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이민청과 노벨상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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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의 BK21 계획으로 한국의 이공계 대학원은 안정적인 대학원생 육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BK21로 쏟아져 나온 이공계 박사들을 흡수할 일자리는 부족했고, 한국이 길러낸 이공계 박사 인력의 대부분은 중국, 미국, 싱가포르 등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2020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이공계 인력의 국내외 유출입 수지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향후 10년간 과학기술인력이 1만명 이상 부족하고, 고급인재의 해외유출이 OECD 국가들에 비해 심각한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으로 넘어온 해외 이공계 인재들이 학위를 획득하고 국내에 남는 것도 아니다. 국내에 유입된 해외 유학생 중 국내에 체류하는 비율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경북 경산시 영남대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단오를 앞두고 창포물에 머리 감기를 체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북 경산시 영남대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단오를 앞두고 창포물에 머리 감기를 체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민청과 외국인 유학생

인구절벽은 현재 한국사회가 고민해야 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지방 대학이 소멸 중이고, 대학이 소멸되면서 지방의 경쟁력은 물론, 국가경쟁력 역시 하락할 수밖에 없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민청 신설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늦은 결정이지만 환영한다. 지난 20여년간 한국은 아시아의 매력적인 국가로 발돋움했다. 동남아를 비롯한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는 한류열풍과 맞물려 긍정적으로 형성됐다.

한국의 여러 대학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찾는 건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신세계에 대한 희망을 품고 새로운 조선을 꿈꾸며 태평양을 건넜던 150여년 전의 조선 유학생들처럼 세계 곳곳에서 한국으로 몰려든 유학생들 또한 한국에 대한 동경을 품고 이 땅에 발을 디뎠을 것이다. 교육부 자료에 의하면, 국외로 떠난 한국인 유학생은 매년 약 20만명 정도로 유지되고 있으나,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유학생은 2011년 8만9537명을 시작으로 2020년 15만3695명에 이를 정도로 증가 추세에 있다. 이들 중 92%가 자비 유학생이다. 아시아 출신이 94%에 이를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다.

대학 및 전문대학 유학생은 대부분 인문사회계열의 유학생이 주류를 이루지만, 석사와 박사과정으로 올라가면서 인문사회계열보다 이공계열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도 외국인 유학생의 특징이다. 아시아계 유학생의 절반은 중국 출신이다. 중국 유학생의 숫자는 매년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아마도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고등교육 투자 덕분에 해외 유학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다음으로 많은 유학생을 보내는 국가는 베트남이다. 약 25%의 국내 유학생이 베트남 출신이다. 우즈베키스탄과 몽골이 그다음으로 둘이 합쳐 약 10%를 차지한다.

2016년에 발표된 ‘한·중·일 3국의 외국인 유학생 유치 정책 비교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Study Korea 2020’ 프로젝트를 통해 2020년까지 약 20만명의 유학생을 유치한다는 목표로, 중국은 ‘중국유학계획’ 정책을 통해 50만명의 유학생을 유치한다는 목표로, 일본은 30만명의 유학생을 유치한다는 목표로 달려왔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한국의 유학생 수는 16만여명으로 결과적으로 한국의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또한 한국 대학의 경우 부실한 학사 관리로 인해 유학생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외국인 유학생을 돈벌이 정도로 생각하는 대학 경영자들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과연 한국이 OECD 국가의 유학생들에게 매력적인 나라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캐나다는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라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이민자 숫자를 확대해야 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캐나다처럼 이민이 어려운 나라도 드물다. 캐나다가 이민의 문호를 활짝 열어둔 분야가 있다. 의사, 간호사, 변호사, 교사, 약사, 엔지니어, 과학자 등 전문직이다. 캐나다는 국경을 마주한 미국 때문에, 자국 대학과 대학원에서 길러낸 인재의 대부분을 미국에 빼앗길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의사들도 캐나다보다 나은 보수를 쫓아 미국으로 건너가는 실정이니, 캐나다야말로 이민정책에 국가의 존망이 걸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나다의 선택과 한국 이민청의 조건

캐나다는 이민자의 천국이며, 이민 가고 싶은 나라 1위로 꼽힌다. 캐나다가 인구 부족에 허덕이면서도 전문직을 위주로 이민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이유는 안전한 거주 환경과 훌륭한 복지 및 교육여건 등에서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 유학이나 이민을 생각하는 이유는 더 좋은 직업, 높은 임금, 삶의 질 때문이다. 그런 조건을 마련해둔 국가만이 국가경쟁력의 발전에 필요한 훌륭한 인재들이 유학과 이민으로 몰려들기를 기대할 수 있다. 캐나다는 이민의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그면서도, 복지와 삶의 질에 투자해 이민자들을 끌어모으는 전략을 사용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페이퍼클립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나치 독일의 우수한 과학기술자 모두를 망명시켰다. 일본계 미국인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는 한 대중강연에서 미국이 과학기술 강국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H1B 비자 때문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이 비자는 미국이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직을 미국에 모셔오기 위해 만든 특별비자로, 미국에서 노벨상을 받은 이민자 대부분이 H1B로 미국에 입국했다. 미국이 과학기술 강국이 된 이유는 이민자 덕분인 셈이다. 중국 또한 백인계획, 천인계획, 만인계획으로 해외에 나가 있던 중국인 과학기술자는 물론 외국인 과학기술자를 이주시키면서 로열(R) 비자를 새로 만들어 이들에게 10년간 취업과 거주와 이동을 보장한다.

이민청 신설은 좋은 일이다. 한국에 필요한 이민이 어떤 종류인지 전략적 사고가 전제돼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안철수 의원이 대선 내내 외쳤던 것처럼 과학기술 강국이 되는 것만이 한국이 미중 패권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미국과 중국이 그랬듯이, 이민청을 통해 우리도 이공계열의 인재들을 한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한국을 떠나지 않고 체류하며 한국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한류나 K팝만으론 부족하다. 문화강국 한국의 이미지는 고급 과학기술 인재를 한국에 모셔오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한국은 외국인 차별이 없고, 교육 및 복지가 훌륭한 국가가 돼야만 한다. ‘국뽕’으론 과학기술 인재를 유혹할 수 없다. 법무부의 이민청 설립 의지가 단순히 인구절벽을 막을 이주노동자를 공급하겠다는 유치한 철학이 아니길 바란다. 1973년생 젊은 장관 한동훈의 비전이, 그렇게 유치할 것이라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민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과학기술자 중에서, 30년 후 한국의 노벨상이 탄생하는 꿈 정도는 꾸어볼 만하지 않은가.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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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