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들을 위한 교육과 치유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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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가족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 큰 자식에 대한 참견도 보기 싫지만, 자녀와의 알콩달콩 풍경을 ‘비장의 카드’로 들이대는 방송이 무척 불편하다. 현실이 아닌 ‘판타지’를 통해 대리만족을 퍼뜨린다는 생각에서다.

일본 예능 <나의 첫 심부름> 한 장면 / 넷플릭스

일본 예능 <나의 첫 심부름> 한 장면 / 넷플릭스

방송에서 가족은 일상에서 우리가 겪고 보는 보통 가족과 형태만 같지 실질은 영 다르다. 선남선녀 부모가 바쁜 출근길이나 ‘투잡’ 일상 대신 자녀들과 오래 함께하고 전문가의 조력을 얻어 충분히 대화하고 설득하는 게 흔한 풍경일 리 없다. 반복되는 패턴과 신파에 식상하지만, 워낙 현실 육아가 고단하니 시청자는 ‘환상’이 주는 위안에 혹한다. ‘세상 쓸모없는 게 연예인 걱정’인데 어느새 ‘연예인 가족’까지 걱정하는 꼴이다. 시청률과 화제성을 이용해 연예인 2세나 3세, 사돈의 팔촌까지 ‘셀럽’으로 등극할 기세다.

형식은 별 차이 없지만, 알맹이는 확 다른 프로가 있다. 1988년부터 일본 니혼TV에서 연 2회 방영 중인 장수 기획 <나의 첫 심부름>이다. 7~20분 안의 분량에 두 살에서 다섯 살 아이들이 생애 첫 단독 심부름을 완수하는 과정을 관찰 카메라에 담는다. 국내 모 방송사에서 유사한 기획을 선보인 바 있어 익숙할 법하다.

<나의 첫 심부름>은 넷플릭스에서 현재 20회까지 방영 중이다. 에피소드마다 패턴은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이는 반응도, 심부름 중 일어나는 돌발 상황도, 부모들의 대응도 천차만별이라 식상하거나 지루해질 틈이 없다.

두 살 남자아이가 1㎞ 거리 동네 마트에 심부름을 떠난다. 엄마가 만들어준 안전신호 깃발을 꼭 움켜쥐고 아이는 모험에 나선다. 시청자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차도 옆을 걷는 아이를 따라간다. 일본 방송 특유의 과장되고 상세한 해설이 절묘하게 따라붙는다. “현재 아이는 시속 몇㎞ 속도로~ 예상 도착시간은~ ” 등의 추임새가 이어진다.

특이하게 카메라맨이 수시로 노출된다. 아이들이 천방지축 뛰어가면 헐레벌떡 쫓는 어른들의 풍경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그저 흥미 유발로만 끝나지 않는다. 정말 위험할 것 같으면 과감히 스태프가 상황에 개입한다. 아이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촬영함으로써 시청자를 안심시키려는 태도다. ‘리얼리티’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천편일률적인 관행에 얽매인 국내 프로그램이 배워야 할 모습이다.

국내 예능 프로는 아이들에게 어른이 좋아하는 것을 안겨주지만 <나의 첫 심부름> 속 아이들은 사탕이나 풍선에 혹하긴 해도 부모를 돕거나 아픈 동생을 위해 기꺼이 심부름에 나선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제 몫을 하겠다는 결의로 시련을 감내한다. 부모도 대가보다는 훈육 차원에서 접근한다(그래놓고 걱정돼 눈물을 훔치는 표정이 압권이다). 아이의 성장뿐 아니라 부모의 성숙도 덤으로 따른다.

여기에 이웃집 아이의 단독 심부름을 염려하며 보살피는 이웃들의 시선이 한국사회에서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동네 커뮤니티의 향수를 자극한다. ‘노키즈존’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아이보다 부모의 ‘내로남불’ 태도를 지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아이들을 무조건 보호하려고만 드는 (한국의) ‘어른이’ 부모들이 꼭 봐야 할 프로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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