 이를 평가하는 심사자들이 논문을 제대로 읽고 평가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표절이 명백한 윤 교수의 논문은 4%만 선정된다는 구두 발표 논문으로 우수함을 인정받았다. 그러니까 해당 학회의 논문 심사위원들은 논문을 읽지 않고 제출자의 이름만 보고 구두 발표 논문을 선정했거나, 논문을 읽었지만 해당 논문이 형편없는 복사품임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번 논란을 서울대 교수와 그 제자의 윤리적 일탈로서만이 아니라 인맥을 통한 정치질과 돈벌이로 전락한 국제학회들의 자격을 묻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윤성로 교수와 공저자들의 답은 한결같이 ‘알지 못했고, 제1저자의 단독 행동’이라는 것이다. 논문 표절이 폭로된 유튜브 영상의 베스트 댓글 중 하나는 “공저자들은 논문의 공은 나눠 먹으면서, 표절의 과실은 나누지 않는 것 같다”였다. 당연히 이번 사건의 가장 큰 과실은 제1저자에게 있다. 과학 논문에서 제1저자의 역할은 논문 대부분을 이끌고, 해당 논문에 대해 무한책임을 진다. 꽤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논문에서도 데이터 조작이 발견됐지만, 대부분 제1저자가 고의적으로 저지른 경우였다. 물론 그렇다고 교수가 무고하다는 뜻은 아니다.

책임의 막중함

대부분의 과학 분야에서 교수는 교신저자 혹은 책임저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연구재단이 2019년에 발행한 <연구논문의 부당한 저자 표시 예방을 위한 권고사항>(이후 권고)에서, 교신저자는 “원고의 투고, 전문가 심사, 출판 과정 동안 투고된 학술지와의 소통에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논문이 출판된 후 논문의 비평에 대응하고 논문에 대한 의문이 발생하여 학술지에서 추가 자료를 요청할 때에 이에 협조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윤성로 교수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책임의 막중함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이 논문의 도움으로 노벨상을 수상할 경우 제1저자가 아니라 윤성로 교수만이 노벨상 수상자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은 독점할 거면서 표절로 인한 과실의 책임을 미뤄선 안 된다.

공저자들도 마찬가지다. <권고>는 저자로 표시될 수 있는 요건 또한 명확하게 밝혀놓았다. 저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첫째, “연구의 개념이나 설계, 연구데이터의 획득, 분석, 또는 해석에 상당한 기여를” 했거나, 둘째, “중요한 학술적 내용에 대해 초안 작업을 하거나 비판적으로 수정을 가”했거나, 셋째, “출판될 버전에 최종적으로 승인을” 했거나, 넷째, “연구의 어떤 부분의 정확성 또는 진실성과 관련된 질문이 적절히 조사되고 해결되도록 연구의 모든 측면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만이 저자의 자격을 갖는다. 공저자로 등록된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의 아들 이모씨는 “원고 대부분은 제1저자가 썼”고, 본인은 “문장 흐름과 문법을 바로잡는 역할”만 했다고 말했다. <권고>에 따르면 그에겐 저자의 자격이 없다.

윤성로 교수가 자신은 몰랐다고 항변할 만한 이유가 있다. 그의 실험실엔 박사과정생만 37명이 있고, 석사과정과 박사후연구원을 합치면 모두 51명이나 된다. 공장형 실험실이다. 인공지능 분야의 학생 수요는 많은데, 가르칠 교수는 적어 벌어지는 일이다. 그럴 수 있다. 외국에도 큰 규모의 실험실들이 있고, 그런 곳에서 노벨상이 나오는 사례가 많다. 문제는 교수가 그 정도 규모의 학생을 제대로 된 과학자로 가르칠 확신 없이 공장형 실험실을 운영하는 무책임이다. 교수에게도, 학생에게도 마치 공장형 축사처럼 학생을 뽑아내는 행태는 행복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관행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연구비를 많이 가져오고, 학계 내부의 정치에 능한 사람을 훌륭한 교수로 추켜세우는 한국 학계에서 도대체 교수는 뭘 해야 하느냐고 항변하는 것도 사실 이상하지는 않다. 어쩌면 이런 세상에서 교수라는 직업으로 연명하는 것 자체가 실존의 고민인지 모른다. 슬픈 일이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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