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쟁…총구가 겨눈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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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의 장바구니 물가가 말 그대로 들썩인다. 장 보러 마트에 갈 때마다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가격이 더 비싸진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도 그렇게 오르고 있다. 캐나다 통계청은 지난 1월 소비자 물가가 지난해 동월 대비로 5.1% 뛰었고, 지난 2월에는 5.7% 올라 1991년 8월 이후 최대폭으로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곳 현지 언론은 소비자 물가가 중앙은행의 물가 관리 목표 수준인 연 1~3% 범위를 11개월 연속 웃돌았다고 전했다. 특히 이러한 물가상승은 주거, 식료품, 휘발유 등 3개 품목에서 두드러졌다.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한 주유소 모습 / 정봉석 제공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한 주유소 모습 / 정봉석 제공

친환경 에너지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에 필요한 구리, 알루미늄 같은 원자재 가격이 뛰고,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면서 에너지 가격이 인상돼 경제 전반의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지난해부터 조짐을 보였다. 풍력과 태양광 같은 친환경 발전량이 필요한 에너지 수요를 지속적으로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채굴이 감소한 화석연료가 품귀현상을 보이자 화석연료의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물류 공급망 혼란도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증가한 온라인 쇼핑으로 공산품 배송 수요가 주요 항구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배송이 시작되면서 로스앤젤레스 롱비치항의 선박 대기 줄은 항상 넘쳐났다. 또 팬데믹이 초래한 구인난으로 화물 컨테이너를 물류센터로 이송할 트럭 운전사를 구하는 것은 북미에서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실정이다. 나 역시 최근 온라인 쇼핑을 통해 주문한 컴퓨터를 집에서 받아보는 데 2개월 이상의 인내심이 필요했다. 게다가 롱비치항에 대기 중인 많은 선박의 닻이 송유관에 영향을 줘 2021년 10월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의 기름 유출 환경사고를 냈다.

들썩이는 물가

이미 삐걱거리던 경제시스템에 결정타를 가한 사건이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최근 물가상승의 최대 원인이자 위협이다. 미국 주도의 유례없는 러시아 경제제재로 물류 및 공급망에 혼란을, 상품운송에 병목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러시아 석유금수 조치는 전 세계 에너지시장에 ‘오일쇼크’를 일으키며 화석연료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한다. 많은 양의 밀, 옥수수, 보리 등의 식량 생산과 운송이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묶여 있고, 전 세계 식량 생산에 필요한 비료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묶여 있다. 이같이 세계 식량시스템이 붕괴 위기에 직면한 결과 식량과 비료 가격이 치솟고 있다. 전쟁 이후 밀 가격은 21%, 보리 가격은 33%, 비료는 40% 인상됐다. 조만간 이곳 캐나다의 월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6%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3월 소비자 물가는 더 심각하다. 지난해 동월 대비 8.5% 오른 값으로 1981년 12월 이후 40여년 만의 최대 상승폭이다.

이에 캐나다연방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했다. 이곳 현지 시간기준 지난 4월 13일 ‘빅스텝(big step)’이라 불리는 0.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해 기준금리를 1%로 조정했다. 이번 0.5%포인트 인상폭은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캐나다연방중앙은행은 금리 인상과 동시에 그동안 진행해왔던 양적 완화 조치를 중단하고 양적 긴축 조치로 전환할 것이라고 알렸다. 미국 역시 이번 달 0.5%포인트 금리 인상이 유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후퇴하는 에너지 전환 정책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에너지 전환 정책을 시험대에 오르게 했다. 에너지의 가격 급등과 수급 불안정 문제로 친환경 정책이 후순위로 밀린 것이다. 유럽연합은 석유, 디젤, 석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천연가스 생산국인 러시아의 에너지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가하고 싶지만 기존의 높은 에너지 의존도가 문제였다. 러시아는 유럽에 필요한 천연가스의 약 40%를 공급하고 있으며, 그중 상당 부분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운송된다.

이에 지난 3월 말 미국은 유럽이 러시아의 에너지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위해 천연가스 선적량을 늘리기로 유럽 정상들과 합의했다. 독일은 올해 러시아 석유와 석탄 수입을 절반으로 줄이고 2024년 중반까지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에서 벗어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30년까지 미국이 연간 500억㎥를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에너지 산업계를 놀라게 했다.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비난을 받는 데 익숙해진 석유·가스 기업 경영진들이 갑자기 러시아 에너지로부터 유럽 동맹국을 해방하는 데 돕도록 소집됐다. 아직 어떻게 에너지를 유럽에 보내야 할지는 남은 숙제이다. 원유와 달리 천연가스는 미국에서 액화천연가스(LNG)로 변환해 유조선에 실어나른 후 도착지인 유럽에서 액화천연가스를 다시 가스 형태로 바꾸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작업은 대규모 수출입 터미널 기반시설이 필요하며, 이를 구축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휘발유에 혼합되는 에탄올 함유량에 변화를 가져왔다. 휘발유에 혼합되는 에탄올은 대부분 옥수수 전분의 증류 과정을 거쳐 생산된 바이오에탄올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바이오에탄올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정부가 바이오에탄올 생산을 촉진하는 지원정책을 적극적이고 꾸준하게 사용하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에탄올 업계의 성장이 없었을 것이다. 1973년과 1979년의 오일쇼크 충격으로 석유가 빠르게 고갈될 수 있다는 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정책이다. 이 정책은 바이오에탄올에 갤런(Gallon)당 40센트의 세금공제 프로그램을 도입해 미국의 바이오에탄올 산업이 자리를 잡는 데 기여했다. 2005년의 에너지정책법(Energy Policy Act)은 연료용 바이오에탄올 의무 혼합 규정을 최초로 도입하는 것으로 바이오에탄올 산업에 또 하나의 중요한 전기를 가져왔다. 이 제도를 통해 미국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휘발유는 에탄올 함유량이 10%인 E10 휘발유를 사용한다. 특히 기후변화 시기에 에탄올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인 친환경 대체 연료로 인식되면서 옥수수 바이오에탄올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바이오에탄올이 화석연료보다 기후변화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동시에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은 옥수수를 생산, 재배, 수확, 운송하고 특히 에탄올 생성 시 필요한 증류 과정에 사용한 화석연료를 고려하면 휘발유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에탄올이 휘발유보다 오히려 대기 오염을 가중시키고 스모그 관련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를 늘릴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이에 에탄올 함유량이 15%로 높은 E15 휘발유는 더운 여름철인 6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판매를 금지해왔다. 하지만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가 급등으로 고(高)에탄올 함유 휘발유 거래를 한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백악관은 현재 30여개주의 2300여개 주유소에서 E15를 판매 중이며, 이번 조치로 갤런당 10센트가량 유가 억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던 그즈음 유엔 산하 기후변화국제협의체(IPCC)는 암울한 기후변화의 위험을 보여준 보고서를 제출했다. 지금까지의 예측보다 더 빨리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며 온실가스 배출을 급격히 줄이지 않으면 자연과 인류가 적응하는 능력이 곧 압도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 세계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들썩이는 물가와 유가의 급등으로 조금씩 조금씩 뒤로 후퇴하고 있다.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으로 시체가 널려 있고, 도시가 불타는 우크라이나의 모습이 오늘도 TV에 나온다. 동네 마트에 갔다가 러시아군 포격에 희생당한 우크라이나 6세 소녀의 사진을 봤다. 가슴이 아려온다.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된 화약 냄새는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물가상승, 에너지 대란, 기후위기라는 전쟁의 총구가 이제 우리를 향하고 있다.

<정봉석 하이드라텍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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