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의 명작들이 무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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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는 이국적 정취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두 명의 교황이 존재했다는 아비뇽이나 로마시대 유적이 아름다운 님 등은 언제 찾아도 좋을 만한 관광 명소다. 유독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도시도 있다. 아를이다. 고흐가 말년을 보낸 장소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 HJ컬쳐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 HJ컬쳐

아를의 거리를 걷다 보면 고흐의 그림 속 풍경 같은 정취를 만날 수 있다. 쇠구슬 놀이인 페탕크를 하는 사람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도도히 흐르는 론강과 강렬함을 뿜어내는 해바라기 등은 누구라도 예술적 영감을 느끼게 한다. 한국에서는 라디오 프로그램 제목으로 쓰여 유명한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의 배경이 된 레스토랑 골목이나 빨래하는 처자들이 있던 랑글루아 다리, 고흐의 그림과 똑같이 꾸며놓은 생폴 정신병원의 정원 등이 위대한 천재화가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감동어린 명소들이다. 정말 정신병 때문인지 아니면 악마의 술이라 불린 초록색의 알코올 도수가 높은 압생트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고흐의 그림 속 강렬한 색감은 지금도 아를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이색적인 체험이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아를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강렬함을 떠올리게 하는 창작 뮤지컬이다. 빈센트와 화상(畵商)이었던 동생 테오, 단 2명의 배우가 100분가량의 이야기를 통해 고흐의 작품과 예술세계, 비참했던 생애와 눈물 자아내는 죽음을 절절히 펼쳐낸다. 실제로 테오와 빈센트는 700여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았을 정도로 형제애가 두터웠다. 뮤지컬에서는 이를 마치 2인칭 관찰자 시점처럼 상황을 구현하며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형의 자살 이후 마치 시들어가는 꽃잎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는 테오의 모습에 객석 곳곳에서 흐느낌이 들리는 것은 이 작품이 그만큼 대중적 소구와 감성적 공유에 효과적인 완성도를 이뤄냈음을 짐작게 한다.

2명의 배우만 등장하는 2인극의 구조가 기본이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주요 배역이 무대를 즐기는 재미를 극대화한다. 물론 1인다역의 멀티 캐릭터도 인상적이지만, 그보다 더 큰 비중으로 제3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바로 회화다. 3D 매핑 기술을 활용한 무대 세트에는 수십점에 이르는 고흐의 작품이 쉬지 않고 펼쳐진다. 회화 감상이라는 면으로만 보자면 뮤지컬을 통한 미술 관람이라는 색다른 즐거움으로도 인정할 만하다. 물론 극 전개에 따라 작품의 탄생이나 뒷이야기 등도 함께 이해할 수 있어 더욱 각별하다.

자칫 어둡고 단조로울 수 있는 2인극의 외형적 한계를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상상력의 접목을 통해 효과적으로 극복해낸다. 밀밭에서 그림을 그리던 고흐가 광기에 싸여 객석 통로로 사라지면, 멀리서 총소리가 들리고 까마귀들이 영상을 가득 뒤덮어 가로지르며 날아오른다. 이 작품의 백미다.

세계적 인지도의 예술가를 창작 뮤지컬 소재로 활용한 것은 글로벌 시장 진출에 적잖은 도움을 준다. 중국에선 현지 배우들을 기용한 버전이 막을 올려 흥행을 기록한 바 있다. 단지 남의 것을 가져다 무대에 올리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이를 다시 재가공해 되파는 발상의 전환이 흥미롭다. 현재보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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