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에 이르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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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째 살인은 그가 저지른 게 아니다?

아동 학대가 끔찍한 것은 가장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라서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이를 향해 은밀하게 벌어진 폭력인 탓에 뒤늦게 알려진 참상은 때때로 인간의 상상력과 도덕성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동 학대의 제일 비극적인 지점은 결국 폭력의 대물림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가정 폭력 가해자의 절반 이상이 유년기에 같은 피해를 경험했다고 한다. 스스로 그 가혹하고 무력했던 상황을 겪었으면서도 다시금 자신의 아이를 학대한다니. 마치 인간의 선한 자유의지로도 어찌할 수 없는 폭력의 굴레라는 게 정말로 존재하는 듯해 참혹한 기분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아동 학대는 연쇄살인범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역사적인 연쇄살인범의 성장 환경을 보면 하나같이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구시키 리우의 <사형에 이르는 병> 표지 / 에이치

구시키 리우의 <사형에 이르는 병> 표지 / 에이치

그런 면에서 <사형에 이르는 병>은 살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미스터리이기 이전에 작중 연쇄살인마인 하이무라 야마토에 대한 면밀한 탐구서에 가깝다. 5년 전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 중인 하이무라는 어릴 적 친분이 있는 대학생 마사야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무고를 증명해주길 요청한다. 물론 무고라고 해봐야 24건의 살인 용의 가운데 검찰이 확실한 유죄 판결 건으로 여겨 기소한 9건 중 마지막 9번째 살인 하나에 불과하다. 만약 이 사건이 무고로 밝혀진다 한들 사형이 번복되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그는 이 살인만큼은 결코 자신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며 마사야에게 진범을 찾아달라고 한다. 오랜 고민 끝에 이를 수락한 마사야는 하이무라의 변호인 조수를 가장해 그의 주변인과 사건 관계자를 하나하나 탐문한다.

마사야가 하이무라의 요청을 받아들이기 전 연쇄살인범과 관련한 온갖 책을 탐독하며 얻는 지식은 마치 불우한 성장 과정과 비정상적인 폭력성 간의 상관관계를 실제 사례를 통해 수집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후 하이무라의 주변을 파헤치는 지난한 과정은 마치 이론과 실제의 합치처럼 느껴질 법하다. 하이무라 역시 경계성 지능장애인 어머니 아래서 양부에게 신체적·성적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더욱이 하이무라의 이웃들은 그가 체포된 후에도 뭔가 착오가 있을 거라며 그를 강하게 두둔한다. 마치 살인범에 대한 동정과 연민, 나아가 감화마저 부추기면서 제3자인 독자마저 기어이 한 괴물의 심연 끝까지 끌어들이려는 듯한 모양새다.

실제로 마사야도 조사를 거듭할수록 9번째 희생자가 ‘질서형’ 연쇄살인범이었던 하이무라의 조건에 들어맞지 않음을 확신한다. 이내 그는 하이무라와 여러 번 면회하면서 학대받고 입양된 어머니의 과거에 더해 하이무라와의 숨겨진 관계까지 알게 되면서 만연한 아동 학대와 이로 인한 폭력의 정당성까지 저울질하기에 이른다. 과거 하이무라의 주변인들이 그랬듯 그 역시 차츰 살인자에게 동조하기 시작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결국 마사야가 하이무라의 진짜 의도에 다다르는 몇차례 반전은 괴물에게 공감한 인간에게 동정과 경고 또한 함께 안긴다. 그러면서 미스터리 서사와 메시지를 한데 수렴한다. 나약한 인간은 명백한 악 앞에서도 내내 연민의 줄타기를 벌인다. 연쇄살인범에 대한 보고서를 한껏 ‘가장’한 탓에 메시지와 결말이 더욱 쓸쓸하면서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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