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년 후, 우리 경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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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후 2030년이 되면 케인스가 ‘종이와 연필’로 그린 ‘자본주의’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예언대로 자본주의 선진경제는 경제적 유토피아를 실현했을까.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미래 예측은 무모한 작업이다. 시간이 지나면 예측 대부분은 빗나간 것으로 판명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확하게 미래를 맞추려는 게 아니라 미래에 투영된 현재의 비전은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데는 의미가 있다. 오늘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미래 전망은 오늘의 지침이 된다.

1930년에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우리 자손들의 경제적 가능성’이란 짧은 에세이를 발표했다. 이 에세이의 기본 아이디어는 1928년에 케임브리지대학의 신진 경제학자 그룹에서 처음 논의한 이후 몇차례 공개 강연을 통해 다듬어졌다. 미국과 선진국을 강타한 대공황으로 자본주의의 근간이 흔들리자 케인스는 자본주의 미래의 비전을 담아 이 에세이를 내놨다. 대공황을 극복하고 이제 막 출범한 러시아 사회주의를 넘어 100년 후 자본주의 선진경제가 경제적 유토피아를 실현할 것이라는 대담한 비전이 에세이의 핵심이다.

“선진국 생활 수준, 최소 4배 성장”

케인스 전망의 주요 내용은 다음의 두가지다. 100년 후 “선진국의 생활 수준은 현재보다 4배에서 8배 사이로 높아진다”는 것과 “근로시간은 일주일에 15시간, 하루 3시간으로 줄어들고, 인류는 드디어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 이래로 당면해온 경제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케인스가 전망한 100년 후는 2030년이다. 이제 8년이 남았다. 현시점에서 보면 케인스 전망의 첫 번째 부분은 초과 실현됐지만, 두 번째 부분은 유토피아적 상상의 세계로 남아 있다.

케인스의 비전을 중심으로 몇차례에 걸쳐 자본주의 경제의 장기 발전 문제를 다뤄보고자 한다. 먼저 감안해야 할 점은 1930년대에는 현재 경제학도들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도구가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민계정과 산업연관표, 국제수지 등 주요 경제지표들이 체계화되지 않았고, 컴퓨터도 없었기 때문에 계산은 주로 ‘종이와 연필’로 했을 터이다. 방대한 통계자료와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제학 연구와 정책 자문은 논리와 추론과 직관에 크게 의존했다. 그래서 단순하지만 그럼에도 훨씬 더 직관적인 통찰력을 제공한다(학문으로서 경제학은 이후 크게 발전했는데, 1930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거시경제학은 케인스가 그 문을 열었다. 케인스 이후 많은 경제적 논의의 검증이 이뤄지고, 또 새로운 그리고 더 복잡한 이론과 데이터가 등장했지만, 경제의 작동원리란 측면에서 보면 ‘종이와 연필’로 그려낸 직관적 통찰은 여전히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발한다).

케인스의 전망에서 자본주의 선진경제는 미국과 영국을 의미한다. 지난 100년간 미국과 영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규모 변화를 보자. 영국은 4.4배, 미국은 5.3배 증가했다. 첫 번째 전망은 잘 맞아떨어진다. 영국과 미국으로 한정하지 않고 지역을 확대해보면 성과는 더 눈부시다. 지난 100년간 세계 전체의 1인당 GDP는 6.8배, 서유럽 지역은 8배, 동아시아 지역은 14배, 한국은 26배 증가했다. 케인스가 살아서 한국이 이룩한 경제적 성과를 본다면 아마도 매우 놀라면서 개발도상국의 장기전망에서는 자신의 상한선을 크게 높일 것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케인스가 언급한 생활 수준을 1인당 GDP로 파악해봤다. 생활 수준의 4~8배 향상은 1인당 GDP가 연간 1.4%(하한선)와 2.1%(상한선) 사이에서 증가하는 것으로 환산할 수 있다. 이 에세이에서 케인스의 혜안에 감탄하는 부분은 특히 다음이다. 이 숫자를 제시하면서 케인스는 자본주의 경제성장의 근본 동인으로 자본축적과 기술발전을 강조하는데, 연간 증가율을 자본축적 2%, 기술발전 1%로 잡고 있다. 케인스가 제시한 자본축적 2%, 기술발전 1%는 선진국 경제를 전망하는 데 아주 유용한 지침 역할을 한다. 지난 100년 동안 서유럽 국가의 1인당 GDP는 8.1배 증가했다. 연평균 증가율은 2.1%로 케인스 전망의 상한선에 해당한다. 인구증가율을 감안하면 이 숫자는 대략 지난 한세기 선진국 경제의 발전성과를 요약해준다.

케인스 비전을 염두에 두고 우리 경제의 미래를 전망해보자. 케인스 전망에서 자본축적은 현대 경제학에서는 실물자본과 인적자본으로 구분된다. 자본축적 2%의 구성이 실물자본 중심이냐 인적자본 중심이냐에 따라, 경제성장의 내용이 달라진다. 현재 우리 경제는 케인스가 상정한 선진국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체로 자본축적 2%, 기술발전 1% 공식을 적용할 수 있는데 성장의 내용은 외환위기 전후로 대비된다. 국가 전체로 산업화를 추구한 1960년대 이후 1997년 외환위기까지 우리 경제는 세계 경제사에서도 빛날 정도로 케인스 전망의 상한선을 크게 벗어난 고도성장을 기록했다. 이 시기의 경제성장은 고도의 자본축적, 특히 실물자본축적이 주도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성장궤적을 보여준다. 자본-생산 계수가 일정한 균형성장 경로를 밟고 있다.

한국 경제, 3% 넘을 수 있을까

균형성장 경로에 있는 우리 경제의 장기전망에 케인스 공식을 적용해보자. 인적자본과 물적자본으로 구성된 자본축적 2%와 기술발전 1%를 합해 3%를 상한선으로 하는 것이다. 연평균 3% 성장은 100년 후에 경제규모가 현재보다 20배 커진다는 계산인데, 연간 3% 성장은 균형성장 경로에 있는 우리 경제가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다. 특히 인구증가율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을 감안하면 3% 성장은 우리 경제의 상한선으로 전망할 수 있다. 하한선은 지난 100년 서유럽 경제가 실현한 연평균 2.1%다. 이렇게 두면 대체로 우리 경제는 2~3% 구간에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는데, 3%면 잘한 것이고 2%면 못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문재인 정부 5년간 우리 경제는 연평균 2.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코로나19로 2년 이상 어려움을 겪은 상황을 감안하면 무난한 성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3% 상한선을 기록할 수 있을까.

※서중해 경제학자로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이다. 미국 UCLA에서 ‘기술변화의 계량분석’으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의 지식경제> 보고서를 영문과 스페인어로 출판했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위원을 역임했다.

<서중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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