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민중가수 임정득 “모든 투쟁의 뿌리는 사랑에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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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영 작가

주미영 작가

나에게 노래는 멜로디보다 가사가 더 중요하다. 가사를 먼저 써야 곡이 떠오른다. 전문적인 공부를 한 친구들은 멜로디부터 쓰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메시지가 없으면 곡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임정득(41)은 영남대 1학년 때부터 노래를 불렀다. 노래 동아리 ‘예사가락’에서 ‘민중가요’라는 형식의 노래를 만났다. TV에서 전혀 듣거나 보지 못했던 노래였다. 신선했다. 특히 가사가 좋았다.

경북 군위군의 궁벽한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다. 대구로 유학 와서 중고등학교에 다녔지만 학교에서 그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말이 없었다. 항상 겸손하고 모범적으로 처신했다.

대학 시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가치, 존재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단과대를 돌며 노래 공연을 하면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의 노래에 반해 동아리에 신입부원이 여럿 몰려들기도 했다.

싱어송라이터 임정득은 민중가수로 현장에서 잘 알려져 있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수백㎞ 떨어진 행사장을 찾아 공연하고 발언하는 가수로도 유명하다. 그를 어떤 명칭으로 불러야 할까. 민중가수, 진보예술인, 싱어송라이터, 그냥 ‘노래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넓은 스펙트럼 어딘가에 그는 존재한다.

“민중가수라는 호칭에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투쟁가 형식의 노래는 나 말고도 잘하는 사람이 많았다. 서정적인 노래를 좋아하는 편인데, 민중가수의 정체성은 투쟁가요만을 부르는 존재로, 박제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달라졌다. ‘민중가수’란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는 노래를 부르는 존재다. 나를 그렇게 불러준다면 그것은 너무도 고맙고 소중한 타이틀이다.”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처럼 ‘국민적 추앙’을 받았던 ‘민중가수’도 있다. 임정득이 ‘민중가수’라는 호칭에 겸양하는 이유는 ‘민중’이라는 말이 지닌 보편성과 대중성의 차원에 자신의 노래가 아직은 다다르지 못했다는 자각일 수도 있다.

데뷔 후 거의 매년 단독 콘서트 임정득은 2011년 데뷔 이후 거의 매년 단독 콘서트를 가진 가수다. 여전히 그는 집회와 시위의 현장에 모습을 더 자주 내비친다. 깔끔한 미성에 정확한 발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짧은 연설을 토해낸다. 그 메시지 전달의 능력과 재능이 발군이다.

그는 투쟁가요도 서정적으로 쓴다. 분노도 크지만 결국 사랑으로 회귀한다. 임정득은 “살아가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모든 투쟁의 뿌리는 사랑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목숨을 바친 ‘열사’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눈물 나게 표현한 곡이 많다. 투쟁 과정에서 숨진 노동자와 철거민 등을 위해 여러 곡을 썼다. ‘일흔일곱 날의 기억’, ‘저녁녘’, ‘사라지다’, ‘그랬으면 좋겠다’ 등이 그 노래다.

2020년 12월 한진중공업 김진숙 복직을 위한 희망버스 행사에 참여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임정득. 임정득 제공

2020년 12월 한진중공업 김진숙 복직을 위한 희망버스 행사에 참여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임정득. 임정득 제공

밀양 송전탑 투쟁, 한진중공업 고공 투쟁,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세월호 유가족 집회 현장에 그는 달려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수로 데뷔하기 전까지는 초대도 하지 않은 투쟁사업장을 무작정 방문하기도 했다. 자주 가던 곳이 한진중공업 현장이었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때 해고노동자 김진숙을 만났다. 김진숙은 영도조선소 내 크레인 위에서 무려 309일간이나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임정득의 명곡 ‘소금꽃나무’는 김진숙을 만나 탄생했다. 2015년 발표한 1.5집 앨범 <당신과 상관없는 노래>에 수록됐다. 2007년 김진숙이 썼던 동명의 책에서 제목을 따왔다.

“현장을 찾아가 ‘노래로 연대하고 싶다, 노래 불러도 되냐’고 쑥스럽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김진숙씨는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었고, 매일 열렸던 문화제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일조했다고 감히 자부한다. 쌍용차 투쟁할 때도 노조원들이 좋아하는 가수로 임정득을 꼽아줬다. 지난 2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명예 복귀를 하고 퇴직 기념행사를 할 때, 부산 HJ중공업 현장에 가서 김 지도위원과 함께 ‘소금꽃나무’ 노래를 불렀다.”

‘소금꽃나무’는 임정득 노래의 절정이다. 깊고 넓어진 그의 음악세계가 서정적으로 펼쳐진다. 그 비장미가 자못 도저하다. 소금꽃은 노동자의 등에 흘린 땀방울의 결정체를 의미한다. 임정득은 노래에서 그 노동자를 “아침이면 어디 있는지 모르는 희망을 찾아 기를 쓰고 버텨온 사람들”로 묘사한다. 종국에는 “눈부신 열매를 맺고서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저 거친 세상 속으로 저 지친 어깨에 흐드러진 꽃을” 피워내는 존재다.

사실 민중가수로서 임정득의 저력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구의 한 노래패에 속했던 6년간의 세월에 형성됐다. 당시 그는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대구 성서공단에서 작은 공연을 펼쳤다. 공단 노동자의 애로사항을 돕기 위해 노무사가 부스에서 상담했고, 그 시간 임정득은 노래를 불렀다. 6년이나 이 공연을 지속했다는 점이 놀랍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2019년 한 대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행사에 참여한 임정득의 뒷모습. 항상 약자의 입장을 옹호하며, 연민과 함께 연대의 의지를 자발적으로 보여준다. 임정득 제공

2019년 한 대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행사에 참여한 임정득의 뒷모습. 항상 약자의 입장을 옹호하며, 연민과 함께 연대의 의지를 자발적으로 보여준다. 임정득 제공

“성서공단에는 매우 영세한 기업에 특히 이주노동자가 많았다. 공단에서 맡았던 특유의 화학약품 냄새가 지금도 나는 듯하다. 그들의 기본 권리는 너무도 심하게 짓밟히고 있었다. 장장 6년이나 지속했기 때문에 어떤 집회 현장보다 애착이 가는 장소다. 노래를 하고 발언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맞닥뜨린 현장은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임정득은 종종 영화에서 노래의 영감과 소재를 얻는다. 리얼리즘 영화의 대가로, 영국을 대표하는 감독 켄 로치(Ken Loach)를 좋아한다. 켄 로치는 노동계급이나 아일랜드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켄 로치 감독이 2007년 연출한 <자유로운 세계(It’s a Free World)>는 이주노동자의 착취에 관한 이야기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세태에 착안했다. 노동자 착취가 ‘근대화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라는 자유시장의 환상을 착취자의 관점에서 익살스럽게 꾸짖는 영화다.

임정득이 말하는 자유란 임정득은 영화와 같은 이름의 곡을 썼다. 임정득이 자신이 쓴 노래 중 가장 사랑하는 곡이 바로 ‘자유로운 세계’다. 1집의 앨범명이자 타이틀곡으로 삼았다. 임정득에게 ‘자유로운 세계’란 ‘살아남은 사람의 법칙만 존재하는 세계’다. 그는 자유를 이렇게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자유’라는 말을 35번이나 썼다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그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가. 착취하고 지배하는 자의 자유까지 우리가 인정한다면, 도대체 자유라는 것이 뭔가. 그런 질문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다 열려 있다던가, 모두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실상 그런 자유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는 아름다운 말처럼 들리지만 이미 타락했고, 그 의미가 오염돼 있는 것이다.”

임정득은 곡을 직접 쓴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솔로 가수가 된다는 의미는 청중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는 것, 전파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측면에서 자신이 쓴 곡을 부른다는 것은 가수로서의 창발성을 고양하는, 중요한 방법론이다.

“나에게 노래는 멜로디보다 가사가 더 중요하다. 가사를 먼저 써야 곡이 떠오른다. 전문적인 공부를 한 친구들은 멜로디부터 쓰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메시지가 없으면 곡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곡을 쓰지 않으면 너무도 괴롭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노래라는 형식 안에서만 가능해진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미국 가수 나탈리 머천트(Natalie Merchant)는 압도적인 예술성으로 가사를 썼다. 그가 나의 롤모델이다. 1800년대 아이들에 관해 쓴 미국 시인의 시를 수집해 곡을 만들었다. 그 스토리를 찾기 위해 손수 도서관을 뒤졌다고 한다. 페미니즘의 문제, 삶과 죽음의 단상도 포함돼 있다. 공연할 때는 자유롭고 분방하게 춤을 춘다. 그 눈빛과 말이 너무도 힘이 있고 따뜻하다. 여성이나 이주민의 삶에 주목했고, 지금은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머천트의 예술에서 나오는 아우라와 에너지는 정말 대단하다.”

주미영 작가

주미영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권정생 선생 코로나19 때문에 연말에 기획하던 송년 모임 음악회를 2년간 하지 못했다. 1시간 30분 정도 작은 콘서트에서 다양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올해부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연말에 4집 음반도 내놓을 계획이다. 그는 가수 이상은과 강산에를 좋아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는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삶과 사상에 매료된 적이 있다. 권정생은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북녘 형제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힘없는 주인공들이 타인에게 기여하는 삶을 표현했다.

그런 점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권정생은 닮았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날카롭게 저항했다. 두 사람 다 평화주의자, 생태주의자이면서 아나키스트(모든 제도화된 정치조직·권력·사회적 권위를 부정하는 사상가 및 운동가)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임정득의 정신적 지향을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다.

“얼마 전 선배 노동가수 지민주와 대화한 적이 있다. 지 선배는 현장성이 있는 가사, 투쟁가요의 성격을 지금보다 더 강화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게 말했다. 지금의 상황을 굉장히 엄혹하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노래 자체에 욕심은 없다고 했다. 거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생각했다. 지 선배는 투쟁의 선명함에 자신의 정체성을 결합했다. 그런 대범한 자리매김에 공감하며, 그를 다시 보게 됐다. 열사들의 노래를 부를 때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이렇게 아마추어티를 내면 안 되는데 큰일이다. 삼성전자 서비스의 최종범 열사가 고인이 됐을 때 많이 힘들었다. 고인과 내가 동갑내기였다. 내 노래를 제일 좋아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기 때문이다. 매년 기일에 그의 무덤을 찾아가 노래를 한곡 바치고 돌아온다.”

<한기홍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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