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들꽃마을에 철강공장이 웬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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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사는 마을 옆에 어느 날 커다란 철강공장이 들어선다고 했다. 엄마가 산골짜기에 친구들과 작은 마을을 만든 지 반년도 안 된 때의 일이었다. 목장으로 쓰일 뻔한 부지를 사이좋게 나눠 사서 삼삼오오 집을 지어 만든 작은 터전이었다. 자연과 어울려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뜻에서 들꽃마을이라 이름했다. 어딜 보아도 초록 능선이 넘실거리고 앞으로 나가면 맑은 계곡이 졸졸 흐르고 밤이면 별이 쏟아질 듯 반짝이는 곳이었다. 봄이면 그곳은 귀뚜라미와 개구리 우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겨울이면 적막해 별들의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엄마는 봄을 앞두고 마당에 새싹을 옮겨 심으며 말했다. “너도 나중에 여기 와서 살고 싶어질 만큼 멋진 마을을 만들 거야.”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그 호언장담이 하루아침에 위기에 처했다. 새싹들이 합창하듯 꽃을 피워내던 봄, 공장이 들어선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떨어졌다. 마을의 100m 옆에 들어선다는 공장은 마을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지나는 곳이었다. 소음은 물론 철강을 생산하며 생기는 분진과 환경오염, 대형차량 통행으로 마을의 풍경이 송두리째 바뀔 게 뻔했다. 엄마의 집 창문에서도 보일 만큼 가까웠는데도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예상을 깬 전투력

분명 어딘가 익숙한 시나리오였다. 시골 마을 옆에 들어서는 공장, 한줌도 안 되는 주민들의 작은 시위와 목소리는 우습게 저지되고, 떨어지는 허가, 이어지는 트럭, 공장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늘 생각보다 큰 규모로 들어선다. 약속과 다르게 시간이 갈수록 야금야금 덩치를 키워가며 도시를 방불케 하는 소음과 먼지로 마을을 뒤덮는다. 참다 못한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간다. 어느 순간 마을이 있었던 흔적조차 사라지는, 겪어보지 않았는데도 선명한 그렇고 그런 스토리였다. 그 비극의 주인공이 이번엔 엄마였을 뿐이다. 심지어 그런 전개로 마을 저편에는 시멘트 공장이 이미 들어섰다. 그곳은 돌아볼 때마다 전보다 커져 있었다. 밤에도 빨간불을 밝히며 회색 연기를 뿜어냈다. 엄마는 말했다. “막을 거야.” 마치 피할 수 없는 안타까운 운명을 앞둔 주인공처럼 나지막한 한마디가 허공에서 부서졌다. 들꽃마을은 전투태세를 갖추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아직 공사 중인 집들이 여러채였다. 집을 짓고 내려온 것은 다섯가구가 전부였다. 승부는 불 보듯 했다.

그후 몇 달간 드문드문 소식이 들려왔다. 슬픈 결말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하며 한 귀는 열고 한 귀로 흘렸다.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장 설립 모두 철회하기로 했어. 우리가 이겼어.” 귀를 의심했다. “정말?” 들었던 소식 중 그나마 희미하게 기억하는 것은 엄마의 플래카드 철학이었다. 사안에 반대하는 현수막이란 모름지기 누가 읽어도 무슨 말인지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간단명료함과 동시에 강력한 한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을 회의에서 후보로 나온 ‘청정 마을 옆에 공장설립 말이 되냐’는 나른해보이고, ‘주거환경 박살 내는 OO공장 허가 반대’에서 주거환경은 어딘가 모호하다고 엄마는 열을 냈다. 결국 마을 앞에 ‘(결사) 환경오염 소음피해 OO공장 반대한다 (반대)’라고 쓰인 현수막이 나붙었다.

플래카드 한장에 이렇게까지 심오한 논쟁이 오가다니….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이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말았다. 그 마을을 이루고 있는 이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청춘을 학생운동에 바쳤던 운동권, 그러니까 싸워본 가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엄마와 마을 식구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조직된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즉각 마을 회의를 소집했다. 마을에서 제일 목소리가 크고 발이 넓은 사람이 날이 밝자마자 군청에 찾아갔다. 부지런히 전화를 돌려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세상에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듯 설득해 주요 마을의 이장들을 포섭했다. 어떤 마을이든 그 마을의 가장 젊고 능력 있는 사람이 이장이 되고, 그들을 자기편으로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본능처럼 알았다. 공장 측에서 공식적으로 군청에 설립 허가를 요청하자 그들은 본격적으로 발로 뛰어 마을의 한집도 놓치지 않고 서명을 받아냈다. 수도 없이 민원을 넣어 끝내 군수가 상황 파악을 위해 마을을 방문하게 했다. 그때 공장 측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주민을 구슬리기 위해 사업설명회를 열자 기다렸다는 듯 주변 마을 모두에게 소집 명령을 내렸다.

“요즘 시골에서는 마을 방송을 전화로 하거든. 매일 아침에 전화가 와. 거기다 공식적으로 공지를 때린 거지. 절대 가만둘 수 없는 OO공장이 마을 옆에 들어선다고 합니다. 꼭 현장에 가서 막아야 합니다. 몇시 어디로 모두 나와주십시오.”

피켓 대신 달큰한 떡을

그렇게 마을에서 가장 젊은 50대부터 90대까지 모든 주민이 사업설명회에 모였다. 엄마와 마을 식구들은 때맞춰 넉넉히 준비한 피켓과 현수막을 사람들에게 쥐여줬다. 앞서 들어선 시멘트 공장으로 큰 회한을 느끼고 있던 주민들은 한 맺힌 영혼을 그대로 내보였다. 현장은 난장판이 됐다. “거기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우리보다 더 잘 싸우던데.” 그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지역 신문에 났다. 공장 측은 짐짓 놀라는 듯했으나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속이 뻔히 보이는 말들을 이어갔다. 일 년에 딱 한 달만 공장을 돌릴 것이며, 절대 오염은 없을 것이며…. “그다음엔 어떻게 했는데?” 그러자 엄마는 말했다. “매일같이 전화를 해서 속삭였지. 허가가 떨어지고, 설립이 된다고 해도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우리는 매일같이 공장에 들를 거라고. 매일 근처를 서성이며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거라고. 뭐 하나라도 잘못되면 하나하나 걸고넘어질 거라고. 우리 집 창문에서도 너네가 뭐 하는지 다 보인다고. 절대 너네 마음대로 되는 건 없을 거라고.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 얘기를 듣는 내 팔에 소름이 돋았으니 전화를 받았던 사람은 얼마나 등골이 오싹했을까. 공장 측이 마을을 잘못 골랐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싸움이 뭔지 알고 있었다. 먼저 힘을 합쳐 하나가 돼야 하고, 다양한 차원에서 연합을 이루어야 하며, 강경하고 분명하고 끈질기게, 그러니까 쥐잡듯이 잡아야 한다는 것을. 개처럼 사납게 싸우면서도 여유와 우아함을 잃지 않았던 그들은 노련하고 실력 있는 파이터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줬다. 얼마 후 아침 마을 방송이 소식을 알렸다. “오늘 들꽃마을에서 떡을 돌린다고 합니다. 주민들께서는 떡을 받으러 주민 회관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떡을 돌리는 날에는 마을에 생기가 돈다. 저 멀리서부터 꼬부랑 할머니가 빈손으로 떡을 받으러 종종걸음을 걸어온다. 들꽃마을엔 승리를 축하하는 작은 축제가 열렸다. 그들은 깨끗한 공기를 쟁취했고 고요한 적막을 포상으로 받았다. 새삼스레 알게 됐다. 여전히 스스로를 위해 싸울 수 있음을. 전화기와 피켓을 들고 있던 작고 단단한 손에 이제는 따끈하고 달큰한 떡이 들려 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생각했다. 어디나 이런 행운이 함께하지 않음을 알기에. 스스로를 위해 싸울 줄 아는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양다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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