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싱가포르의 ‘투자 귀재’ 테마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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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섹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기술과 시장 향방의 지표라고 할 정도로 분석력과 선구안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테마섹 홈페이지 갈무리

테마섹 홈페이지 갈무리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싱가포르의 경제발전과 성장전략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투자기관이 있다. 바로 테마섹(Temasek)이다. 셀트리온홀딩스의 대주주이고, 국내의 빌딩과 물류센터 투자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이다. 정식명칭은 테마섹홀딩스(테마섹)이며 1974년 설립했다. 정부가 100% 소유한 투자기관인 테마섹은 500조원이 넘는 자금을 운용하는 글로벌 큰손으로 싱가포르텔레콤부터 DBS은행, 미국의 페이팔, AIA, 에어비앤비, 중국 텐센트와 알리바바, 아세안 지역의 대표 유니콘 그랩과 고투그룹까지 전 세계 다양한 산업 곳곳에 테마섹의 손길이 뻗쳐 있다.

타국의 국부펀드나 연기금과는 달라

테마섹의 탄생과 성장은 싱가포르 정부의 경제성장 정책 및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싱가포르는 20세기 중반까지 말레이시아 연방의 일원이었으나 1965년 연방을 탈퇴하면서 독립국가가 됐다. ‘테마섹’이라는 이름도 말레이어로 호수와 바다를 뜻하는 타식(tasik)에서 유래했고, 바닷가 마을 혹은 그 마을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19세기 싱가포르는 말레이반도 끝에 있는 섬에 불과했으며,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해상 길목의 무역항 역할조차 말레이반도의 말라카에 밀려난 상황이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인들과 중국인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 낙후된 경제 상황으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매우 불안정한 사회였다. 1965년 독립과 함께 초대 대통령 유소프 빈 이샥과 리콴유 총리의 목표는 하루빨리 혼란을 수습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당시 경제활동의 20%를 책임지던 영국군이 철수하자 GDP는 감소하면서 실업자가 크게 증가하는 등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싱가포르는 섬나라 도시국가로서 협소한 내수시장과 부족한 자원, 농업을 키울 수 없는 지리적 약점을 수출산업과 무역 및 서비스업 전진기지의 장점으로 전환하는 개방경제를 선택했다. 정부주도적 경제개발 정책에 따라 외국기업 유치를 위한 세금감면 등의 다양한 조치를 도입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가 보유한 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투자해 국부를 증대시키고자 했다. 여기에는 별도의 전담기관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렇게 테마섹이 탄생했다. 정부는 정책수립 및 결정에 온전히 집중하고, 테마섹은 당시 재무부 산하의 35개 기업을 넘겨받아 주주 역할을 담당하도록 그 기능을 분리했다.

테마섹은 100% 정부 소유지만, 재무부에서 넘겨받은 자산을 완전히 소유한 형태로 회사법을 적용받는 일반 상업 투자회사다. 이에 따라 다른 어떤 국가의 국부펀드나 연기금과는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GIC가 싱가포르의 국부펀드이며 펀드매니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다시 말해 테마섹은 공기업지주회사이면서, 동시에 자산을 투자해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을 창출하며 투자대상(테마섹이 투자한 회사)을 주주로서 감시하는 역할을 충실히 한다. 글로벌 기관투자가로서 테마섹은 보다 과감한 투자를 하기도 하고, 공격적인 투자전략을 세울 수 있으며, 해외 자산과 외국기업 투자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테마섹은 뉴욕과 런던, 상해 등 9개 국가에 13개 해외 지점을 두고 있다.

테마섹 홈페이지 갈무리

테마섹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해 총주주수익률 25% 기록

1974년 출범 당시 테마섹의 자산은 3억4500만싱가포르달러(당시 환율 1억416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1983년에는 29억싱가포르달러(당시 환율 13억7246만달러)로 10년 만에 840%가 증가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지나 201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다소 주춤했지만, 테마섹의 성장세는 이후 더 가파르게 치고 올라 2021년 총자산이 6530억싱가포르달러(4842억달러)로 솟구쳤다. 글로벌 국부펀드들과 비교하면 자산규모 6위에 해당한다.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 가치로 보면 2021년 3180억, 순익은 565억싱가포르달러를 거뒀다.

자산가치 상승만큼 투자 수익도 증가했다. 주가 시세차익과 배당금을 합쳐 측정한 총주주수익률이 1974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14%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뤘고, 2021년 총주주수익률은 25%를 기록했다. 환율효과를 반영해 미국 달러화로 환산하면 2021년의 총주주수익률은 32%로 더 높게 나타난다.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을 보면 아시아가 64%로 지역적으로 상당히 집중돼 있다. 중국 투자비중이 27%로 자국 내 투자 24%보다 높다. 중국과 싱가포르를 제외한 아시아 지역 투자는 13%에 불과하지만, 아세안 지역에서 활동하는 많은 스타트업이나 테크기업들이 본사를 싱가포르에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양한 펀딩 참여자 목록에 테마섹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납득이 간다. 분야별로 보면 금융서비스가 24%로 가장 높고, 텔레콤·미디어·테크(21%), 에너지와 자원을 포함한 교통 및 산업섹터(19%)가 그 뒤를 바짝 따르고 있다.

장기적인 투자전략, 혁신기업의 투자 그리고 ESG 및 탄소제로 관련 투자 등 다양한 투자 기준을 적용하면서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는 거버넌스 구조다. 정부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테마섹의 투자 결정에 어떠한 역할이나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두고 있다. 테마섹 역시 정부가 동의할지 눈치를 보지 않는다. 적극적 기관투자자인 테마섹은 회사법에 따라 세금을 납부하며, 주주인 정부에 배당금을 지급한다. 2004년 이후 매년 ‘테마섹 리뷰’를 발간해 그 사업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테마섹의 거버넌스와 성과가 칭송을 받고 있지만 흠결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2004년 CEO의 자리에 올라 2021년 2월 물러날 때까지 17년간 테마섹을 이끈 인물 호 칭(Ho Ching·何晶. ‘마담 호’라고 불림)이 바로 현 총리 리셴룽의 부인이자, 리콴유 초대총리의 며느리였다. 그의 재임 기간 테마섹의 해외투자 활성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지만, 가족이 나라 정치경제를 좌우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테마섹의 예산 및 임원 임명에 대해 대통령 동의를 헌법적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2부터 2004년까지의 투자손실과 한번도 공개한 적 없는 그의 급여 수준 또한 여전히 세간의 화제로 떠돌고 있다.

테마섹은 싱가포르의 경제성장 전략을 반영한 독특한 모델이면서 다른 나라들이 앞다퉈 모방하려는 성공사례다. 테마섹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기술과 시장 향방의 지표라고 할 정도로 분석력과 선구안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세안의 산업과 기술 트렌드의 변화를 읽기 어렵다면 테마섹이 향하는 새로운 섹터와 투자대상을 나침반으로 활용해보기를.

<고영경 선웨이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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