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가장 많이 투자하는 해외지역은 단연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한국 제조업의 주요 파트너로 이미 깊이 연결돼 있으나 IT 산업, 특히 아웃소싱의 신흥 강자라는 점은 잘 안 알려져 있다. 그동안 인도와 중국이 IT 아웃소싱(ITO) 및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BPO) 업계 대표주자였지만 이 시장에 베트남이 치고 들어오면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팬데믹을 거치면서 거의 모든 기업이 디지털화에 사활을 걸지 않을 수 없었고, 이것은 아웃소싱 서비스시장의 규모를 더욱 키우며 베트남에 더 큰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FPT 사옥 / 고영경 제공
2021년 베트남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매출은 1361억달러로 전년 대비 9.7% 증가했다. 10%에 근접한 ICT 성장률은 봉쇄조치가 강력하게 시행된 탓에 주저앉은 2021년 베트남의 GDP 성장률 2.58%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컨설팅 회사인 A.T. Kearney가 발표한 2021년 글로벌 서비스 로케이션 인덱스(Global Service Location Index)에 따르면 베트남은 인도와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라질에 이어 6위를 기록하고 있다.
베트남 ICT 산업을 이끌어온 맏형 같은 기업이 있으니 바로 FPT다. 자고 일어나면 트렌드가 바뀌고 수많은 회사가 탄생과 소멸을 거듭하는 IT업계에서 30년 넘게 자리를 지켜왔다. 국제 아웃소싱 협회가 발표하는 글로벌 아웃소싱 100대 기업 리스트에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6년 연속 FPT 이름을 찾을 수 있다.
과학자 13명만 있던 회사
FPT는 1988년 쯔엉 지아 빈(Truong Gia Binh)이 하노이에 설립한 회사다. 창업자 쯔엉은 러시아 로모노소프 모스크바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베트남 과학원에서 재직하던 교수였다. 베트남의 개혁개방 정책 도이모이가 시작된 1986년부터 신경제 모델이 세워지고 창업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쯔엉은 과학을 계속해 돈을 벌고 싶다는 열망을 키웠다고 한다. 1988년 여름 러시아 과학원에 컴퓨터를 납품하기 위해 보조금을 받았고 기술 수출입과 이전 비즈니스에 눈을 뜨게 됐다. 마침내 1988년 9월 국립 기술연구원이 푸드 프로세싱 테크놀로지 컴퍼니(Food Processing Technology Company) 설립을 결정하고 이사로 쯔엉 지아 빈을 선임했다. 이곳의 영문 이니셜 FPT가 회사의 이름이 됐다. 자본도 자산도 없이 젊고 야심 찬 13명의 과학자만 있는 회사가 새로운 도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것이 FPT의 시작이었다.
1990년대 초반 FPT의 주요사업은 컴퓨터 보급이었는데 시장에서 주요 사업자로 단시간 내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엠바고(통상금지) 때문에 제3국을 거쳐 거래가 이뤄질 수밖에 없었고 거래 규모도 적었다. 때마침 1994년 미국의 엠바고가 해제되면서 글로벌 컴퓨터 기업들이 베트남 시장에 진출했다. FPT는 이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당장 찾아가 공식 에이전트로 삼아 달라고 설득했다. 효과가 있었다. IBM이 FPT를 베트남의 파트너로 선택했다. 그 뒤로 컴택과 HP 등 여러 테크 기업들이 FPT와 손을 잡았다.
글로벌 기업들과의 계약으로 회사의 덩치는 커졌지만 컴퓨터 유통·판매사로 머물 수는 없었다. 새로운 사업과 도약을 노리던 FPT에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졌다. 1997년 인터넷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장비 공급자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로 선정됐다. 덕분에 FPT텔레콤이 3대 브로드밴드 사업자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현재 FPT의 주요사업 부문으로 자리 잡은 아웃소싱은 회사 설립 10년이 지난 후에야 시작됐다. 1997년 발생한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해 베트남 경제도 타격을 입었고, 회사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척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글로벌화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아웃소싱 서비스가 눈에 들어왔다. 1998년 FPT는 소프트웨어 아웃소싱을 향후 10년의 전략 사업이라고 선포했다. 이 전략적 선택은 옳았다. FPT는 2001년부터 2005년 사이 매년 평균 70% 매출을 신장시키며 베트남 최대 IT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6년 드디어 주식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호찌민 거래소에 상장되던 날 하루 만에 주가가 150% 오르면서 단숨에 시가총액 1등 기업으로 등극했다.

FPT 대학 / 고영경 제공
RWE IT 인수로 존재감 드러내
FPT의 핵심 비즈니스는 여전히 IT 서비스다.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해외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첫 사례가 2014년 슬로바키아의 IT 기업 RWE 인수였다. RWE를 통해 유럽 내에서 FPT의 존재감이 확실히 커졌고 기업가치도 증가했다. 2018년 미국시장에도 발을 내디뎠다. 기술 컨설팅 회사 인텔리넷의 지분 90%를 사들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에 도전해 글로벌 IT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FPT의 선언이 구체화하는 순간이었다.
글로벌 IT 산업의 팽창은 FPT에 성장기회를 가져다주었지만 문제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인재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해법으로 직접 인재를 양성하기로 했다. 1999년 국제 프로그래머 훈련센터를 만들고 2006년에는 아예 FPT 대학을 설립했다. FPT 대학 출신은 거의 전원이 졸업 후 6개월 이내에 직장을 찾았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FPT 그룹은 한걸음 더 나아갔다. 2021년 전체 매출 35조7000억동, 우리 돈으로 약 1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무려 19.5%나 증가한 수치다. 당기순이익도 5조3490억동으로 2020년보다 20.9% 증가했다. IT 부문 매출이 58.6%로 가장 컸고 텔레콤이 34%를 차지했다. 매출과 이익 성장세에 힘입어 주가도 크게 올랐다. 코로나19 발생 직후 3만700동까지 내려갔던 주가가 2021년 3월 23일 9만6500동으로 올랐다. 시가총액은 87조5700억동으로 상장기업 가운데 19위를 차지했다.
FPT가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많다. 아웃소싱의 대체지역이나 경쟁기업이 많고 베트남 인건비도 크게 상승하고 있어서다. 여전히 글로벌 IT 산업의 성장이 지속되고 있고 기술과 사업 고도화를 추진하며 데이터센터부터 인공지능,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분야로 나아가고 있는 FPT의 행보는 긍정적인 전망을 유지하게 만든다. 2022년 더 큰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FPT의 움직임을 두근거림을 안고 지켜봐도 좋을 일이다.
<고영경 선웨이 대학교 겸임교수>