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존재의 증명에서 한걸음 더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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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 윤석열 대선후보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글자를 남기면서 이재명 대선후보에게 빼앗겼던 (18~19세 포함) 20대 남성의 지지율 우위를 회복했다. 이후 45~50% 수준을 유지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윤석열 후보가 6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보이기는 했지만 한 번도 60%를 넘은 적은 없었다. 이재명 후보는 20% 초·중반 수준의 지지율을 계속 유지하다가 여론조사 공표가 가능했던 마지막 조사에서 30%를 넘었다.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이 지난 3월 11일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당선인이 성평등 추진체계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이 지난 3월 11일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당선인이 성평등 추진체계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20대 여성, 투표 통해 주권자 증명 같은 시기에 20대 여성들은 이재명과 윤석열 후보 누구에게도 확실한 지지를 보이지 않았다. 오마이뉴스·리얼미터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1년 12월부터 2022년 1월 말까지 두 후보 지지는 20% 후반 수준에서 비슷하게 유지됐다.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 건 2월 첫 주부터였다. 이때부터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 기간(선거일 전 6일부터 선거일까지) 직전에 실시한 설문조사까지 이재명 후보는 30% 중후반대의 지지율을, 윤석열 후보는 20% 중반대의 지지율을 보였다.

선거 당일 방송 3사(MBC·KBS·SBS)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 58.7%, 20대 여성 33.8%가 윤석열 후보를, 20대 남성 36.3%와 20대 여성 58.0%가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남성의 투표 결과는 예상하던 바였기에 놀랍지 않았지만 20대 여성의 투표 결과는 여론조사 흐름과 확연히 다른 결과였고, 많은 사람에게 20대 여성이 ‘있음’을 각인시켰다. 대선 운동 기간 정치권에 의해 단순히 무시당한 것만이 아니라 모욕과 혐오까지 받으면서 아예 지워졌던 20대 여성들이 투표를 통해 스스로 주권자임을 당당히 드러냈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짜릿하고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20대 여성 중 심상정·안철수 후보를 지지했거나 부동층이나 지지하는 후보 없음 등의 의사를 표현했던 여성 중 상당수가 막판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택한 데에는 여러 요인과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을 일일이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며, 그러한 선택 모두 합리적이고 소중한 한표 행사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걱정되는 지점이 있다. 이재명 후보 지지의 기저에 반(反)윤석열, 더 나아가 반(反)이준석 정서가 강력하게 작동했던 건 아닐까 싶어서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됐을 때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폭력 무고죄 처벌 강화 등과 같은 반(反)성평등 정책이 실현되는 것뿐 아니라 여성혐오와 반페미니즘을 동력 삼아 폭주하는 이준석 당대표의 권력이 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20대 여성들에게 존재했을 것 같다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이것이 이번 대선에서 가장 쓰라리고 씁쓸한 대목이다.

양당체계가 시민의 선택지 좁혀 20대 여성들이 반(反)국민의힘 때문에 이재명 후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건 결국 정치구조의 문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두 정당 중 한 정당의 후보로 나와야만 당선 가능한 지금의 양당체계가 20대 여성들의 선택지를 좁혔다. 사실 대한민국 시민 모두의 선택지를 계속 좁히고 있다. 양당의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이 보이는 극단적인 행태는 양당체계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파괴할 수도 있다는 신호를 곳곳에서 보내고 있다. 프랑스 정치학자 뒤베르제는 양당체계는 안정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반면, 다당제는 정당 간의 이념적 대결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정부 구성에서도 연립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주장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두 정당은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다른 듯이 싸우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언제나 뜻을 같이했고, 이를 통해 두 정당의 이익을 극대화해왔다. 무엇보다 대표의 다양성을 확대하기 위한 2019~2020년 선거제도 개혁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과거 야당이었을 때 주장했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개악했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위성정당을 만들어 21대 총선을 치렀고, 결국 180석이라는 거대의석을 획득했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시기에 더불어민주당은 언제나 국민의힘을 탓하며 기득권 유지를 선택했다.

더불어민주당을 견제할 수 있는 정당이 국민의힘이 아니라는 점도 명확하다. 지금 국민의힘은 과거 보수정당이 보여주던 최소한의 ‘품격’도 갖고 있지 않다. 선거기간 내내 반문재인과 정권교체만 외쳤다는 점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 이상의 지향점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딱히 보수라고 규정할 수 있는 정체성을 찾기 어렵다.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 중 다수가 ‘반문재인’이었다는 점에서 윤석열을 지지한 시민도 윤석열 (행)정부에 미래지향적 기대를 갖고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이번 대선은 양당체계의 견고함을 확신시켜주는 동시에 양당체계의 변화 필요성을 확인시켜줬다.

20대 페미니스트들, ‘다시’ 판을 짤 시간 그렇다면 누가 변화를 만들 것인가. 근본적 변화는 주권자인 시민에 의해 가능하다. 20대에 의한 변화도 가능하다. 이번 대선에서 20대 여성과 남성들의 후보 선택이 상반됐다는 평가가 많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완전히 상반된다고 하기는 어렵다. 20대 남성의 윤석열 지지가 60%를 넘지 않았고, 20대 여성도 이재명 지지가 60%를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어느 후보도 여성과 남성 각각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이는 20대 여성과 남성 간에 연대와 협력의 공간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20대 여성이든 남성이든 거대양당 지지가 유동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20대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기성정치와 다른 정치판을 만들 수 있는 힘을 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핵심은 20대가 갖고 있는 정치적 역량이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배제의 정치가 아닌 모든 개개인이 그 자체로 존중받고 상호의존과 돌봄, 협력과 연대에 기초하는 정치로 향하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20대들이 대화와 소통을 통해 합의를 만들어가는 심의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누가 더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가를 경쟁하는 데서 벗어나 나와 타인,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고통을 어떻게 경감시킬지 해결방안을 찾고 실천하는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 이러한 판을 짤 수 있는 역량과 자질이 20대 페미니스트들에겐 충분히 있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으나 절묘한 20대 대선 결과는 20대 페미니스트들에게 ‘다시’ 판을 짤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이 남긴 기대이자 희망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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