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고픈 전직 대통령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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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대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재임 1977~1981). 정권교체 후 재선에 실패한 몇 안 되는 단임이자 우리에겐 ‘인권 외교’로 유신정권과 유독 갈등이 많던 미국 대통령, 1994년 북핵 위기 당시 대북 특사로 주로 기억된다. 좀더 관심이 있다면 퇴임 후 전 세계 집 없는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 등 기여로 2002년 노벨평화상 수상 사실을 떠올릴 테다. 퇴임 후 활동과 업적이 임기 때보다 더 낫다는 묘한 칭찬을 듣곤 한다.

<지미 카터: 로큰롤 대통령> 포스터 / D-box

<지미 카터: 로큰롤 대통령> 포스터 / D-box

2022년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선행공개로 D-box 스트리밍 중인 <지미 카터: 로큰롤 대통령>은 그의 당선과정과 재임기간에 관한 전기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지미 카터라는 지도자의 탄생 과정과 정치적 행보에서 당대 문화적 경향, 특히 ‘음악’의 영향력에 주목한다. 수많은 뮤지션이 카터와의 일화를 소개한다. 그 증언 속에서 카터는 시대정신을 구현하려던 영웅에 가깝다. 워터게이트 사건과 월남전 패배 후 미국은 사회분열이 심각했다. 무명이던 카터의 도약은 변화를 꿈꾸던 열망의 형상화라고 영화 속 문화계 거인들은 말한다. 그들은 그저 대통령과의 친분 과시가 아닌, 자신들이 음악을 통해 꿈꾸던 세상의 비전을 카터에게서 발견하고 지지했다.

카터와 지지자들이 꿈꾼 변화는 미완에 그쳤다. 카터는 미국 내 인종차별 해소나 중동 평화 정착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란대사관 인질 사건에도 인내를 갖고 대처해 전쟁을 막았다. 당시 미국인들은 불황과 전쟁 패배로 의기소침한 상태였다. 그들은 대통령이 펼치는 도덕주의와 미적지근해 보이는 해결방식에 등을 돌렸다. 카터가 소신 있게 추진한 정책의 수혜는 그를 누르고 당선된 레이건 대통령이 얻었으니 꽤 억울할 법하다.

영화는 카터의 영광과 좌절을 1970년대 후반 사회변화의 물결과 통합해 소개한다. 미국사회 역학구도와 대중문화를 풍성하게 소개하기 때문에 적잖게 공부가 된다. 밥 딜런, U2의 보노는 물론, 우리에겐 생소해도 미국 내 레전드인 올맨 브라더스나 윌리 넬슨 같은 거물들이 잔뜩 등장해 눈을 놀라게 한다. 음악적으론 서던 록, 포크, 재즈, 컨추리 등 ‘미국적’ 음악의 향연을 펼치며 귀를 즐겁게 해준다. 시청각 체험이 정치비사와 교차하며 미국의 현대사를 곱씹게 한다.

게스트 중 유독 눈에 띄는 이가 둘 있다. 취임 파티에 축사로 나온 존 웨인이 첫 번째다. 당대의 이미지만큼 강경 공화당 지지자였던 그의 등장에 좌중이 술렁인다. 존 웨인은 신임 대통령이 미국에 산적한 사회갈등을 해소해 주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하고는 멋있게 퇴장한다. 두 번째는 있는 듯 없는 듯 계속 등장하는 가스 브룩스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미국 내 솔로가수로는 역대 음반판매 1위인 ‘국민가수’다. 그는 말미에 카터와의 해비타트 운동 당시 일화를 소개하는데 카터란 인물의 진면목을 집약하는 것처럼 들린다.

카터와 브룩스, 둘 사이엔 묘한 공통점이 있다. 결코 한 시대의 상징은 되지 못했지만 지나고 보면 그 업적이 만만찮다. 퇴임 후 지금도 여전히 봉사활동과 평화의 메신저로 정정하게 활동하는 카터의 행보를 돌아보면 경이로울 따름이다. 한국에서 그런 전직 대통령을 보고 싶다는 희망은 그저 먼 꿈에 불과한 것일까.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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