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푸틴의 전쟁, 그리고 글로벌 안보환경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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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붉은군대가 ‘선’을 넘은 지 40여일이 지났다. 지난 2월 24일 모스크바 시각으로 오전 5시 50분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직후 러시아군이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서부 지역을 제외하고 전 축선에 걸쳐 비선형 동시통합작전을 감행했다. 개전 2일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수도 키이우의 함락을 우려하며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했다. 러시아는 침공 3일 만에 우크라이나와 휴전 협상을 협의하는 등 전쟁은 러시아군의 의도대로 종결될 가능성이 우세해보였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동쪽으로 약 400㎞ 떨어진 트로스얀네츠에 3월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이 국기를 꽂은 장갑차를 타고 진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틀 전 트로스얀네츠를 장악했던 러시아군을 몰아냈다. /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동쪽으로 약 400㎞ 떨어진 트로스얀네츠에 3월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이 국기를 꽂은 장갑차를 타고 진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틀 전 트로스얀네츠를 장악했던 러시아군을 몰아냈다. / AP연합뉴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이 결사항전의 의지로 러시아군에 맞서면서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국제사회가 강력하고 속도감 있는 제재를 시행해 러시아의 경제를 봉쇄하고 있으며, 대전차 미사일과 탄약 등 전략물자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모스크바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확산되는 반전여론이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 의지를 북돋우고 있다. 러시아군의 전투력 약화와 사기 저하가 의심되는 가운데 군수지원까지 난항을 겪으며 푸틴 대통령이 구상했던 단기 속도전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여전히 봉쇄하고 있으며, 전 전선에 걸쳐 100㎞에서 250㎞ 이상 종심(전방에서 후방까지의 거리)을 점령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쟁의 결과는 참혹하다. 지난 3월 29일 기준 우크라이나의 영유아 사망자 104명을 포함해 약 1200명에 이르는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체 인구의 약 10%에 해당하는 400만명은 고국을 등져야 했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우크라이나의 난민은 1000만 명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 국방부는 러시아군의 인명피해를 약 7000명 수준으로 추산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3월 25일 전황 브리핑을 통해 자국의 인명 손실은 1351명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의 단기 속도전 실패

푸틴 대통령은 왜 무모한 전쟁을 결심했을까? 푸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밝힌 특별군사작전의 이유는 나토의 위협에 대한 대응, 우크라이나의 민스크 협정 위반 그리고 자국민 보호로 요약된다. 쇼이구 국방장관은 푸틴 대통령의 전쟁지침을 기초로 서방의 위협으로부터 러시아의 안전보장, 돈바스 지역의 자국민 보호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및 탈나치화를 전쟁과업으로 설정했다. 러시아 정치 엘리트들의 인식 속에 나토와 서방은 적대세력이다. 푸틴 시기 4번에 걸쳐 발표한 <러시아연방 국가안보전략>에서 나토는 가장 심각한 현존위협으로 규정돼왔다. 특히 크름(크림) 병합 이후 러시아는 나토의 동진, 유로마이단과 색깔혁명에 대해 적대감을 강화해왔다. 유로마이단은 2013년 11월 유럽연합과의 통합을 지지하는 대중의 요구로 시작된 대규모 시민혁명으로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을 몰아냈다. 나토의 동진과 유로마이단이 숙명처럼 결합하면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안전보장을 위협하는 화약고가 됐다. 이런 배경에서 푸틴은 나토의 롤백(Roll Back·퇴각)을 강요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을 결심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우위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총참모부의 세르게이 루드스코이 작전총국장(우리 합참의 작전본부장에 해당)은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점령 지역을 확대해가는 등 모든 임무가 작전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극초음속 미사일로 우크라이나의 핵심표적을 공격하고, 핵공격 가능성까지 언급한 점 등을 고려하면 ‘플랜B’가 시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크렘린궁 제공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크렘린궁 제공

러시아 전쟁지도부는 정보판단에서 가장 큰 군사적 과오를 저질렀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수행 능력에 대한 오판으로 러시아군은 충분한 지상전력을 투입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군은 크름 병합 이후 러시아군의 침공에 대비해 특화된 전략·전술을 발전시켜 왔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으로부터 획득한 재블린(Javelin), 차세대 대전차 미사일(NLAW·Next generation Light Anti-tank Weapon), 공격형 무인기(UCAV·Unmanned Combat Aerial Vehicle)를 활용해 러시아군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러시아 항공우주군은 우크라이나 공군에 비해 7배 이상의 압도적인 공중전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공중우세 달성에 실패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지상 공격에 따른 피해 발생 가능성 및 오인 폭격 등의 우려로 공중작전에 소극적이다. 이로 인해 러시아 지상군에 대한 근접항공지원이 위축되면서 러시아군의 공격 기세가 약화되고 있다.

또한 대대전술단(BTG·Battalion Tactical Group)에 대한 유류 및 탄약, 식량 등 군수지원이 적시에 이뤄지지 않아 종심에 진출한 러시아 지상군은 고립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군은 지난해 3월부터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포진하면서 전쟁을 준비해왔다.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러시아군의 주력부대는 1년 이상 야외에 머물며 전투피로증이 누적된 상태다. 이는 러시아군의 공격력 발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러시아군은 개전 초기의 군사적 과오를 만회하기 위해 ‘작전적 정지’를 통해 공격부대를 재편성하는 등 전열을 정비하는 중이다. 러시아군은 지상군 위주의 근접작전 대신에 포병사격과 공중폭격 그리고 극초음속 무기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소모전’을 강요하고 있다.

러시아군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

러시아 크렘린궁이 핵옵션 사용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러시아 전략미사일군의 핵무기 사용 우려가 커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개전 4일 만에 핵무기 운용부대의 대비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핵무기 운용부대가 대비태세를 강화한다는 것은 핵무기 운용 시스템을 ‘실제 모드’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메드베데프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과 크렘린의 페스코프 대변인까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타이거팀(Tiger Team)’을 구성해 나토 동맹국들과 함께 러시아의 핵무기 공격 가능성에 대한 대응방안 모색에 돌입했다.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의 한 학교 지하실에서 3월 27일(현지시간)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폭격을 피해 한 달 넘게 대피 생활을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의 한 학교 지하실에서 3월 27일(현지시간)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폭격을 피해 한 달 넘게 대피 생활을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에 있어서 △적대세력의 탄도미사일 공격 징후 △러시아 및 동맹국에 대한 핵무기 및 대량살상무기 사용 징후 △러시아의 국가 및 군사주요시설이 파괴되는 경우 △국가 존립 위기상황 등 ‘네가지 결심조건’을 적용한다. 이러한 조건을 현재 상황에 적용해보면, 가장 현실적인 조건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경우다. 여기에 네 번째 조건인 ‘국가 존립 위기상황’을 폭넓게 해석할 경우, 우크라이나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무관하게 러시아군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상황은 러시아 전쟁지도부가 핵무기 사용을 결심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러시아의 핵옵션은 가장 위험한 방책이면서도 가장 가능성 있는 방책으로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푸틴은 무엇을 원하는가

푸틴 대통령은 전쟁을 결심하기에 앞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 격론을 벌였다. 이것은 형식적인 요건이자 기만전술일 뿐이었다. 푸틴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넘어 무엇을 원하는가?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서 나토의 흔적을 지우고 러시아식 체제를 이식하려는 푸틴 대통령의 열망을 구현하려 할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유럽은 물론 세계적 수준에서 새로운 안보지형을 구축하려고 한다. 푸틴은 서방이 나토 확장 금지를 구두로 확약한 사실에 기초해 나토의 진출선을 조정하려고 들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동안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양분됐던 국제질서의 현상 변경을 의미한다. 미·중·러 ‘주요 3개국(G3) 체제’의 서막을 전망하는 이유다. 향후 러시아는 물론 지역 분쟁과 연루된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교훈 삼아 주변국의 위협에 대해 군사적 수단을 선호하게 될지도 모른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전쟁이다. 실용주의자 푸틴은 단기 속도전 실패에 따른 상처 난 자존심을 회복하고 막대한 전쟁비용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우크라이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3월 29일 터키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다섯 번째 휴전 협상이 열렸다. 양측은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러시아가 휴전 협상을 기만전술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심과 휴전 체제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비관론 때문이다.

러시아는 매년 5월 9일, 대조국 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러시아식 표현)의 승리를 대대적으로 기념한다. 러시아 전쟁지도부는 이번 특별군사작전의 성과를 전승기념일과 연계할 가능성이 있다. 푸틴 대통령은 단기 속도전 실패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서 전승기념 행사를 개최하지 못한다면 돈바스 지역에서 특별군사작전의 성과를 과시하고자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4월 중순 이전에 휴전 협상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달성하거나 전쟁을 종결해야 한다. 러시아군이 1단계 작전 이후 돈바스 지역으로 전투력을 집중하는 이유다. 만약 돈바스에 대한 공세마저 여의치 않을 경우, 푸틴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 핵무기를 사용해 전쟁을 종결짓고자 할 것이다. 푸틴의 특별군사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가 쌓아 올린 평화 담론에 대한 엄중한 도전이자 공격적 현실주의를 경험적으로 입증한 나쁜 선례다. 지금은 국제사회가 모든 집단지성과 수단을 동원해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과 남용을 막아야 하는 결정적 국면이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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