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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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토론토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길고 길었던 캐나다 동장군의 위용은 봄비와 함께 녹아내리며 멀게만 느껴졌던 봄기운이 어느새 이곳에도 스며들었다. 흰 눈에 숨어 있던 회색의 잔디와 나무가 조금씩 무채색의 겉옷을 떨쳐 내고 푸른색의 속살을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곳곳에 꽃망울이 맺히고 터지면서 민들레, 목련, 매화, 벚꽃 등이 만든 화려한 유채색의 축제를 시작한다. 굳이 주변 산책로나 공원을 찾지 않더라도 동네 주택가의 정원에서 가지각색의 꽃들이 자신의 이쁨을 경쟁하며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겨울철 숨어지내던 토론토 시민들은 바깥으로 나와 자연이 만든 변화와 축제를 즐긴다. 나도 그중 하나가 돼 따뜻한 봄 햇살에 겨울 동안 얼어 있던 마음을 녹인다.

2020년 7월 23일 서울 중구 수성동계곡에 꿀벌이 등에 빗방울을 얹은 채 벌개미취꽃에 앉아 꿀을 빨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20년 7월 23일 서울 중구 수성동계곡에 꿀벌이 등에 빗방울을 얹은 채 벌개미취꽃에 앉아 꿀을 빨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화려한 꽃들의 향연에 항상 등장하던 손님이 빠져 있다. 봄이면 어김없이 꽃들에 날아들던 꿀벌들이 보이지 않는다. 나도 이 축제를 즐기는 손님이라고 윙윙대는 소리로 존재감을 나타내던 녀석들이 보이지 않는다. 성가시면서도 반가웠던-보이지 않게 되니 봄이라는 퍼즐에 한 조각이 빠진 것처럼 허전한-꿀벌이다. 기억을 되뇌면 몇해 전부터 주변에서 꿀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라지는 꿀벌

캐나다 양봉업체는 꿀벌의 대량 감소로 인해 올해 캐나다에서 벌꿀 및 양봉 산업의 손실이 1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에 캐나다 꿀 및 꿀벌 산업의 총 추정 기여도는 40억에서 55억달러 사이였다. 온타리오 양봉업 협회에 따르면 온타리오주 전역의 양봉가들은 꿀벌의 수가 최대 90% 손실됐다고 보고했다. 온타리오주 나이아가라 지역의 한 양봉가는 50년 동안 경험한 것 중 올해가 최악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봄이 시작되면 꽃을 따라 수㎞를 날아다니는 꿀벌의 수고로 만들어진 꿀은 가공이 필요 없는 완전식품으로 단맛을 내면서도 건강한 식재료로 인정받는 천연 감미료다. 미네랄, 칼슘 및 항산화제 등이 풍부한 꿀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귀한 식재료일 뿐만 아니라 웰니스(wellness)에 대한 높은 관심과 시대적 요구를 충족시키며 의학적으로 인정받는 약재이기도 하다.

사라지는 꿀벌은 단지 줄어드는 꿀의 생산량과 양봉 산업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꽃가루 매개자로서 꿀벌의 역할은 지구 생태계를 유지하고 인류의 생존을 결정짓는다. 꽃은 꿀벌에게 꿀이라는 먹이를 주고, 꿀벌은 꽃에 꽃가루를 전달하는 수분 매개자로 두 종은 공생하고 연속된다. 나비나 파리 같은 다른 곤충도 꽃가루를 전달하지만, 꿀벌의 수분 기여율은 다른 곤충에 비해 절대적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사과, 배, 딸기, 고추, 아몬드와 같은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작물의 약 70%가 꿀벌을 통해 수분이 되고 열매를 맺어 번식한다. 만약 꿀벌이 사라지면 농산물 생산량이 크게 감소해 식량 대란으로 이어진다. 인류의 생존까지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꿀벌의 수분이 필요한 식물이 사라짐으로써 초식동물의 생존과 이후 육식동물을 포함하는 먹이사슬이 붕괴해 지구 생태계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꿀벌의 생존은 인류의 생존과 이어진다.

꿀벌이 사라지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배로아(Varroa)로 알려진 기생충은 꿀벌의 지방과 체액을 흡수하며 죽게 만드는 꿀벌 개체수 감소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야생화가 풍부했던 초원이 사라지며, 꿀벌들의 자연 서식지가 감소했다. 인류의 집약적인 농업 관행과 단일재배는 꿀벌의 먹이를 편식시켜 영향 결핍과 면역력 저하를 초래하고 주변환경 변화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농장의 과도한 살균제와 살충제의 오남용도 꿀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에 게재된 캐나다 오타와대학의 연구는 꿀벌 감소의 주원인이 지구온난화라고 밝혔다. 오타와대학은 북미와 유럽 전역 66종의 벌을 115년(1900~2015)에 걸쳐 수집했다. 1900년대 초·중반과 비교해 2000~2014년 벌의 수가 북미에서 평균 46%가 줄었고, 유럽에서는 17% 줄었다는 데이터로 기온 상승과의 상관관계를 증명했다. 꿀벌은 온도변화에 민감한 변온동물이라 지구온난화로 인한 급격한 기온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겨울 중 갑자기 따뜻해진 온도를 봄으로 착각한 꿀벌이 상당수 죽었다. 이른 시기에 개화한 꽃은 꿀 수확 시기를 단축해 꿀벌의 먹이가 줄었다. 지구온난화로 따뜻해진 겨울은 배로아 기생충의 생존율을 높여 봄철 활동을 시작한 꿀벌을 괴롭혔다. 또한 지구온난화로 대기가 더 많은 수분을 보유하여 지구의 물 순환 사이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이는 기록적인 폭우와 홍수사태를 발생시켜 꿀벌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위기의 지구 생태계

사실, 생존 위협을 느끼는 것은 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양서류는 40%, 포유류는 25%, 파충류는 21%, 조류는 13%가 멸종위기에 당면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무분별한 벌목, 농장 개발, 도시화 그리고 외래 침입종 등 기존 생태계의 균형을 깨는 직접적인 원인도 있지만 이보다 더 위협적인 원인은 지금 한창 일어나고 있는 지구온난화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섭씨 3도 상승하면 알려진 육지 동식물종의 29%가 멸종한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와 있다.

비교적 안전지대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해양생태계 역시 기후변화의 위기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바다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열을 가둬 기후변화에 대한 안전장치 기능을 해왔지만, 이는 해수 온도를 높이고 용존 산소량을 낮추는 희생에 따른 것이었다. 또한 해수에 이산화탄소가 용해돼 점차 산도가 강화되고 해양 산성화를 일으켰다. 그동안 쌓인 희생은 한계점에 다다라 해양 생태계를 변화시켜 물고기를 위협하고 산호초를 줄어들게 했다. 최근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은 2100년까지 지구온난화의 진전으로 지구 평균 온도가 섭씨 4도까지 상승할 경우 약 2억5000만년 전 페름기에 발생한 대량 멸종처럼 해양 종의 대절멸이 우려된다고 발표했다. 이를 막을 유일한 방법은 지구온난화를 섭씨 1.5도에서 2도 사이로 제한하는 것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모든 생물은 살아가기 위해 다른 식물이나 동물이 필요하다. 물과 공기, 토양이 오염되지 않고 자연생태계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모든 생명체가 함께 조화롭게 살 수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홍수, 가뭄, 질병 등으로 먹이사슬이 무너져 한 생물종이 멸종하면 먹이사슬에 연결된 다른 생물종도 영향을 받아 생태계의 균형이 깨진다. 결국 먹이사슬에 연결돼 있는 인류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류는 과학기술문명이라는 미명하에 산업화와 경제적 성장 그리고 물질적 풍요를 이뤘지만 동시에 자연파괴, 자원고갈, 환경오염, 지구온난화의 위기도 만들었다. 인류의 기술문명은 꿀벌을 사라지게 하고 주변 동식물들을 위협하며 역설적으로 인류의 생존 또한 위협하고 있다. 자신의 꼬리를 뜯어먹다 천천히 죽어간 그리스 신화의 괴물 우로보로스는 우리의 자화상인가? 아직 우리에겐 선택의 기회가 있다. 우리의 운명은 인류의 지혜로운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정봉석 하이드라텍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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