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알아요’가 변화시킨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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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4월 가요계에 일대 변혁이 일었다. 아니, 대중음악 시장을 넘어 한국사회 풍경이 하루아침에 확 달라졌다.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주인공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곡 ‘난 알아요’였다. MBC 예능 <특종! TV 연예>를 통해 노래를 공개한 이후 청소년들의 화제와 미디어의 시선은 일제히 서태지와 아이들로 쏠렸다. 번화가에는 ‘난 알아요’가 끊임없이 울렸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옷차림을 따라 한 10대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난 알아요’는 1992년 대중문화의 알파와 오메가였다.

1992년 ‘난 알아요’를 발표하며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2년 ‘난 알아요’를 발표하며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공식적인 데뷔는 3월이었다. 1집도 3월에 발매했다.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첫 방송 전파를 탔지만 <특종! TV 연예>가 신인 소개 코너에서 비중 있게 다루면서 많은 이들의 눈에 들 수 있었다.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았어도 ‘난 알아요’는 언젠가는 빛을 볼 노래였다. 그 시절에 나온 댄스음악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엄숙한 분위기의 도입부부터 특별했으며, 신시사이저 루프는 씩씩함과 명쾌함을 겸비해 잘 들렸다. 래핑을 마치고 나오는 헤비메탈 스타일의 간주로 노래는 또 한 번 독특함과 박력을 나타냈다. 싱잉 파트의 멜로디와 가사가 서정적이라서 ‘난 알아요’는 발라드에 익숙한 대중에게도 편하게 다가갈 만했다. 신선하면서 세련됐고, 친밀감도 띠고 있었다.

말쑥한 래핑도 ‘난 알아요’를 돋보이게 했다. 1990년을 전후해 박남정의 ‘멀리 보이네’, 나미와 붐붐의 ‘인디안 인형처럼’, 현진영의 ‘슬픈 마네킹’같이 한국어 래핑을 담은 노래들이 속속 나왔다. 대체로 래핑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가 플로도 단순하고 조악했다. 홍서범의 ‘김삿갓’이 랩에 중점을 뒀으나 래핑이 촌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난 알아요’는 적당한 속도와 유연한 리듬감으로 래핑의 새로운 체계를 선보였다.

춤과 패션도 ‘난 알아요’의 대유행을 도왔다. 일명 ‘회오리 춤’이라고 불린 간주에서의 안무와 각 래핑 뒤에 이주노와 양현석이 솔로로 추는 스트리트 댄스는 노래를 더욱 강렬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태그를 떼지 않은 화려한 색감의 패션은 격식과 관습에 스트레스를 받던 청소년들에게 해방감을 안기는 요소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가 크게 성공함에 따라 대중음악계는 랩이라는 첨단의 문법을 대대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댄스음악이 주류이자 대세로 자리 잡는다. 팝송 애호가들이 가요로 눈을 돌리고 10대 음악팬들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시장의 규모가 급격하게 부풀었다.

안타깝게도 ‘난 알아요’를 추앙만 할 수는 없다. ‘난 알아요’는 독일인과 프랑스인이 결성한 댄스음악 듀오 밀리 바닐리가 1988년에 발표한 ‘걸 유 노 이츠 트루(Girl You Know It’s True)’를 과하게 참고했다. 우리 대중음악의 놀라운 개벽이 독창성이 떨어지는 작품에서 시작했다는 건 실로 아쉬운 대목이다. 이후 랩, 댄스음악에서 외국의 힙합, 댄스음악을 모방하는 일이 많았다. ‘난 알아요’가 바람직하지 못한 활동의 중추적 본보기가 된 셈이다.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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