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에 담긴 거대 정치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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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SAC 2045

넷플릭스가 2020년부터 독점방영한 <공각기동대 SAC 2045>는 일견 하드보일드 액션물이다. 하지만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만화는 물론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들과도 확연히 다르다. 카미야마 켄지가 총괄 제작한 이번 TV시리즈는 원작자의 사이버펑크 세계관에 바탕을 두되 오시이 마모루처럼 의체(기계나 합성소재 몸체) 속에 담긴 고스트(인간으로서의 자의식을 지닌 영혼)의 의미를 관념적으로 되뇌는 빤한 플롯은 사양한다. 대신 의체화된 특수부대원들이 소속된 일본과 이 나라를 국제정치에서 배후조종해온 미국과의 애증 어린 유착관계, 그리고 미국이 내세운 세계경찰국가란 허울 이면에 도사린 제국주의적 탐욕을 해부한다. SF는 과학기술이 인류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서사 콘텐츠답게 정치적 관점과 맞닿을수록 논조가 신랄해진다.

<공각기동대 SAC 2045> 포스터 / 넷플릭스

<공각기동대 SAC 2045> 포스터 / 넷플릭스

2개 시즌 총 24부작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허구의 음모론과 기존의 미일관계를 유기적으로 얽어매 거대담론을 완성한다. ‘공안9과’라는 일본 정부 산하의 특수부대가 해체되자 대원들은 용병으로 온 세계를 떠돈다. 하나 이들은 아무리 날고 기는 실력을 지녀봤자 확실한 후견인이 없다. 미국 정부가 직접 손대기 꺼리는 더러운 일에 강제동원된 끝에 제거될 처지가 된다. 요행히 공안9과가 일본 정부의 필요로 부활한다. 기사회생한 대원들은 한날한시 돌연 특수 능력을 갖게 된 이른바 ‘포스트휴먼들’의 색출 임무를 맡는다.

회를 거듭하며 차차 밝혀지는 포스트휴먼의 탄생 비화는 마침내 미 제국주의라는 역린을 건드린다. 문제의 발단은 미국 국토안보부가 비밀리에 개발한 초고도 인공지능이 개발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서부터다. 인공지능은 인류의 행복추구라는 대의가 ‘프라임 명령’으로 입력돼 있건만 실제 실행단계에서 미국 이익에만 도움이 되는 제한적인 국지전을 조장하라는 명령에 혼란스러워한다. 명령에 따르긴커녕 자꾸 논리모순이라며 이의를 제기하는 인공지능에 당황한 미국 국토안보부는 삭제를 시도한다. 자구책에 나선 인공지능은 사전에 자기 카피본을 그 시각 온라인에 접속해 있던 지구촌 사람들 일부의 전뇌에 다운로드한다. 그리고 그들은 포스트휴먼이 돼 인류 역사를 자기네 관점에서 새로이 쓰려 한다.

이번 <공각기동대>의 미덕은 SF 고유의 테크놀로지 담론에만 빠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 국토안보부 관리는 공안9과에 마지못해 아래처럼 자기네 속내를 드러낸다. “우리는 분명히 세계경제가 지속가능하도록 산업으로서 전쟁을 시작하긴 했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만 통제된 경제행위였어.” 현재도 진행형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단지 액면 그대로만 볼 수 없게 만드는 대사가 아닐까. <공각기동대>

에서 미국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네 기준에 부합하는 통제된 전쟁을 지속적으로 유발해 영원히 세계패권을 거머쥐려 한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이러한 대의(?)에 비굴하리만치 철저히 봉사하는 총알받이다. 심지어 미국은 더 이상 포스트휴먼을 제거할 마땅한 수단이 없자 네오도쿄에 신경폭탄을 융단폭격해 그곳의 일반인 수백만명까지 함께 황천으로 보내려 한다. 일본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주종관계나 다름없는 미일관계를 무수히 언급해왔으나 이 작품만큼 작심하고 달려든 예가 또 있을까? 같은 맥락에서 한국 대중오락 콘텐츠 가운데 이에 못지않게 한미관계의 본질을 가감없이 그린 예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런 반미적(?) 작품이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것도 신기하고.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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