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소리를 찾아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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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지르기 좋아하세요?

소리를 질러본 지 퍽 오래됐다고 생각했다. 가슴께를 누르는 듯한 답답함의 출처는 분명 그것이었다. 한동안 소리를 지르지 못하면 답답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1년이 좀 넘은 시점이었다. 클럽, PC방, 당구장 등이 기약 없는 영업 중단에 들어갔다. 그 안에는 노래방도 포함이었다. 유흥과 오락은 새로운 흐름을 맞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블루투스 마이크를 사들였다. 작은 미러볼을 사서 불을 끄고 집에서 노래를 불렀다. 인테리어에 심취하고 홈 카페에 취미를 들였다. 그것도 아니면 퍼즐을 사고 보드게임을 사서 집으로 모였다. 예전엔 흐리멍덩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산책을 하듯 노래방으로 향했다. 열창을 시작하면 내 목소리는 쉬이 스피커의 그것을 넘어섰다. 마이크를 안 들고 불러도 방안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런 나에게 집에서 블루투스 마이크라니 윗집과 아랫집과 옆집에 안 될 말이었다. 소리 지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을 빼앗기고 말았다.

Photo by Matt Botsford on Unsplash

Photo by Matt Botsford on Unsplash

지르는 것의 쾌락

나는 지르는 것의 쾌락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거나,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달리거나, 비를 흠뻑 맞으며 걷거나 눈이 빨개지도록 우는 것과 비슷했다. 어떤 것의 한계점까지 다녀오는 일이었다. 아무 문제 없이 지내다가도 이따금 그런 날들이 찾아왔다. 온몸으로 소리를 낸 기억은 잘 잊히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 목청은 자질이 다분했다. 언젠가 큰 성당에서 노래를 열창한 일이 있다. 그때만큼 목소리를 덜어내지 않고 쓴 적이 없다. 내 목소리가 그곳을 가득 메웠다. 커다란 천장과 넓은 바닥의 구석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소리가 벽을 튕겨 내 몸으로 돌아와 진동했다. 내가 그토록 커다란 공간을 채울 수 있다면 목소리로만 가능할 것이었다. 소리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소리 지르기 좋은 장소는 흔하지 않다. 가장 좋은 장소는 산이다. 등산을 시작한 것은 걸음마를 떼기도 전이다. 아빠의 목말을 타고 주말마다 뒷산을 올랐다. 정상에 오르면 함께 소리를 질렀다. 가장 높은 곳에 도달했다는 정복감으로 발끝이 찌릿했다. 세상이 아래로 펼쳐지고, 높이 불어오는 바람이 몸을 에워쌌다. 양 손바닥을 쫙 펴서 입 옆에 대고 배에 힘을 주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소리쳤다. 작은 몸이 활처럼 휘었다. 메아리가 되돌아왔다. 구멍이 뚫린 듯이 시원했다.

그렇게 유아기부터 트이기 시작한 소리는 하필이면 소년기에 검도를 배우며 더욱 굳어졌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동네 검도관에 여자애는 나 하나였다. 여자가 힘쓰는 일 근처에만 가도 필연적으로 ‘조폭 마누라’라는 별명을 갖게 되던 시절이었다. 그런 것들 따위는 개의치 않을 정도로 쾌활하고 호전적인 나였다. 운동보다는 도장 앞에 있는 붕어빵을 먹기 위한 게 가장 큰 동기였지만 말이다. 검도만큼 기합 소리가 중요한 운동은 없다. 검도는 다른 운동과 달리 수련의 의미를 가진 도(道)를 쓴다. 운동의 시작과 끝에 명상하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건 물론이고, 상대를 공격할 때는 정직하게 알려준다. 그냥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소리쳐준다. 머리를 때릴 때는 머리, 손목을 때릴 때는 손목이라고 외친다. 정해진 부위 외에는 타격하지 않는 게 예의다. 공격을 큰소리로 알려주다니, 이 얼마나 예의 바르고 친절한가. 소리 없이 상대의 급소를 찌르고 무너뜨리는 다른 운동과는 목적 자체가 달랐다.

특히 경기를 시작할 때의 기합 소리는 압권이다. 검도는 시합을 시작하면 약 5초에서 10초간 거리를 두고 소리만 지른다. 사람이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크고 기괴한, 맹수의 포효에 가까운 소리가 도장을 쩌렁쩌렁 울린다. 시합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장소에 가보면 ‘동물의 왕국’에 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살벌한 소리로 상대를 먼저 제압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제로 상대에게 해를 가하지도 않는 기합을 왜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여겼나 싶다. 자세도 소리에서부터 출발한다. 웅얼거리며 부정확한 소리를 내는 사람은 자세도 웅크리고 있었다. 올곧고 힘찬 기합을 가진 사람은 자세도 가지런했다. 소리가 좋다고 무조건 자세가 따라오는 건 아니었다. 그 예가 바로 나였다. 도장을 통틀어 기합 소리만 가장 큰 소녀였다. 그렇게 하루 한시간씩 수년간 소리로 기세를 닦은 소녀는 청년기가 되고 급기야 지하 노래방을 전전하게 된다. 소리를 풀어놓을 공간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리는커녕 누군가와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코와 입을 가리고 다니는 일상에 익숙해져야 했다. 목에 먼지가 쌓여갔다. 어느새 정기적으로 소리를 지르지 못하면 못 견디는 이상한 성인이 돼버린 듯했다.

그렇게 찾아낸 요동벌판

사람들은 모름지기 살면서 큰소리 낼 일은 없을수록 좋지 않겠냐고들 했다. 조용조용 넘겼다. 마땅히 화내야 하고, 소리쳐 말해야 할 일도 쉬쉬했다. 가장 위험하고 억울한 순간에조차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시끄러운 사람들은 점점 더 시끄러워지고, 조용한 사람들은 점점 더 조용해졌다. 소리를 지르는 일도 연습이 필요하다. 마음껏 소리 지를 수 있는 경험과 공간이 있어야 한다. 얼큰한 국물을 들이켜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도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아무 옥상이나 올라가 마구 소리를 지를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적절한 용도와 장소를 찾고 싶었다. 몸과 마음을 씻어내듯 내지르고 싶었다. 한바탕 통곡하듯 쏟아낼 벌판이 필요했다.

그렇게 시작한 판소리다. 마음이 하늘이라면 판소리는 언젠가부터 구름처럼 떠다니던 소망이었다. ‘선생님을 찾으려면 산속 깊은 곳을 수소문해야 하지 않을까’, ‘한곡을 배우기 위해 몇달 동안 속세와 연을 끊어야 하는 게 아닐까’, ‘목이 잔뜩 쉬어서 쇳소리만 나지는 않을까’ 등 우습고 자잘한 걱정이 앞섰다. 아무런 기대 없이 등록해본 과외 앱에서 하루 만에 선생님을 찾아주었다. 딱 한명뿐이었기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잠시였다. 온몸이 근질거렸기 때문이다.

찌는 듯한 여름, 생애 첫 판소리 선생님을 만났다. 동글고 반질반질한 이마를 가진 그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 단단했다. 마주앉은 연습실은 방음벽에 둘러싸여 있었고 코인 노래방보다 조금 컸다.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선생님이 말했다. “지금부터 구음을 해볼 거예요. 소리가 나오는 대로 내어 보는 거예요. 몸을 통이라고 생각하고요.” 그가 먼저 본을 보였다. 악기의 소리 같고 동물의 소리 같은, 우는 소리 같고 웃는 소리 같은 것들이 나기 시작했다. 커졌다 작아지고 올라갔다 내려갔으며 굵어지며 얇아졌고 납작해졌다가 피어났다. 구수하고 고소하고 멋진 진동이 울렸다. 그는 감았던 눈을 떠 내 얼굴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 얼굴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울고 있나요?” 웃으며 눈물을 닦았다. 이번엔 내가 소리를 낼 차례였다. 눈빛이 더없이 또렷했다. 마음이 깨끗하게 개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양다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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