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우스-비상과 추락의 기로에 선 안티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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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우스>는 안티히어로 영역 안에 있다고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내면적으로는 최근 선보였던 유사작품들과 비교해 뚜렷한 목적과 단순한 갈등구조만을 보인다는 면에서 되레 과거로 회귀했다고 평가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제목 모비우스(Morbius)

제작연도 2021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04분

장르 액션, SF

감독 다니엘 에스피노사

출연 자레드 레토, 맷 스미스, 아드리아 아르조나, 자레드 해리스

개봉 2022년 3월 30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소니 픽처스

소니 픽처스

안티히어로(Antihero·반영웅)란 말과 다크 히어로(Dark Hero·흑영웅)란 말은 혼란스럽게 사용되기도 한다. 둘 다 인물의 가치관이나 행동방식이 절대적 선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영웅의 모습과 다르다는 점에서는 뚜렷이 구분되지만,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거나, 애초 욕망 자체가 이기적인 사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는 혼란스럽다.

단순한 구조로만 반복돼오던 히어로물의 이야기가 언제부턴가 복잡하게 진화하고 인물들의 내면 역시 다층적 심리와 복합적 갈등으로 팽창되면서 이러한 양태는 더욱 빈번히 발견되고 있다. 두 단어를 엄밀히 구분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액면 그대로 반(反)과 흑(黑)이라는 두 단어가 지닌 뜻만 좇으면 된다. ‘영웅으로 보기엔 혼란한 인물’과 ‘혼란한 인물로 보이는 영웅’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후자는 의심의 여지 없이 전통적인 영웅의 궤에 속한다.

<모비우스>는 안티히어로 영역 안에 있다고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내면적으로는 최근 선보였던 유사작품들과 비교해 뚜렷한 목적과 단순한 갈등구조만을 보인다는 면에서 되레 과거로 회귀했다고 평가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심지어 영화가 끝나고 추가된 쿠키 영상을 통해 인물들의 처지를 딱하고 어렵게 만들기까지 한다.

범상한 감독의 비범한 캐릭터 영화

희귀 혈액병을 앓고 있는 천재 생화학자 마이클 모비우스(자레드 레토 분) 박사는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친구 마일로(맷 스미스 분)를 위해 신약 개발에 몰두한다. 오랜 연구 끝에 흡혈박쥐의 혈액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 그는 동료이자 연인 마르틴(아드리아 아르조나 분)과 함께 자신의 몸에 임상실험을 감행한다. 다행히 병은 치유되지만 뜻밖의 부작용으로 그는 수시로 흉측한 외모로 돌변해 걷잡을 수 없는 폭력성을 분출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주기적으로 인간의 피를 마시지 못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모비우스 박사가 처음 세상에 소개된 것은 1971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만화책에서였다. 스파이더맨에 등장하는 악당들의 공통적 특징인 자신의 단점을 과학의 힘으로 극복하려다가 결국 선을 넘어버려 악인이 되고 마는 전통적 형태를 그대로 따르는 인물이다.

스웨덴 출신의 다니엘 에스피노사 감독은 “대부분의 위대한 히어로는 안티히어로다. 양쪽 편에 발을 하나씩 디디고 있는 인물들은 흥미롭다”며 연출의 변을 밝혔다. 재미있는 점은 <이지 머니>, <세이프 하우스>, <차일드 44>, <라이프> 같은 그의 이전 작품들 역시 딱히 걸작이나 졸작이라 규정할 수 없는 미묘한 지점의 작품들로 일관한다는 사실이다.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이야기에 집중시키는 재능이 탁월한 감독임은 분명하다.

불안한 명품배우의 새로운 가능성

영화 <모비우스>의 영화화 소식이 전해지며 가장 큰 기대를 모은 요소는 주연을 맡은 배우 자레드 레토였다. 배우와 동시에 유명밴드인 ‘30 세컨즈 투 마스(Thirty Seconds to Mars)’의 보컬이기도 한 그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연기파로 구분되지만, 역할에 대한 과잉몰입과 촬영장 주변에서의 기행으로 구설수 또한 끊이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는 파올로 구찌 역을 맡아 바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특수 분장으로 ‘눈에 띄는’(!) 연기를 해내 최악의 영화에 수여되는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의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모비우스>에서 그의 모습은 비교적 평범하고 연기도 안정적이어서 팬들에게는 반가운 선물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상영시간의 상당 부분이 특수 분장과 CG로 채워진 작품임을 고려할 때 배우의 연기가 온전히 차지할 수 있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결국 이 작품은 관객들이 주인공 모비우스란 인물의 고뇌를 깊이 공감하거나 이를 통해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데는 한계를 보인다. 그나마 가장 큰 의미를 찾는다면 적어도 다음에 만들어질 후속작 또는 관련 영화에 활용할 수 있는 캐릭터 한명 이상을 미리 준비했다는 제작사 입장에서의 자기 위안 정도일 것 같다.

다종교배로 탄생한 혼란스러운 안티히어로


소니 픽처스

소니 픽처스


할리우드를 장악한 마블 코믹스의 대세에 편승해 그중에서도 알짜배기라 할 수 있는 <스파이더맨>의 영화화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 소니 픽처스로서는 이와 관련해 최대한 많은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체 제작한 영화의 성공과 몰락, 한계를 경험한 후 결국 <스파이더맨>의 본가라 할 수 있는 마블과의 협업을 통해 간신히 심폐소생은 성공했지만, 어떻게든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를 병행해야만 했다. 그렇게 악당들에게 눈을 돌린 소니는 <베놈>의 영화화를 통해 어느 정도 가능성을 확인했고, 내친김에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SSU: Sony’s Spider-Man Universe)’라는 원대한 계획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야심차게 제작한 <모비우스>는 안타깝게도 급조한 흔적이 역력하다. 애초 흡혈귀라는 캐릭터가 지닌 한계적 정체성으로 인해 통념적 형태를 벗어나기 힘들었겠지만, 이미 무수히 넘쳐나는 유사변종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흡혈박쥐가 중요한 소재이긴 하지만 빈번하게 등장하는 박쥐 떼의 모습은 족보가 다르고 연관도 없는 <배트맨>을 무시로 떠올리게 하고, 재미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액션과 비행장면 역시 기존의 <스파이더맨>을 의식한 듯 보인다.

제작현장과 관련해 이런저런 소문이 떠돌며 작품에 대해 걱정하는 시선이 없지 않았는데 완성 후에도 코로나19로 개봉이 미뤄지는 등 김샌 분위기가 더해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소니는 이미 내년 공개를 목표로 한 <베놈 3>를 비롯해 SSU에 속한 다수의 작품제작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 작품의 성패로 추진의 향방이 가늠될 것으로 보인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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