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의 밤-한장의 이미지가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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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미치오 슈스케는 2004년 데뷔한 이래 다양한 대중소설을 선보였다. 호러·미스터리였던 데뷔작 <등의 눈>부터 시작된 ‘영(靈) 현상 탐구가 마키비’ 시리즈를 비롯해 서스펜스 스릴러를 여러편 집필하는 등 다작가로도 이름이 높다. 이는 폭넓은 수상 경력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섀도우>로 제7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까마귀의 엄지>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와 <광매화>로 각각 오야부 하루히코상과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품에 안았다. 2011년에는 <달과 게>로 일본의 가장 권위 있는 대중소설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하면서 명실공히 일본을 대표하는 엔터테인먼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미치오 슈스케의 <절벽의 밤> 표지 / 청미래

미치오 슈스케의 <절벽의 밤> 표지 / 청미래

그럼에도 역시나 미치오 슈스케 하면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처럼 기묘한 분위기 속에 여러차례 비밀의 문을 여닫는 정통적인 미스터리가 먼저 떠오른다. <절벽의 밤>도 그중 하나로, 미치오 슈스케의 장기가 그대로 녹아든 작품이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자신의 작품을 향한 “지금까지 읽어본 적 없는 소설을 내놓았다”는 식의 호언장담엔 어쩐지 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4편의 단편을 수록한 연작 단편집 <절벽의 밤>은 “지금까지 읽어본 적 없는 소설”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작가 스스로에게만큼은 새로운 도전이었을 아이디어를 명쾌하게 구체화한 작품임엔 틀림없다.

<절벽의 밤>의 원제는 <이케나이(いけない)>로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 의미 그대로 4개의 장은 모두 금기를 암시하는 제목으로 이뤄져 있다. 본디 서사 장르에서 금기란 어떻게든 어길 수밖에 없는 숙명에 놓이게 마련이다. 금기를 의식함으로써 오히려 파기하는, 불온한 분위기 속에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이는 곧 또 다른 파국으로 이어진다. 첫 장인 ‘유미나게 절벽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가마쿠라시 해안도로를 따라 운전할 때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낭떠러지인 유미나게 절벽을 바라보면 저세상으로 끌려간다는 일종의 도시 전설에서 촉발된다. 이곳 절벽은 실제로 자살 명소일 뿐 아니라 교통사고 다발 지역이기도 하다. 물론 실상은 절벽 옆을 지나자마자 급커브 구간에 터널까지 나와 괜스레 바다에 한눈팔다가는 사고 나기 십상이라 일종의 경계 차원에서 만들어낸 말일 게 분명하다. 작품 속에서 정말로 사고가 발생하고 이는 곧 뺑소니로 이어진다. 이후 뺑소니 사건의 범인들이 유미나게 절벽에서 차례로 살해당하고 실종되면서 인간의 악의는 괴담과 경고 너머로 서서히 확산한다.

문제는 사건이 말끔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을 두고 다음 장, 전혀 다른 이야기로 살인의 여파를 이양한다는 데 있다. 각 장은 영문을 알 수 없는 한장의 이미지만 남긴 채 마무리된다. 두 번째 장 역시 중국에서 이민 온 초등학생 커가 또 다른 살인사건을 목격한 뒤 유미나게 절벽에서 살해당할 위기까지만 그려낸다. 그가 목숨을 부지한 이유는 한장의 사진으로만 제시한다. 즉 이 시각 이미지야말로 작가가 넌지시 흘린 해답이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추리한다면 찝찝하게 남은 의문은 곧 일소된다. 더욱이 문장으로 명확히 적시하지 않은 탓에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다른 정보와 함께 연이어 다음 장까지 즐길 수 있는 구조다. 글이 아닌 모호한 그림을 통해 독자를 이야기 안으로 적극 뛰어들게 하는 방식만큼은 정말로 새롭다 할 만하다. 수수께끼는 조금 거들 뿐 역시나 장을 거듭하며 켜켜이 쌓여가는 죄책감과 비밀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성취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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