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살인-진행형의 비극과 안타까운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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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도에서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만약 이 한편의 영화가 우리에게 희미해지고 있는 가습기 사건의 비극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 공기살인

제작연도 2022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08분

장르 드라마

감독 조용선

출연 김상경, 이선빈, 윤경호, 서영희

개봉 2022년 4월 22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TCO㈜더콘텐츠온

TCO㈜더콘텐츠온

최근 신작을 발표한 마이클 베이 감독의 발언이 주목받았다. “얼마 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벌어진 윌 스미스의 폭행사건에 대한 의견을 많이 묻는데, 지금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것은 갓난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다.”

백 번 당연하게 들리는 이 한마디로 인해 이전까지 얄팍한 오락영화 감독 정도로 폄훼돼오던 그의 이미지는 단번에 정의롭고 의식 있는 지식인으로 뒤집혔다.

현대인들은 나날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뉴스와 미디어의 범람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것 같다. 각자의 개성이 존중되고 가치의 추구 역시 개별화됐지만,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사건에 집단적으로 촉각을 곤두세웠다가 금세 잊고 만다. 이런 혼란의 가중 속에서는 평범한 성찰의 목소리조차 빛을 발산한다.

한편 종종 소재만으로도 맞닥뜨리기 버거운 작품들이 있다. 현대사에 비극으로 기억되는 사건을 다룬 작품들도 이에 속하는데 발생 시기가 현재와 가까울수록 부담은 커진다. 하물며 이를 영화화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강심장인가? 시작의 본심이 어찌 됐건 과정과 결과가 무엇이건 일단 파렴치한 상업주의를 의심하는 경계의 눈초리를 감내해야만 한다. 5·18광주민주화운동, 세월호 침몰 사고가 대표적인 경우다. 쉽게 아물지 않는 생채기인 만큼 꺼내들기 힘든 소재들이다. 2011년 드러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역시 버금가는 하나다.

비극 실화의 무게와 상업영화의 오락성

외상센터 과장인 정태훈(김상경 분)은 어린 아들이 급성 간질성 폐질환으로 쓰러지고 얼마 되지 않아 아내까지 급사하자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몇년 전부터 유사한 병세를 앓고 있는 다수의 환자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이들 모두가 가습기와 살균제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대기업 팀장 서우식(윤경호 분)의 방해에도 태훈은 검사 출신의 변호사인 처제 한영주(이선빈 분)와 함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지난한 싸움을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작품 속에는 비극적 실화의 무게와 상업영화의 오락성이라는 모순을 함께 담아내려 고심한 흔적이 고스란히 발견된다. 다행히 가장 우려했던 사건의 왜곡이나 희화까지는 없어 보이지만, 부조리의 고발이라기엔 무기력하고 영화적 미덕을 자아내기엔 느슨하다.

이 영화는 2016년 출판된 소재원의 소설 <균: 가습기 살균제와 말해지지 않는 것>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소설 역시 영화와 마찬가지로 발행과 동시에 응원과 아쉬움의 평가가 공존했다. 작가 스스로는 집필 단계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뒀다는데 영화산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기업이 가해자인 만큼 성사가 쉽지 않았다고.

영화화가 결정된 뒤에도 개봉까지 6년이라는 제작 기간이 소요됐고, 그동안 시나리오는 97고가 나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소송과 재판과정, 피해자들의 처지를 새로이 반영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해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기업대표 등 13명에게 1심 무죄가 선고돼 아직까지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또 얼마 전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에 의해 11년 만에 제시된 조정안은 분담금 비중이 가장 높은 2개 기업이 거부하면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세상을 바꿀 이유가 없는 강자들

공교롭게도 영화 시사회가 열린 날 저녁, 한 라디오 시사프로에 르포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은유씨의 인터뷰가 방송됐다.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자,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산업재해 노동자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이웃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담아낸 10여권의 책을 집필한 작가는 절망적이게도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단언한다. 더불어 나와 이웃들이 직면한 문제 상당수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아 해결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진실이 왜곡되고 정의의 의미가 변질된 혼탁한 시기이기에 완성도에서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만약 이 한편의 영화가 우리에게 희미해지고 있는 또 하나의 비극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약자를 대변하는 소설가, 소재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소재원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고 정식교육과정은 거치지 않았지만, 끈기와 노력으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진실과 정의가 승리하는 순간을 단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다”는 염세적 발언은 그의 세계관과 작품 속에 논쟁적 사회문제를 과감히 수용하는 용기가 어디서 발현되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로 인해 ‘약자를 대변하는 소설가’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는 그냥 스스로와 친구, 이웃들의 이야기를 쓸 뿐이라고 한다. 다만 한국은 상위 10% 빼고는 다 약자이기 때문에 주변의 이야기는 결국 약자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고. 과거 위안부 피해자 명칭 변경이나 동성애 차별 금지법 반대 등과 관련한 논란은 이런 평가에 한계로 거론되기도 한다.

2008년 발표한 데뷔작 <나는 텐프로였다>는 무명시절 힘겨웠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로, 당시 신인감독이었던 윤종빈의 눈에 띄어 <비스티 보이즈>란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이후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간 그는 영화 <소원>의 원작소설 <소원: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영화 <터널>의 원작 <터널: 우리는 얼굴 없는 살인자였다> 등 사회비판적 소설을 꾸준히 발표했다.

영화 <공기살인> 역시 2016년 집필한 소설 <균: 가습기 살균제와 말해지지 않는 것>이 원작이다. 애초엔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소극적 시각이었지만 아이가 태어나 가습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남의 일이 아님을 절감하게 된 게 집필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작가는 유튜브에 ‘소뜰TV’ 채널도 운영 중이다. 11편의 짧은 동영상이 전부이고 2년 전에 업로드가 멈췄다. 하지만 개인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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